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3건

  1. 2020.01.19 원주민 고양이
  2. 2019.11.03 횡단보도에서
  3. 2019.01.13 사이에서
  4. 2018.12.23 2018년 1~2월의 메모들(물류센터에서)
  5. 2018.12.14 자리
  6. 2018.08.08 너와의 거리
  7. 2018.07.07 20180707
  8. 2016.06.01 할머니
  9. 2016.05.25
  10. 2016.01.16 놀이터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원주민 고양이

일상 2020. 1. 19. 19:58

"어떤 대상을 불쌍한 존재로 보면 여러분들은 뭘 하겠어요? 길고양이가 불쌍하니 어떻게든 구조하고, 입양 보내고, 집고양이처럼 다들 편하게 사는 쪽에 에너지를 쏟고 몰두하게 되실 거예요. 또는 길고양이를 아주 천덕꾸러기, 민원만 일으키는 그런 존재로만 본다면 어떤 접근을 하겠어요? 민원 해결하기에 급급한 대상으로 보고, 그 이상의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는 발전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오랜 기간 저희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와 관악구에서는 많은 고민을 해왔어요. 이 길고양이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이고 길고양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되는지. 가장 핵심적인 건 이거였던 것 같아요. 길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에요. 영역 동물이라는 건 무슨 얘기냐면요,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 주민들이 다 이사를 가도, 캣맘이 한 명도 없어도, 공무원이 구의원이 다 바뀌고 모든 게 다 사라져도 거기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우리보다 더 원주민이에요. 없어지지 않아요. 주민은 이사 갈 수 있고 환경을 바꿀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그곳을 영역으로 삼고 원주민처럼 사는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고양이는 민원유발자도 아니고 천덕꾸러기도 아닌,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그냥 우리보다 더 앞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죠. 뒤늦게 들어와서 인간 위주와 편의대로 환경을 만들어놓고 고양이들이 살지 못하게 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겠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 있잖아요, 공존. 또 요즘 우리가 많이 듣는 말 있잖아요. 길고양이는 길에 사는 우리의 작은 이웃이라고. 작은 이웃으로 보고 길고양이와 함께 살고자 모색하는 길은 주민이 다 떠나고 캣맘이 하나도 없어도 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삶의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관악길보협 서유진 대표의 발언 중, 2020년 1월 8일 서대문구 동물정책 토론회에서)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관악길보협) https://cafe.naver.com/gwanakani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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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고양이를 보면 반갑다. 매일 채워두는 사료를 한그릇 싹싹 비운 걸 확인할 때마다 보람되고 안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건 가엾고 불쌍하다는 마음이다. 아픈 고양이를, 죽은 고양이를 볼까봐 두렵다. 이미 겪은 슬픈 일들을 잊지 않는 걸로도 마음이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로는, 나 혼자 전전긍긍하며 동네에서 몰래 밥주는 걸로는, 이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사실 이건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건의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테고. 이 과정을 관악길보협이 앞서 해나가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는다.    
고양이 덕분에 나는 주위를, 동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고마운 고양이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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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서

일상 2019. 11. 3. 17:51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한 아이가 달려간다. 통통한 여자 아이. 구르는 발소리가 묵직하다. 휠체어를 미는 노인이 뒤따른다. 서두르지만 좀처럼 빨리 나아가진 못한다. 횡단보도의 끝에 다다르자 아이는 좌측으로 계속 내달리고 노인은 오른쪽 길로 꺾는다. 내가 가는 길은 노인 쪽이다. 휠체어에는 다른 노인이 있다. 그의 머리칼은 정수리부터 둥그렇게 세고 있다. 이마에만 챙이 있는 모자를 썼다. 기운이 없는지 어깨는 약간 앞으로 기울어졌고, 양손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있다. 힘주어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소리. 다시 반대로 달려온 여자 아이가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을 딱 때린다. 질책하는 목소리였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걸어가는 남자 노인. 휠체어 뒤에는 노란 유치원 가방이 걸려 있다. 아이는 걸음 속도를 조절하며 휠체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이내 여자 노인의 손을 잡는다. 걸어가는 셋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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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

