'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24.03.03 도살장 앞에서
  2. 2021.02.09 꿈+
  3. 2020.12.06 경계
  4. 2020.10.12 덕분에
  5. 2020.06.27 서울복합물류 B동 3F
  6. 2020.05.31 시시미미
  7. 2020.01.19 원주민 고양이
  8. 2019.11.03 횡단보도에서
  9. 2019.01.13 사이에서
  10. 2018.12.23 2018년 1~2월의 메모들(물류센터에서)

도살장 앞에서

일상 2024. 3. 3. 18:44

나는 카메라를 그만 내린다. 그리고 고향집에서 챙겨온 내 오래된 옷을 가방에서 꺼내 트럭 위로 올라간다. 여전히 가뿐 숨을 내쉬며 눈을 깜박이는, 많이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는, 눈앞의 이 어린 돼지를 옷으로 감싼 뒤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태어나 6개월이면 죽임 당하는 돼지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주 아기는 아닌, 다행히도 내 품에는 꼭 맞는 이 돼지를 도살장의 계류장으로부터 도피시킨다. 도망친 곳은 도살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의 작은 화단. 흙 위에 그를 눕힌다. 돼지를 치료해야만 한다. 살릴 수 있을까. 받아 줄 동물병원이 있을까. 이런 구조는 돼지의 고통을 연장시키기만 하는 게 아닐까. 이제 어째야 하나.

아, 여기서 상상이 더 이어지지 않는다. 상상해. 예상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2분째 내 폰에는 죽어가는, 아니 아직 죽지 않은 어린 돼지의 모습이 녹화되고 있다. “돼지 아직 살아 있어요” 나는 트럭 위를 올려다 보며 말한다. “죽었어”. 잘못 들은 걸까 의심하는 사이 트럭 위와 계류장을 오가던 장화들은 사라지고 없다. 살아 있는데, 그것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왜 죽었다고 말하는 걸까. 전쟁터 같다. 죽은 시체와 아직 살아 꿈틀대는 몸들이 아무렇지 않게 방치되어 있는 곳. 사실 보고 있는 이 순간 심한 동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런 장면은 이미지로 접할 때 마음이 더 괴롭지 정작 현장에서 보고 있을 때는 사진과 영상으로 볼 때 만큼 괴롭지는 않더라. 그래서 반대로 이미지의 힘이 강력하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 보고 있는 이 돼지의 고통이 내 몸에 영원히 각인될 거라는 건 알겠다. 죄책감, 무력감과 함께.

자루 안에 돼지들이 담겨 있었다. 어떤 돼지는 하체가 밖으로 나와 있었고, 몸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아직 살아 있다. 그 위로 자루에 담기지 않은 검은 돼지가 눈을 뜨고 있었다. 돼지의 눈은, 돼지의 눈은, 돼지의 눈은… 친구의 말대로라면 “무언가 알고 있는 눈” 같다. 온몸이 젖어 있다. 양돈장에서부터 이미 죽어 가는 어린 돼지들을 아무렇게나 담아서 도살장에 보낸 걸까. 아니면 이곳에 와서 무슨 일을 당한 걸까. 여기까지 이동시간도 길었을 텐데 이 상태로 계속 버텨야 했던 걸까.