일상 2019. 1. 13. 13:16


<노동여지도>를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송민영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책을 더 읽는 건 그만두었다. 생각이 나 그의 추모게시판에 들어갔다.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와 인연이 없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였다는 것밖에. 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아니 그의 존재에 대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한동안 그의 흔적을 찾았다. 아마 또래라서, 여성이라서, 또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이라서 유독 끌렸을까.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또 친해지고 싶었다. 부질 없는 생각이었고, 그냥 마음 놓고 했다. 추모와 애도 사이에 있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도는 넘었는데 그렇다고 지인은 아니라서 끝내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상태. 그에 대한 기억을 내 안에서 퍼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몇 달은 잠에 들기 전마다 추모게시판을 들여다봤다. 2016년이었고 여름이 시작되면 나는 긴 배낭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출국하고 낯선 땅에서 거의 한 달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 지냈다. 홀로 움직였던 그 시간 동안 이 세상에 없는 자들과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와 인연은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송민영 님이었다.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갈구했는데 다만 삶이 얼마나 죽음과 가까운지 알겠는 기분으로 지냈다. 그런 기분은 다시, 정말 존재했음 그리고 어떤 삶이 있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기도 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깨달음은 사라지지는 않고 마음 어딘가에 쌓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부터 저런 생각에 휩싸여 지낸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 알고 싶어도 더 알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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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꿈에서 레일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컨베이어 벨트라고 알고 있는 걸 여기서는 레일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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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려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집 재계약 때문에(서류상 중소기업 재직증명서가 필요한 상황)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예상했던 기간보다 나는 더 오래 이 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힘들어도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절박한 생계가 되었다. 그러자 조금 불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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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없다면 이 일을, 그것도 이 계절에는 못 견뎠을 거다. 따뜻한 물로 씻으면 볼과 손등과 무릎이 녹아서 빨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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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믹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관리자들이 일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며칠 전 서류를 부탁하러 갔다가 사무실에 믹스커피가 많은 걸 봤다. 문을 열자 낯익은 직원이 보여서 "믹스커피 좀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이어폰을 낀 그가 짜증스런 얼굴로 "네?"라고 물었다. "믹스커피 좀 가져가려고요." "뭐요?" 난 정수기 위의 믹스커피를 가리키며 "저것 좀 먹고 싶어서요."라 했고, 그제야 그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더니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몇 개 챙겨줘."라며 맞은편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내가 재직증명서 서류를 부탁했던 하청업체의 관리 직원이다. 그가 믹스커피를 손에 가득 쥐여준다.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여자 직원에게만은 고맙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돌아 나오면서 '나는 지금 불쌍한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타인이 나를 불쌍하게 만든다.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애써 넉넉해지는 마음. 고작 믹스커피 몇 봉지를 얻으러 갔다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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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과 친절함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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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 앉아 매일 코카콜라 500ml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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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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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환경이 좋지 않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신입이 많으니 분위기는 어색하고 오래 다닌 사람들(그래봤자 몇 개월 더)의 텃세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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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레일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있다. 춥다고 긴 패딩을 입었는데 생각 없이 레일을 건너려다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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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틈틈이 읽는 책은 <남극의 여름>. 남극에서 물류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수십 시간 운전이라는 반복 노동을 하는 동안 파리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하루에 한 곡만을 무한 재생하기도 하고. 나도 일이 좀 적응되자(이 일은 단순 작업이라 배우는 건 금방이다. 익숙해지면 속도를 내는 문제로 접어드는데 사실 이게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 손이 기계처럼 노동하는 동안 머릿속은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출근길마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할지'를 정해본다. 오늘은 지난 배낭여행의 순간들을 복기했다. 파키스탄 훈자의 별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복기하려 할수록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보이는 별처럼. 그렇다고 정신의 전부를 딴 곳에 보낼 수는 없다. 그러면 꼭 실수가 생긴다. 균형을 잡는 긴장이 필요하다. 음악은 들을 수 없다. 지시를 내리는 무전기 소리를 들어야 해서다. 누군가 이어폰을 한쪽 귀에 끼고 음악을 듣다가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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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비누가 생겼다. 쉬는 시간마다 꼭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 묻은 손을 문지르면 구정물이 비져 나오는데 그걸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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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쉬는 시간에 맞춰 하고 있던 일이 딱 끝난다. 이 일의 노동 시간에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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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전형적인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다. 단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일하고 겨우 이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생각할수록 많이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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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때 아파서 잔업을 못 하겠다고 손을 든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동료들이 웃으며 "안돼. 안돼." 하며 데리고 갔다. 다들 웃어서 나도 웃고 말았는데 나중에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동료가 아프다는데 쉬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일을 하자고 관리자 앞에서 데리고 간다는 거, 정말 웃을 일인가. 한 사람이 빠지면 전체의 일이 많아져서다. 더구나 손이 빠른 사람이면 순순히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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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이 오늘부터는 '개인적인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피킹(주문장에 적힌 물품을 찾아 박스에 담는 일) 나간 시간을 기록하라고 했다. 내 주업무는 검수(박스에 담긴 물건을 바코드로 검수한 후 포장해서 내보내는 일)다. 하지만 레일 위에 박스가 적으면 우리에게 피킹을 시킨다. 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려는 거다. 관리자는 개개인이 하루에 검수를 몇 건이나 했는지 체크하는데, '피킹한 시간은 빼야 검수한 박스의 갯수를 정확히 체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건수가 적어도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과연 그건 배려일까.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감시받는다. 주임 왈, 어제는 전체 건수가 적어서 CCTV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확인해본 결과 "여러분이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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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관리자들의 친절함에 넘어가지 말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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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와 피킹하는 노동자를 파견하는 하청업체와 검수와 피킹하는 노동자를 관리하는 주임을 파견하는 하청업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나는 주임들은 인터넷 쇼핑몰 소속 정규직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저쪽 하청업체는 춥다고 파카를 단체로 입혀줬다. 이렇게 하나씩 새로운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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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영하 10도를 넘기는 날이 많다. 손등이 동창에 걸렸다. 동상은 아니라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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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피킹만 7시간을 했다. 물류센터를 계속 걸었다. 사각형의 한 면에서 한 면까지 걷는데 대략 5분 정도 걸린다. 이제는 팬틴 샴푸가 어디 있는지, 김치 사발면 6개입 박스가 어디 있는지, 복음자리 잼이 어디 있는지 잘 알겠다. 최대한 적게 걸을 수 있는 동선도 익혔다. 4시간이 넘어가자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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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킹을 끝내고 검수하러 돌아왔는데 박스에 동봉하는 사은품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레일 건너편의 조장에게 더 없는지 물어보려는데, 나를 돌아보는 조장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창백했다. 이마에서부터 피로가 흐르고 있었다. 