죽은 돼지의 등에서 엉덩이로 내려가는 동그란 곡선이, 트럭 난간에 얹어진 돼지의 가느다란 두 다리가 마치 곤하게 자고 있는 내 반려동물의 모습과 같았다. 그 이미지가 겹쳐지자 일순간 마음이 찌르듯 아팠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비슷해서 더 연민을 느끼는 내 감정은, 인간의 심리는 되도록 존중하지 않으려 한다. 접촉면이 필요하다는 건 안다. 그래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도.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이 돼지의 몸은 인간의 몸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너무 비슷하다고. 이 몸들에서 엄청난 괴로움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이곳에 왔을 때 그 사이 돼지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소독을 위해 계류장의 입구마다 수시로 물을 분사하고 있었다. 물의 압력에 밀린 걸까. 몸부림치다가 떨어져버린 걸까. 아까 눈을 뜨고 있던 그 돼지일까. 트럭 기사와 직원들이 없는 틈을 타 빠르게 다가가본다. 눈에서 피가 흐른다. 아직 살아서 몸을 떨고 있다. 하필 땅에 물이 고인 자리에 돼지의 코가 닿아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 안 되겠다. 몸을 밀어서 옆으로 옮겨주자. 옮겨주자. 옮겨주어야 한다… 차마 손으로 못 하겠으면 발로라도 해주자. 그런데 지금 코에 물이 닿는 고통을 없앤다고 이 돼지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 차라리 빨리 죽는 게 그로서는 고통을 그만 멈추는 길 아닌가. 그런데 대체 이 도살장이라는 곳은 뭐하는 곳인가. 동물을 죽이는 곳. 그래, 죽이는 곳. 죽이는 게 왜 이렇게 쉬울까. 왜 이 동물들의 목숨값은 이리도 하찮은가.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예외 상황도 아니잖아. 매분 매초 벌어지고 있는 축산업의 현실인데. 인간이 만들고 묵인하는 시스템인데. 지난 한 달 간 국내에서만 2백 만 명의 돼지를 도살했다. 내가 본 돼지와 같은 도태된 동물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도살장에서 멀어질수록 다시 익숙한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왔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벽 너머로 거대한 학살이 벌어지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에 조금 현기증이 났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너무 무겁고, 동물들의 삶과 죽음은 너무나 가볍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야 눈물이 푹푹 났다. 몇 년 전 생각이 났다. 다른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늦은 밤에 사람들과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괴기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었는데 그건 발정 소리는 아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우리는 빠르게 그 거리를 지나갔다. 마음이 계속 쓰였던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그곳에 다시 갔다. 골목 한 쪽에 누더기가 된 고양이가 웅크린 채로 있었다. 밤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쳐다보자 울었다. 몰골이 너무 참혹해서 나는 오히려 물러났다. 골목 반대편에서 가만히 쳐다보다가 사진 한 장만 찍고 돌아갔다. 구조를 해서 치료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오늘도 중요한 촬영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지역의 캣맘들에게 연락할 여력도 안 되고 등등... 결국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서 울었다. 촬영도 잘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그 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가여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 아픈 고양이들을 더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자루에 담겨 뒤엉켜 있던 돼지들은 작은 포크레인에 실려 육가공 공장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집에 가려다 못 가고 또 다시 들렀을 때 그걸 보았다. 돼지들이 실린 포크레인 버킷 위로 팔락거리는 귀가 보였다. 슬프게도, 바람에 흔들리듯 살랑거리는 그 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짧은 삶 사는 동안에도 좁은 시설에서 온갖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귀.

깨끗하게 포장된 고기로만 인간에게 소비되는 돼지의 몸이 한때 분명 살아있었고 살고 싶어했던 존재라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살아있는 축산(피해)동물의 몸, 인간의 이익을 위해 무수히 죽임 당하는 그들의 몸이 더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youtu.be/DbS8Y9QH9eU?si=rTy4dcvgWhKpyX-r

 

https://www.instagram.com/reel/C3zvxeOJeel/?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꿈+

일상 2021. 2. 9. 20:47


1-23. 새벽에 잠깐 깼다 다시 잠들자 나는 고래의 배 아래에 있었다. 아주 느릿하고 꼼꼼하게 그의 배를 살피며 꼬리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고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어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아직 완전히 스치지도 못했는데. 고래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숨 막힐 듯 벅차고 황홀하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1-24. 소변이 마려워서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문을 여는 칸마다 변기에 똥이 차 있었고, 마지막 칸의 문까지 닫아야 했을 때 느낀 희미한 절망감. 왜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을까 싶은 현실에서의 의아함. 꿈에서는 왜 우회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할까.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고 다시 뚜껑을 들어 올려 맑아진 물을 확인하는 방법 같은 것.