이 시간쯤 되면 저런 얼굴이 되나? 이 추위에 매일 잔업까지 해서 힘들 텐데 다들 꾸역꾸역 잘도 버티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은 아파서 6시에 퇴근했다. 인사하고 떠날 때 얼굴을 봤는데 입술이 부어 있었다. 주임은 다음 주는 되도록 하루만 쉬어 달라고 "제발 부탁한다"고 말했다. 부탁이라고 말하니 더 얄미웠다. 이렇게 사람을 갈아서 회사를 운영해야 할까.(이런 전형적인 표현이 막 튀어나온다.)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누가 "오늘 사무실에 오예스가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아니 이런 날에 잔업시키면 김밥은 줘야 하지 않냐"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난 김밥보다 오예스가 더 좋고 오예스를 포장할 때마다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기다렸지만 결국 안 나왔다. 회사가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피부에 와닿아서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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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우니까 마트 안 가고 인터넷으로 물품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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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회사에 진절머리를 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터일 터. 애사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입 밖으로는 회사 욕을 하지 않아야겠다. 어쨌거나 난 '조금만 더 버티면 그만둘 수 있다'라는 마음을 먹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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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을 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크린도어에 내 모습이 비쳤다. 추위를 이기려고 남들보다 더 뚱뚱하게 옷을 껴입었고, 대충 봐도 꼬질해 보였다. 시선을 내리면 패딩 소매에는 시커먼 때가 묻었고 몸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이런 게 싫어서 조장을 비롯한 몇 사람들은 작업복과 일상복을 꼭 분리해서 입는다. 하지만 탈의실이 따로 없으니 번거로운 일이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에 따라간 적이 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아버지는 "이렇게 가면 식당에서 싫어해." 땀에 절고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당신은 아들이 깨끗한 곳에서 옷 더럽힐 일 없이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순간 짠하고, 오래 씁쓸했다. 왜 더러운 작업복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싶어서. 하지만 오늘 지하철에서 정장을 잘 차려입은 한 여성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직업의 위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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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의 위치에 있지 못하는데도 속물근성을 가진.
(이거 왜 썼을까. 다시 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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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하면서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주일에 이틀은 쉬어야 하는데, 쉬고 싶은데, 하루만 쉬기를 강요받고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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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일한 지 한 달째. 오른팔이 너무 결린다. 왼팔만 쓰려고 노력한다. 같은 날 입사한 분은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렸다고 했다. 그분의 주업은 패션디자인이다. 일감이 줄어서 부업으로 여기서 일을 한다고 했다. 둘 다 손목을 많이 쓰는 일인데 당장 어느 것 하나 멈출 수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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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조회시간. 조장은 주임에게 "레일 지나가는 박스를 보고 무거워 보인다 싶으면 작업대로 안 옮기고 그냥 지나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신입들이 그런다."고 고자질했다. 주임은 동조하며 "또 발각되면 그만두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 주임의 리더십은 제로다. 사정은 이렇다. 박스 안에 물건이 많으면 두 박스에 분리해야 하고, 그러려면 주문장을 하나 더 프린트해서 각 박스에 따로 붙여야 한다. 작업대마다 프린트가 있지만 대부분이 고장 났다. 좋은 자리는 연장자가 맡으니 프린트가 고장 난 작업대는 신입들의 자리다. 그래서 주문장을 추가로 뽑으려면 레일 건너편의 선임에게 부탁해야 한다. 욕을 먹지 않으려 박스 하나라도 더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잠시 작업을 멈추게 하는 부탁은 하기 꺼려진다. 중요한 건 고장난 프린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하는 한 달 사이에도 반 이상의 사람이 바뀌었다. 떠나면 그만인 곳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업무의 효율을 떨어트릴 테고. (이후 주임이 바뀌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고장난 프린트기를 고쳐주는 일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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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 뒷모습만 봐도 누가 누군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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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소를 시켰다. 관리자의 지시가 꼬였는지 한 사람이 혼자 휴게실 하나를 다 청소한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다짜고짜 나한테 와서 왜 청소하러 안 왔느냐고 따졌다. 반대쪽 휴게실을 청소했다는 말을 내가 꺼낼 새도 없이 그 사람은 자기 화만 쏟아내고 사라졌다. 퇴근하는 길에 화장실에서 그를 만났는데 미안했는지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비누가 어떻고 물이 어떻고 하는 말을 늘어놓고 갔다. 재밌는 사람. 걷는 모습이 특이한 사람. 