1-25. 잠에 들기 전 그날 저녁에 보았던 최시형 감독의 영화 <영시young poem>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장면들이 떠오르자마자 반쯤 희미한 정신으로 '아 나 이 영화 옛날에 봤던 거네' 하고 생각했다. 아닌데. 오늘 처음 본 영화였는데. 보자마자 멀어지는 영화,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이미지들, 마치 내 것처럼, 아련하게. 멋지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1-26. 숱한 꿈을 꾸었지만 복기하고 간직하는 데 실패한 아침. 방 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틈입하는 순간 스산히 날아갔다, 라고 쓰는 순간 고양이 꿈을 꿨다는 게 떠올랐다. 우리 집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아주 커다란 상자가 보였고 안에 있는 건 누군가 갖다 버린 개들이었다. 상자를 완전히 열기도 전에 그 개들이 나에게 안길까 두려우면서도 어떻게든 내가 책임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내가 개들을 버린 자를 잡겠다고 처벌하겠다고 생각하며 눈 쌓인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아니 그보다는 일단 이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 더 에너지를 쓰자'는 말소리가 들렸고 나는 계속해서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경찰을 만나러 갔지만 당신은 자격이 없다는 답변, 아니 용기가 없다고 했던가? 다시 돌아온 지하실에는 모든 개들이 사라졌고 난 안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픈데 빈 상자에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갔을 때 소복하게 모여 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들. 바깥으로 뛰쳐나간 개들이 남겨두고 갔다고 했다.

1-27. 목욕탕에 여자들이 모여 앉아 있고 그 위로 세찬 물이 쏟아진다. 그들 중 한 여자가 힘겹게 일어서더니 다른 이들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섬세한 손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에게 안마를 끝낸 여자가 이제 내 쪽으로 걸어온다. 걸어나온다. 젖은 얼굴로, 자신은 연극하는 사람이라며 방금 전까지 내가 보았던 한 컷의 긴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해서 듣느라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꿈속에서의 보기. 꿈속에서의 듣기.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경계

일상 2020. 12. 6. 23:42

문득 떠오른 15년 전의 기억. 런던의 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 횡단보도 앞에서 서성이던 우리들. 나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서 방향 잃은 사람처럼 자꾸 두리번거리며 일행들과 외따로 서있다. 그저 도로 건너편의 화려한 풍경을 더 잘 보고 싶었던 걸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속눈썹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커다란 2층 버스는 내 머리가 뒤로 빠지자마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바로 들었던 생각, 살았구나. 죽음의 기운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던 그때, 내 몸을 인도 쪽으로 당긴 선배가 있다. 그 선배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네. 같이 걷다 넘어지길래 내가 웃으며 왜 자꾸 넘어져요 하니까 내 다리가 길어서 그래 하며 웃던 사람. 죽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지나요, 선배? 땅보다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어떤 중력으로부터도 가벼워지나요, 영혼도? 

 

 

내가 잊지 못하는 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내가 놀라지 않게 잡아끌던 그 손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덕분에

일상 2020. 10. 12. 00:42

덕분에 마음 밑바닥에 늘 사랑이 찰박인다. 가끔은 내가 가진지도 몰랐던 사랑의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몸 안에 쏟아진다. 손끝 발끝에 불빛이 반짝이고, 덕분에 마음껏 사랑을 쓰며 살아야지. 사랑의 힘으로 싸워야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버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서울복합물류 B동 3F

일상 2020. 6. 27. 01:50

서울복합물류 B3F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가는 박스가 찢길 때마다

손목 약한 사람들은 먼지를 먹었다

 

먼지가 먼지를 먹을 때마다

사람들은 매번 이발하는 걸 잊었다

 

그들은 산발한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뛰어 든다

 

그래도 꿈에서 깨지 못하고

여전히 박스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다

 

손목이 꺾일 때마다 손 안에 새소리가 고였다

바코드가 찍히자 먼지를 털며 달아나는 송장번호 10183478832800번 박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시시미미

일상 2020. 5. 31. 22:36

장난감 낚싯대를 눈 앞에서 흔들면 미미는 그걸 따라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며 쫓아다닌다. 반면 시시는 동요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거리를 두고 물러서서는 목표물이 움직이는 걸 오래 지켜본 뒤 사냥 자세를 제대로 취해 달려든다. 실패하면? 시도한 적 없다는 듯 모른 척하며 돌아선다. 밥도 미미는 한 자리에 앉아 묵직하게 끝까지 먹는다면 시시는 꼭 두 번, 세 번에 걸쳐 나눠 먹는다. 먹으면서도 시시는 미미가 먹는 걸 계속 곁눈질한다. 용변을 볼 때 실수로라도 눈이 마주치면 시시는 바로 불평을 터뜨리며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 편이고, 미미는 쳐다보거나 말거나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깐깐해 보이지만 한 번씩 똥꼬에 똥을 달고 나오는 건 시시다. 미미가 예민하게 구는 건 양치할 때, 발톱 깎을 때이고 시시는 그런 일들엔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미미는 가끔 사람처럼 몸을 한껏 늘여자는데 시시는 어릴 때 이후로 배를 드러내놓고 잔 적은 없다. 참 다른 둘.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길에 살면서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 점점 서로를 닮아가기도 하겠지. 나를 닮은 것도 있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원주민 고양이

일상 2020. 1. 19. 19:58

"어떤 대상을 불쌍한 존재로 보면 여러분들은 뭘 하겠어요? 길고양이가 불쌍하니 어떻게든 구조하고, 입양 보내고, 집고양이처럼 다들 편하게 사는 쪽에 에너지를 쏟고 몰두하게 되실 거예요. 또는 길고양이를 아주 천덕꾸러기, 민원만 일으키는 그런 존재로만 본다면 어떤 접근을 하겠어요? 민원 해결하기에 급급한 대상으로 보고, 그 이상의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는 발전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오랜 기간 저희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와 관악구에서는 많은 고민을 해왔어요. 이 길고양이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이고 길고양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되는지. 가장 핵심적인 건 이거였던 것 같아요. 길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에요. 영역 동물이라는 건 무슨 얘기냐면요,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 주민들이 다 이사를 가도, 캣맘이 한 명도 없어도, 공무원이 구의원이 다 바뀌고 모든 게 다 사라져도 거기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우리보다 더 원주민이에요. 없어지지 않아요. 주민은 이사 갈 수 있고 환경을 바꿀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그곳을 영역으로 삼고 원주민처럼 사는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고양이는 민원유발자도 아니고 천덕꾸러기도 아닌,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그냥 우리보다 더 앞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죠. 뒤늦게 들어와서 인간 위주와 편의대로 환경을 만들어놓고 고양이들이 살지 못하게 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겠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 있잖아요, 공존. 또 요즘 우리가 많이 듣는 말 있잖아요. 길고양이는 길에 사는 우리의 작은 이웃이라고. 작은 이웃으로 보고 길고양이와 함께 살고자 모색하는 길은 주민이 다 떠나고 캣맘이 하나도 없어도 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삶의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관악길보협 서유진 대표의 발언 중, 2020년 1월 8일 서대문구 동물정책 토론회에서)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관악길보협) https://cafe.naver.com/gwanakanifriend

----
동네고양이를 보면 반갑다. 매일 채워두는 사료를 한그릇 싹싹 비운 걸 확인할 때마다 보람되고 안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건 가엾고 불쌍하다는 마음이다. 아픈 고양이를, 죽은 고양이를 볼까봐 두렵다. 이미 겪은 슬픈 일들을 잊지 않는 걸로도 마음이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로는, 나 혼자 전전긍긍하며 동네에서 몰래 밥주는 걸로는, 이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사실 이건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건의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테고. 이 과정을 관악길보협이 앞서 해나가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는다.    
고양이 덕분에 나는 주위를, 동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고마운 고양이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횡단보도에서

일상 2019. 11. 3. 17:51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한 아이가 달려간다. 통통한 여자 아이. 구르는 발소리가 묵직하다. 휠체어를 미는 노인이 뒤따른다. 서두르지만 좀처럼 빨리 나아가진 못한다. 횡단보도의 끝에 다다르자 아이는 좌측으로 계속 내달리고 노인은 오른쪽 길로 꺾는다. 내가 가는 길은 노인 쪽이다. 휠체어에는 다른 노인이 있다. 그의 머리칼은 정수리부터 둥그렇게 세고 있다. 이마에만 챙이 있는 모자를 썼다. 기운이 없는지 어깨는 약간 앞으로 기울어졌고, 양손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있다. 힘주어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 다시 반대로 달려온 여자 아이가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을 딱 때린다. 질책하는 목소리였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걸어가는 남자 노인. 휠체어 뒤에는 노란 유치원 가방이 걸려 있다. 아이는 걸음 속도를 조절하며 휠체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이내 여자 노인의 손을 잡는다. 걸어가는 셋의 뒷모습.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사이에서