일을 하다 보면 곁눈으로 피킹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다. 유독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주문장을 확인하고 해당 위치에서 빠르게 물품을 뺀 뒤 레일 위의 박스에 담는 동작이 리드미컬하다. 흥이 느껴진다. 열심히 노동하는 풍경의 양면성이 있겠지만, 어쨌거나 성실하게 노동하는 인간을 보는 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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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 들어오지." 

(누구 말을 옮긴 건데 어떤 맥락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따뜻한 휴게실에서 차가운 물류창고로 나가기 싫어서 모두 신음소리를 낼 때 누군가 꺼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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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기 30분 전 레일에서 거친 소리가 나더니 결국 멈췄다.... 고장 났다! 자꾸 배실배실 웃음이 났다. 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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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 종이컵과 믹스커피가 있길래 '드디어 회사가 이 정도는 제공하는군!' 하며 믹스커피 봉지의 윗귓퉁이를 이로 물어찢는 순간 피킹팀 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다 주인 있는 거예요!" 일순간 조용해지고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나뿐 아니라 모두 들으라는 듯 "여기 있는 건 다~ 개인 물품이에요. 물어보고 먹으세요!" 만약 이 자리에 우리 검수팀 조장님이 있었다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서러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장이라는 사람이 종이컵과 믹스 커피를 공급하라고 관리자들에게 건의는 못할망정! 센 노동강도와 저임금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삭막함이다. 환경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개인에 대한 미움이 덜해지진 않는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도 인간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좋고 그런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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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중이라 설사가 난다. 하지만 화장실에 편히 못 간다. 평생 다닐 회사가 이렇다고 생각하면 아찔한데 조금만 더 버틴다고 생각하면 또 안심이 된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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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과 간식 먹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식당밥이 맛있다. 모든 물류센터 식당의 밥은 맛있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은 맛있다! 그리고 식당은 따뜻하다. 점심시간을 꽉 채워 식당에 머문다. 점심을 먹고는 식당 옆 편의점에서 파는 천 원짜리 초코퍼지 두 개를 잔업 간식용으로 산다. 먹을 때는 두 입째에 초코가 베어 나오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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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시간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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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과 칼을 고무줄로 묶어 다니면 피킹할 때 편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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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기른다. 손톱이 짧으면 때가 손톱 안까지 파고든다. 이것도 이제야 깨달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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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늘 마스크 낀 모습만 보던 사람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서른 살이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음악 프로듀서? 교육? 무슨 일을 하다가 알바로 왔댔는데 너무 작게 말해서 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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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검수팀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취미는 편의점에 새로 들어오는 과자를 먹는 거라고 했다. 난 사람들이 꼬북칩을 많이 주문해서 나도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사람은 꼬북칩 별로라고 했다. 둘이서 하루동안 입고팀에 파견돼서 알하며 조금 친해졌다. 그 친구에게 초코퍼지를 선물했는데 맛있었는지 대답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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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눈을 뜨면 출근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한 달째, 나는 이 일을 그만두었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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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은 게 잘못됐는지 배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업무 중에 작업대를 이탈했다. 급하면 당연히 화장실에 가도 되지만 나는 눈에 띄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참았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뛰어서 이동하는 걸로 눈치를 봤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작업대로 돌아왔을 때 한 선임이 말했다. "어디 갔다 왔어?" 추궁하는 말투였다. 화장실이요... 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가 잘못 들은 거길 바랐다. 관리자가 아닌 동료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게 더 서럽다. 물론 좋은 동료도 있다. 내가 한 실수를 함께 처리해주고 편하게 말도 걸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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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는 책은 <노동의 배신>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이 일에 연민의 시선을 갖고 있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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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두해서 일을 하다 보면 퍼즐 맞추듯 물품들이 박스 하나에 기가 막히게 똑 맞아들어갈 때가 있다. 평평해진 표면 위로 박스 날개를 덮을 때의 뿌듯함.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과자를 종류별로 원 없이 먹은 후 죽기로 한다. 그가 주문한 과자들을 내가 포장하고 있다. 배달된 박스를 개봉했을 때 그는 이 '정갈한 예쁨'에 감동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박스 안의 상태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도취된 상태로 잠시 이런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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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명절을 포함해 5일간의 휴식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5일을 쉬고 나니 염증이 생겼던 왼손 중지도 많이 가라앉았다. 일이 할 만하다. 돌아보면 이 일에 대한 분노도 많이 잦아든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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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가장 후회되는 건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에 대해 근로감독관을 파견해달라는 요구를 안 한 거다. 이건 회사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물류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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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일상 2018. 12. 14. 01:12