일상 2019. 1. 13. 13:16


<노동여지도>를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송민영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책을 더 읽는 건 그만두었다. 생각이 나 그의 추모게시판에 들어갔다.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와 인연이 없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였다는 것밖에. 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아니 그의 존재에 대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한동안 그의 흔적을 찾았다. 아마 또래라서, 여성이라서, 또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이라서 유독 끌렸을까.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또 친해지고 싶었다. 부질 없는 생각이었고, 그냥 마음 놓고 했다. 추모와 애도 사이에 있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도는 넘었는데 그렇다고 지인은 아니라서 끝내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상태. 그에 대한 기억을 내 안에서 퍼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몇 달은 잠에 들기 전마다 추모게시판을 들여다봤다. 2016년이었고 여름이 시작되면 나는 긴 배낭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출국하고 낯선 땅에서 거의 한 달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 지냈다. 홀로 움직였던 그 시간 동안 이 세상에 없는 자들과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와 인연은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송민영 님이었다.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갈구했는데 다만 삶이 얼마나 죽음과 가까운지 알겠는 기분으로 지냈다. 그런 기분은 다시, 정말 존재했음 그리고 어떤 삶이 있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기도 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깨달음은 사라지지는 않고 마음 어딘가에 쌓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부터 저런 생각에 휩싸여 지낸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 알고 싶어도 더 알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밤마다 꿈에서 레일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컨베이어 벨트라고 알고 있는 걸 여기서는 레일이라고 부른다.)

-

돈을 벌려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집 재계약 때문에(서류상 중소기업 재직증명서가 필요한 상황)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예상했던 기간보다 나는 더 오래 이 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힘들어도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절박한 생계가 되었다. 그러자 조금 불행해졌다.
 
-

매일 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없다면 이 일을, 그것도 이 계절에는 못 견뎠을 거다. 따뜻한 물로 씻으면 볼과 손등과 무릎이 녹아서 빨갛다. 

-

따뜻한 믹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관리자들이 일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며칠 전 서류를 부탁하러 갔다가 사무실에 믹스커피가 많은 걸 봤다. 문을 열자 낯익은 직원이 보여서 "믹스커피 좀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이어폰을 낀 그가 짜증스런 얼굴로 "네?"라고 물었다. "믹스커피 좀 가져가려고요." "뭐요?" 난 정수기 위의 믹스커피를 가리키며 "저것 좀 먹고 싶어서요."라 했고, 그제야 그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더니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몇 개 챙겨줘."라며 맞은편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내가 재직증명서 서류를 부탁했던 하청업체의 관리 직원이다. 그가 믹스커피를 손에 가득 쥐여준다.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여자 직원에게만은 고맙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돌아 나오면서 '나는 지금 불쌍한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타인이 나를 불쌍하게 만든다.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애써 넉넉해지는 마음. 고작 믹스커피 몇 봉지를 얻으러 갔다 생긴 일.

-
다정함과 친절함은 중요해.

-
휴게실에 앉아 매일 코카콜라 500ml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
추위와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
근무환경이 좋지 않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신입이 많으니 분위기는 어색하고 오래 다닌 사람들(그래봤자 몇 개월 더)의 텃세가 심하다.

-
가끔 레일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있다. 춥다고 긴 패딩을 입었는데 생각 없이 레일을 건너려다 식겁했다. 

-
퇴근 후에 틈틈이 읽는 책은 <남극의 여름>. 남극에서 물류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수십 시간 운전이라는 반복 노동을 하는 동안 파리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하루에 한 곡만을 무한 재생하기도 하고. 나도 일이 좀 적응되자(이 일은 단순 작업이라 배우는 건 금방이다. 익숙해지면 속도를 내는 문제로 접어드는데 사실 이게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 손이 기계처럼 노동하는 동안 머릿속은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출근길마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할지'를 정해본다. 오늘은 지난 배낭여행의 순간들을 복기했다. 파키스탄 훈자의 별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복기하려 할수록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보이는 별처럼. 그렇다고 정신의 전부를 딴 곳에 보낼 수는 없다. 그러면 꼭 실수가 생긴다. 균형을 잡는 긴장이 필요하다. 음악은 들을 수 없다. 지시를 내리는 무전기 소리를 들어야 해서다. 누군가 이어폰을 한쪽 귀에 끼고 음악을 듣다가 혼이 났다. 