어제는 노란뿔테였는데, 오늘은 테가 없는 안경을 끼고 있다. 남자는 최근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한 달 새 안경이 바뀐 건 세 번째다. 하나같이 얼굴에 맞지 않아 보인다. 내가 남자를 지켜본 지도 일 년이 지났다. 퇴근이 빠르면 8시, 늦으면 9시, 10시, 때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그를 만난다. 아니 본다. 지하철 2호선에서 내려 발뒤꿈치들을 따라 계단을 오른 뒤 화장실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피해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개찰구를 통과하고, 그러고도 열 걸음 정도 더 걸으면 집으로 가는 방향의 출구가 나온다. 그 출구로 나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꺾기 직전, 뚜렷한 이목구비에 짙게 화장한 모델의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화장품 광고판 아래가 바로 남자의 자리다. 나는 오늘도 남자를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면서 본다. 보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보고 싶다. 오늘은 어떤 안경을 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물론 옷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떤 모양으로 앉아 있는지, 곁에 얼마나 많은 봉지를 늘어놓았는지, 머리카락이, 눈썹이 얼마나 자랐는지 구두코는 얼마나 닳았는지 나는 매일 그런 것들을 빠르게 탐색한다. 남자는 보통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거나 모로 누워 주위를 응시한다. 가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꼭 바닥에 볼을 대고 있는 채로다. 바닥의 서늘함이 좋거나 어쩌면 신발 굽 소리를 듣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남자는 검은 봉지에 얼굴을 박고 무언가를 먹고 있다. 얼굴에 맞지 않은 안경은 흘러내릴 것 같다. 그 위로 희끗하고 풍성한 눈썹이 꿈틀거린다. 봉지가 커졌다 줄어들 때마다 눈썹이 흩날린다. 남자의 몸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존재. 눈썹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 머리카락보다 더 길어질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남자의 주위를 지나간다. 오늘도 주위에는 봉지들이 늘어져 있다. 퇴근이 늦은 언젠가의 밤이었다. 한적한 역사 안을 한 남자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지 바닥을 노려보며 손으로 뭔가를 붙잡고, 붙잡고 하며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에 채이곤 하는 먼지와 머리카락 뭉치였다. 남자는 먼지를 붙잡아 봉지 안에 가두었다. 형형색색의 봉지들이 남자를 따라다녔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파카를 입은 사람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라고, 아니 슬프다고, 아니 그보다는 우울해진다고, 생각했다. 이내 발길을 돌려 출구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남자가 뒤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서서히 걸음을 늦춰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번화한 역 주변을 걸으며 남자는 봉지와 담배꽁초를 주웠다. 봉지는 야무지게 말아 주머니 깊숙이 넣었고 담배는 구석에 앉아 피웠다.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무언가를 계속 응시했는데 거리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펼쳐져 있어서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상품 매대 사이에서 남자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남자는 컵라면을 집어 계산대로 가서는 지폐를 건넸다. 건넸다가 도로 가져가서는 손으로 여러 번 잘 펼쳐서 다시 건넸다. 점원이 동전을 거슬러줬고, 남자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고, 주머니 깊숙한 곳을 탐색하는 손을 따라 고개는 점점 바닥을 향했다. 계산대 앞을 막은 남자를 점원이 더 이상 못 참아줄 즈음 그가 다시 신중하게 꺼낸 손에는 한가득 동전이 있었다. 남자는 손바닥을 좌우로 몇 번 흔들어 동전을 정렬시킨 뒤 계산대 앞의 기부함에 동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툭 툭 동전이 동전들 위로 하나씩 떨어지는, 신속하게 낙하하는 소리만이 내 귀를 울렸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밖으로 나온 남자는 익숙하게 건물의 귀퉁이에 쪼그려 앉았다. 라면을 먹는 남자를 계속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 이후 퇴근할 때마다 남자를 본다. 남자는 며칠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데 전보다는 깨끗해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한 달째 남자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먼지를 줍느라 손끝이 까맣다. 이제 남자를 스쳐 출구로 올라가는 찰나, 무심코 남자의 자리에 발을 디뎠다. 선 채로 내려다보이는 남자는, 작다. 무척 작다. 누구에게도 위협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가까이 다가선 나를 남자가 올려다보려는 순간 나는 광고판의 모델로 눈길을 돌린다. 가지런한 눈썹 아래 크고 까만 눈동자 안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난 모델에게 시선을 유지한 채 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나는 매일 그를 관찰하며 남자가 살아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지금의 자리를 잡게 된 사연을 짐작해본다. 기부함으로 동전을 하나씩 떨어트리던 그 마음을 궁금해한다. 다만 궁금해하고 짐작해볼 뿐 나는 그저 포물선을 따라 남자 주위를 지나갈 뿐이다. 남자의 시선이 되어보고 싶지만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두렵다. 지금처럼 매일 남자를 스쳐 지나가겠지만 만나지는 않을 작정이다. 사람들의 발뒤꿈치를 따라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바깥의 더운 열기가 전해지자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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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거리

일상 2018. 8. 8. 23:10

불을 끄고 누워 고요히 기다리면 잰걸음으로 다가와 곁에 눕는 너. 곁이라고 하기에는 내 팔 길이만큼 떨어져 눕지만, 네가 잠들면 네 몸에 가만히 손을 대고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숨은 느낄 수는 있는 거리. 가끔은 바로 잠에 들지 않고 새카만 눈으로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너. 맑은 눈동자를, 명료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슨 생각하고 있어?"라고 물어보게 된다. 영영 들을 수 없을 대답, 풀리지 않을 신비. 그게 슬프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다. 너는 너. 오롯이 너. 그리고 노력 없이 깨닫는 어떤 불가능함, 그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주문처럼 묻는다. "무슨 생각했어?" "무슨 생각하고 있어?" 반복되는 이 소리는 너에게 어떤 신호로 가 닿을까. 어제는 네 말랑한 발바닥을 손에 꼭 쥐고 잤다. 네 기분이 괜찮았는지 다행히 나는 깨물리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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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일상 2018. 7. 7. 22:19

길냥이들을 보면 가엾다. 몰골이 지저분하거나 마른 몸으로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특히 그렇다. 며칠 전에는 너무 늙어 수염도 몇 가닥 남지 않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계속 침이 흐르는 고양이를 보았는데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마음만 너무 아팠다. 불쌍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에게는 불쌍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려 주의한다. 누군가에게 동정이나 또 연민마저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건 내 오래된 윤리적인 고민이 지금의 태도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이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고양이에게 느끼는 무한한 연민과 동정에서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런 대상이, 생명체가 생겼다. 한없이 불쌍해하고 마음 아파하는데서 느끼는 이 이상한 자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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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일상 2016. 6. 1. 00:07