-
화장실에 비누가 생겼다. 쉬는 시간마다 꼭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 묻은 손을 문지르면 구정물이 비져 나오는데 그걸 보는 게 좋다.

-
이제는 쉬는 시간에 맞춰 하고 있던 일이 딱 끝난다. 이 일의 노동 시간에 적응했다! 

-
이 일은 전형적인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다. 단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일하고 겨우 이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생각할수록 많이 화가 나. 

-
조회 때 아파서 잔업을 못 하겠다고 손을 든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동료들이 웃으며 "안돼. 안돼." 하며 데리고 갔다. 다들 웃어서 나도 웃고 말았는데 나중에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동료가 아프다는데 쉬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일을 하자고 관리자 앞에서 데리고 간다는 거, 정말 웃을 일인가. 한 사람이 빠지면 전체의 일이 많아져서다. 더구나 손이 빠른 사람이면 순순히 보낼 수가 없다. 

-
주임이 오늘부터는 '개인적인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피킹(주문장에 적힌 물품을 찾아 박스에 담는 일) 나간 시간을 기록하라고 했다. 내 주업무는 검수(박스에 담긴 물건을 바코드로 검수한 후 포장해서 내보내는 일)다. 하지만 레일 위에 박스가 적으면 우리에게 피킹을 시킨다. 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려는 거다. 관리자는 개개인이 하루에 검수를 몇 건이나 했는지 체크하는데, '피킹한 시간은 빼야 검수한 박스의 갯수를 정확히 체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건수가 적어도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과연 그건 배려일까.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감시받는다. 주임 왈, 어제는 전체 건수가 적어서 CCTV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확인해본 결과 "여러분이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고 했다. 


-
순간순간 관리자들의 친절함에 넘어가지 말자. 문제다. 

-
검수와 피킹하는 노동자를 파견하는 하청업체와 검수와 피킹하는 노동자를 관리하는 주임을 파견하는 하청업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나는 주임들은 인터넷 쇼핑몰 소속 정규직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저쪽 하청업체는 춥다고 파카를 단체로 입혀줬다. 이렇게 하나씩 새로운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는 있다. 

-
올해는 영하 10도를 넘기는 날이 많다. 손등이 동창에 걸렸다. 동상은 아니라 다행인가.


-
오늘은 피킹만 7시간을 했다. 물류센터를 계속 걸었다. 사각형의 한 면에서 한 면까지 걷는데 대략 5분 정도 걸린다. 이제는 팬틴 샴푸가 어디 있는지, 김치 사발면 6개입 박스가 어디 있는지, 복음자리 잼이 어디 있는지 잘 알겠다. 최대한 적게 걸을 수 있는 동선도 익혔다. 4시간이 넘어가자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

피킹을 끝내고 검수하러 돌아왔는데 박스에 동봉하는 사은품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레일 건너편의 조장에게 더 없는지 물어보려는데, 나를 돌아보는 조장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창백했다. 이마에서부터 피로가 흐르고 있었다. 이 시간쯤 되면 저런 얼굴이 되나? 이 추위에 매일 잔업까지 해서 힘들 텐데 다들 꾸역꾸역 잘도 버티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은 아파서 6시에 퇴근했다. 인사하고 떠날 때 얼굴을 봤는데 입술이 부어 있었다. 주임은 다음 주는 되도록 하루만 쉬어 달라고 "제발 부탁한다"고 말했다. 부탁이라고 말하니 더 얄미웠다. 이렇게 사람을 갈아서 회사를 운영해야 할까.(이런 전형적인 표현이 막 튀어나온다.)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누가 "오늘 사무실에 오예스가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아니 이런 날에 잔업시키면 김밥은 줘야 하지 않냐"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난 김밥보다 오예스가 더 좋고 오예스를 포장할 때마다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기다렸지만 결국 안 나왔다. 회사가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피부에 와닿아서 질린다.

-
추우니까 마트 안 가고 인터넷으로 물품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
내가 이 회사에 진절머리를 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터일 터. 애사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입 밖으로는 회사 욕을 하지 않아야겠다. 어쨌거나 난 '조금만 더 버티면 그만둘 수 있다'라는 마음을 먹고 있으니까. 