그냥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갈 참이었다. 촬영을 해야겠다는 작정을 하지 않고 온 터라 마음이 편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208호 할머니댁에도 들려볼까 싶었지만 이건 근처에 가서 충동적으로 결정해야지 싶었다.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를 돌고 있는데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동 앞에서 할머니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밀며 올라오시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고 할머니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나인 것을 알아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신기하고 막상 뵈니 참으로 반가워서 나도 웃었다. 그러잖아도 마침 어제 이 아가씨 언제 오는가 싶었단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뒤따랐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요구르트를 내오셨다. 지난 번에는 나 혼자만 마셨는데 이번에는 같이 마셨다. 대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잘 들어왔다. 좀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하니 딸네서 주는 것 잘 먹고 병원을 다녀 그런가보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라 산책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더니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단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니, 나 같은 늙은이야 가까운 곳만 살살 다니지만 자네같이 젊은 사람들은 천지 겁없이 다니다가 사고가 훨씬 많이 난다고 조심하라 하셨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갑자기 박수를 한번 딱 치면서 그러잖아도 어제 꿈에 내가 나왔다고 했다. 바쁠 텐데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이 입밖으로 정말 튀어나와서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서 깨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5월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게 생각이 나셨단다. 나는 얼마 전 묵주를 선물받았는데 오는 길에 보이는 성당에 들러 축성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거기 사람들을 잘 아니까 도와주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하셨다. 성당엘 다니는 할머니는 일요일 대부분의 시간은 그곳에서 보낸다. 교회도 가고 절에도 다녀봤지만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성당이 좋다고 했다. 저도 성당의 그런 점이 좋다고 하니까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 예, 예 답했다. 매번 해주시는 이야기들, 국가와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과 성당과 교육과 결혼에 대해 말하셨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는 눈이 자꾸 감기고 겨우 하품을 숨기고 저린 발을 꼼지락 거렸다. 듣기 좋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좋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볼라치면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사를 드리며 8월에 또 놀러오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주방으로 가더니 유기농 차와 말린 귤 껍질을 꺼내오셨다. 선물을 담아 크게 부푼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아파트 마당에서 다른 집 할머니가 놀자고 부르셨다. 누가 부른다고 말씀드리니 이제 기도시간이 되어서 나는 안 놀겠다고 하셨다. 그럼 그동안 건강하시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 있던 꽃나무들은 현관 앞에서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할머니께 질문을 드리면서 대화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에 작은 선물이라도 사와야겠다. 이렇게 할머니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할머니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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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6. 5. 25. 09:55