-
잔업을 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도어에 내 모습이 비쳤다. 추위를 이기려고 남들보다 더 뚱뚱하게 옷을 껴입었고, 대충 봐도 꼬질해 보였다. 시선을 내리면 패딩 소매에는 시커먼 때가 묻었고 몸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이런 게 싫어서 조장을 비롯한 몇 사람들은 작업복과 일상복을 꼭 분리해서 입는다. 하지만 탈의실이 따로 없으니 번거로운 일이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에 따라간 적이 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아버지는 "이렇게 가면 식당에서 싫어해." 땀에 절고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아들이 깨끗한 곳에서 옷 더럽힐 일 없이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순간 짠하고, 오래 씁쓸했다. 왜 더러운 작업복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싶어서. 하지만 오늘 지하철에서 정장을 잘 차려입은 한 여성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직업의 위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속물의 위치에 있지 못하는데도 속물근성을 가진.
(이거 왜 썼을까. 다시 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 일을 하면서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주일에 이틀은 쉬어야 하는데, 쉬고 싶은데, 하루만 쉬기를 강요받고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
2월 5일

일한 지 한 달째. 오른팔이 너무 결린다. 왼팔만 쓰려고 노력한다. 같은 날 입사한 분은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렸다고 했다. 그분의 주업은 패션디자인이다. 일감이 줄어서 부업으로 여기서 일을 한다고 했다. 둘 다 손목을 많이 쓰는 일인데 당장 어느 것 하나 멈출 수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
오후 조회시간. 조장은 주임에게 "레일 지나가는 박스를 보고 무거워 보인다 싶으면 작업대로 안 옮기고 그냥 지나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신입들이 그런다."고 고자질했다. 주임은 동조하며 "또 발각되면 그만두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 주임의 리더십은 제로다. 사정은 이렇다. 박스 안에 물건이 많으면 두 박스에 분리해야 하고, 그러려면 주문장을 하나 더 프린트해서 각 박스에 따로 붙여야 한다. 작업대마다 프린트가 있지만 대부분이 고장 났다. 좋은 자리는 연장자가 맡으니 프린트가 고장 난 작업대는 신입들의 자리다. 그래서 주문장을 추가로 뽑으려면 레일 건너편의 선임에게 부탁해야 한다. 욕을 먹지 않으려 박스 하나라도 더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잠시 작업을 멈추게 하는 부탁은 하기 꺼려진다. 중요한 건 고장난 프린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하는 한 달 사이에도 반 이상의 사람이 바뀌었다. 떠나면 그만인 곳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업무의 효율을 떨어트릴 테고. (이후 주임이 바뀌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고장난 프린트기를 고쳐주는 일부터 했다.)

-

이제 사람들 뒷모습만 봐도 누가 누군지 알겠다.

-
오늘은 청소를 시켰다. 관리자의 지시가 꼬였는지 한 사람이 혼자 휴게실 하나를 다 청소한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다짜고짜 나한테 와서 왜 청소하러 안 왔느냐고 따졌다. 반대쪽 휴게실을 청소했다는 말을 내가 꺼낼 새도 없이 그 사람은 자기 화만 쏟아내고 사라졌다. 퇴근하는 길에 화장실에서 그를 만났는데 미안했는지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비누가 어떻고 물이 어떻고 하는 말을 늘어놓고 갔다. 재밌는 사람. 걷는 모습이 특이한 사람. 


일을 하다 보면 곁눈으로 피킹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다. 유독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주문장을 확인하고 해당 위치에서 빠르게 물품을 뺀 뒤 레일 위의 박스에 담는 동작이 리드미컬하다. 흥이 느껴진다. 열심히 노동하는 풍경의 양면성이 있겠지만, 어쨌거나 성실하게 노동하는 인간을 보는 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_
"나가야 들어오지." 

(누구 말을 옮긴 건데 어떤 맥락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따뜻한 휴게실에서 차가운 물류창고로 나가기 싫어서 모두 신음소리를 낼 때 누군가 꺼낸 말. 

-
점심시간이 되기 30분 전 레일에서 거친 소리가 나더니 결국 멈췄다.... 고장 났다! 자꾸 배실배실 웃음이 났다. 푸하. 

-

휴게실에 종이컵과 믹스커피가 있길래 '드디어 회사가 이 정도는 제공하는군!' 하며 믹스커피 봉지의 윗귓퉁이를 이로 물어찢는 순간 피킹팀 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다 주인 있는 거예요!" 일순간 조용해지고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나뿐 아니라 모두 들으라는 듯 "여기 있는 건 다~ 개인 물품이에요. 물어보고 먹으세요!" 만약 이 자리에 우리 검수팀 조장님이 있었다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서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장이라는 사람이 종이컵과 믹스 커피를 공급하라고 관리자들에게 건의는 못할망정! 센 노동강도와 저임금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삭막함이다. 환경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개인에 대한 미움이 덜해지진 않는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도 인간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좋고 그런 사람들이 그립다. 

-
생리 중이라 설사가 난다. 하지만 화장실에 편히 못 간다. 평생 다닐 회사가 이렇다고 생각하면 아찔한데 조금만 더 버틴다고 생각하면 또 안심이 된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
점심시간과 간식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식당밥이 맛있다. 모든 물류센터 식당의 밥은 맛있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은 맛있다! 그리고 식당은 따뜻하다. 점심시간을 꽉 채워 식당에 머문다. 점심을 먹고는 식당 옆 편의점에서 파는 천 원짜리 초코퍼지 두 개를 잔업 간식용으로 산다. 먹을 때는 두 입째에 초코가 베어 나오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
언젠가 이 시간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
펜과 칼을 고무줄로 묶어 다니면 피킹할 때 편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
손톱을 기른다. 손톱이 짧으면 때가 손톱 안까지 파고든다. 이것도 이제야 깨달은 사실.   

-
2월 13일

늘 마스크 낀 모습만 보던 사람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서른 살이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음악 프로듀서? 교육? 무슨 일을 하다가 알바로 왔댔는데 너무 작게 말해서 안 들렸다.  

-
최근에 검수팀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취미는 편의점에 새로 들어오는 과자를 먹는 거라고 했다. 난 사람들이 꼬북칩을 많이 주문해서 나도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사람은 꼬북칩 별로라고 했다. 둘이서 하루동안 입고팀에 파견돼서 알하며 조금 친해졌다. 그 친구에게 초코퍼지를 선물했는데 맛있었는지 대답은 듣지 못했다. 

-

"이제 눈을 뜨면 출근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한 달째, 나는 이 일을 그만두었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지.

-
점심 먹은 게 잘못됐는지 배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업무 중에 작업대를 이탈했다. 급하면 당연히 화장실에 가도 되지만 나는 눈에 띄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참았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뛰어서 이동하는 걸로 눈치를 봤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작업대로 돌아왔을 때 한 선임이 말했다. "어디 갔다 왔어?" 추궁하는 말투였다. 화장실이요... 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가 잘못 들은 거길 바랐다. 관리자가 아닌 동료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게 더 서럽다. 물론 좋은 동료도 있다. 내가 한 실수를 함께 처리해주고 편하게 말도 걸 수 있는 사람들.. 

-
요즘 읽는 책은 <노동의 배신>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이 일에 연민의 시선을 갖고 있는 내가 싫다.  

-
몰두해서 일을 하다 보면 퍼즐 맞추듯 물품들이 박스 하나에 기가 막히게 똑 맞아들어갈 때가 있다. 평평해진 표면 위로 박스 날개를 덮을 때의 뿌듯함.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과자를 종류별로 원 없이 먹은 후 죽기로 한다. 그가 주문한 과자들을 내가 포장하고 있다. 배달된 박스를 개봉했을 때 그는 이 '정갈한 예쁨'에 감동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박스 안의 상태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도취된 상태로 잠시 이런 상상을 했다. 

-
2월 20일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명절을 포함해 5일간의 휴식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5일을 쉬고 나니 염증이 생겼던 왼손 중지도 많이 가라앉았다. 일이 할 만하다. 돌아보면 이 일에 대한 분노도 많이 잦아든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
돌아보면 가장 후회되는 건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에 대해 근로감독관을 파견해달라는 요구를 안 한 거다. 이건 회사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물류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