눈을 뜨자마자 낯선 기운에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가끔 촬영을 위해 들리는 아파트, 그것도 208호 집 안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집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곤 했었지. 난 대체 언제부터 여기서 잠을 잤던 걸까. 몸이 몹시 무거웠다. 너무 피곤해서 내일 출근할 일이 걱정되었다.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행여 아침잠 없는 옆집 할머니가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본다면? 침입자로 생각해 그 무뚝뚝한 얼굴로 호되게 소리를 지를 게 뻔했다. 그런데 왜 208호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걸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딸이 사는 곳에 몇 일 가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어지나 보다. 아니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이 집으로 몰래 들어온 걸까? 하지만 이 생각마저 압도하는 것은 할머니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방은 할머니의 손을 타 몹시 깔끔했고 곰팡이 자국이 흘러내리는 한쪽 벽에 꽃나무들도 싱싱한 그대로였다. 다음 날 나는 여전히 무거운 몸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 사람들은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대표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많이 만들어왔다. 사람들은 식탁을 만들고 식기와 음식을 날랐다. 같이 작업하는 디자인팀들도 와서 작은 사무실이 복닥거렸다. 음식이 다 차려지고 배가 고픈 나는 서둘러 의자에 앉으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어선 채 그대로였다. 그때 벽 한쪽에 걸려 있던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그쪽으로 시선이 향해 있었다. 화면에서는 아프리카 부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다. 지금껏 본 부족민들의 춤은 질서는 있되 각자의 움직임이 자유로웠는데 화면 속에서는 똑같이 각을 잡고 움직이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사람들이 서서히 부족민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따라 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따라하는 게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는 새 안무를 익혀 능숙하게 추고 있었다. 자꾸 늘어지던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춤에 취한 그때 회사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전해줄 게 있다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무언가를 툭 던졌다. 그러고는 가엾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의 등뒤에는 작은 사내 아이가 있었다. 아들이라고 했다. 여자는 밥을 좀 먹고 가면 안되겠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더욱 가엾은 표정을 짓는데 아이는 여전히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작은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대표는 한발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음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 여자는 갑자기 표정이 사납게 변하더니 사무실 주위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듯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자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몸짓을 멈추고는 아이의 팔을 낚아채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내가 몸을 날려 아이의 팔을 잡았다.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다면서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음식을 삼켰다. 그런 나를 여자는 흘겨보았다. 그리고 더 힘을 주어 아이를 잡아 데려갔다. 하지만 아이의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여자는 신발의 행방을 추궁하며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듯 일정한 간격으로 주먹이 아이의 작은 머리를 쳤다. 그 행동이 반복될수록 모자가 서있는 자리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땅밑으로 멀어져가는 그들을 향해 이것은 다 내 잘못이니 때리지 말라고 울며 애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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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에 들렀다.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부터 살아서 6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떠났으니까, 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4층짜리 건물이 세 개 동 있는 작은 단지였다. 외삼촌 명의로 된 집에 우리 가족이 월세를 내며 살던 곳,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너희집은 스무 평도 안 되냐’라고 말해서 상처받았던 열일곱 평의 집, 다들 좌변기를 들일 때 아직은 화변식 변기라 오래 똥을 누고 있으면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던, 한동안은 우리 네식구에 막내 이모까지 같이 살았던 그런 집이었다.
아직은 볕이 뜨거운 낮이었다. 그날 나는 캠코더를 들고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찍었다. 놀이터에 쭈그리고 앉아 숨죽여 고양이를 찍고 있는 나를 두고 엄마와 남동생은 ‘쟤는 왜 저렇게 쓸데없는 고생을 하나’라고 한마디씩 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자꾸 탄식이 나서 어느 곳이든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엄마가 소리칠 때까지 뛰놀았던 놀이터는 반으로 나뉘어 한쪽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나머지 반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쓰지 않았을지 모를 시소에는 버린 의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네의 줄들은 모두 끊어졌다. 이것들 사이를 고양이들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재개발추진사무소가 있었고 그래서 이곳 자체의 발전은 더이상 도모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살 적에 부모님이 종이 한 장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이곳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이십 년이 더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제 이곳에는 주민들이 모일 만한 곳이 없다. 하물며 쉬고 떠들만한 벤치가 없다. 건물은 참 많이도 낡았다. 외벽의 낡은 아파트 이름에 새칠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듯이 페인트칠은 조금씩 낡아가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파트 이름이 얄궂게 보였다. 불현듯 찾아와 이렇게 낡고 황량해진 모습을 보니 당연한 건데도 탄식이 자꾸 났다. 당연한 건가. 하나의 공동체이기도 했던 아파트 단지들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걸까. 콘크리트의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고 마는 걸까. 그럼 여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을이면 무성하게 대추를 맺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아직 있었다. 어릴 적엔 참 크게 느껴지던 그 나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내가 자랐기 때문이겠지. 책으로만 보던 이런 뻔한 이야기를 직접 겪으니 생명과 시간에 대한 경이는 두 배가 되는 기분. 대추나무에 대추는 여전히 많이 열리고 있었다. 아파트 계단에 놓여 있던 작고 깨끗한 자전거와 더불어 가장 생기를 느낀 장면이었다. 

내 또래 중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마음의 고향인 사람이 많지 않을까. 아버지가 어릴 적에 집 앞 실개천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했다던 이야를 해주었듯이, 나는 2층 창문에서 아파트 단지가 울리게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모래 날리는 놀이터에서 공을 차던 나와 친구들 모습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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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입자인데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돈을 꽤 벌어 도시의 끝 외곽에 집을 샀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다. 집을 사겠다는 부모의 악착같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소유하던 사람들은 딱히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재개발이 된다고도 했기에 그 기대도 컸을 것이다. 내가 알던 주민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릉의 낡은 아파트를 방문했다. 무너지기 직전의 이 아파트에 아직 사는 사람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한때 재개발에 대한 기대로 버티다가 이제는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의 집값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사정과 많이 닮아있었다. 아파트의 수명과 수명을 다해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한때의 욕망과 지금의 사정들에 대한 관심이 머리 한쪽을 채우고 있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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