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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4 기억에 호감을 가질 때

  대학 선배의 결혼식엘 갔었고 아주 간만에 낯익은 얼굴들과 마주치고 인사하고 사실 조금 아쉽게 헤어졌다. 그런 자리였다. 아직도 가끔 기억나는 일들이 많고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을 난 잊었다. 

식이 끝나고 둥글게 앉아 부페를 먹을 때였다. 굳이 할 말은 없어 여럿이 앉아 포크질만 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 알만한 선배가 앉아 있었다. 그 선배가 물었다. 

요즘 무슨 일 하고 지내?
네? 방송일 하고 있어요.
쳐다보지도 않고 접시만 쳐다보며 밥을 먹던 선배가 잠시 내 눈을 마주치더니 말했다. 

"꿈을 잃었구나."
그 명료한 말에 난, 왜요 하고 물어 볼 생각도 못 하고, 그런가요 하며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기한테 물었다.
글쎄 그 선배가 나한테 꿈을 잃었다고 하더라고. 왜 뜬금 없이 그런 말을 한 거지?
동기가 되물었다.
그게 아니라, "꿈을 이뤘구나" 라고 한 거 아니야?
아... 그런건가. 하며 웃었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꿈을 잃었는지 이뤘는지를 판단할 순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궁금했던 건 그와 나의 관계였다. 조금 더 정확히는 그 선배가 나에게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는가 하는 의문이었고 그건 결국 우리 사이에 추억이라 할 만 한 걸 기억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한 적이 있는지 내가 얼만큼의 내밀한 얘기를 꺼냈었는지 그가 나를 눈여겨 보긴 했는지 나는 그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건 뒤늦은 잔잔한 설레임이었다. 내가 어떤 기억에 호감을 가질 때 혹은 어떤 기억이 내게 호감을 가질 때, 그런 순간이었다. 기억이 났다. 그래 맞아 나는 이 선배와 몇 번 산책을 했었다. 각자 두꺼운 법전을 들고 학교 건물을 뱅뱅 돌었다. 아마 그때 나는 경계 없이 평소보다 더 말을 많이 했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보다 확실한 건 그때의 나는, 평소의 나 이상이었다는 거다. 그렇게 되기까지 전후의 이야기는 여전히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단호히 나에게 잃었구나 이뤘구나 라고 말하는 것도 그럴만 하니까 그랬을 거란 생각.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것도 그럴만 하니까 그런 것이다. 어쨌거나 기억 하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이 짧은 순간과 그로 인해 되짚어 보게 되는 몇 몇 짐작들을 떠올리는 일은, 설레임이었다.  

이뤘구나를 잃었구나로 잘못 들었든 잃었구나를 잃었구나로 옳게 들었든, 질문의 답은 내 안에 있다. 모르겠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 건지. '잃어가는 과정'이거나 '이뤄가는 과정'이라는 게 더 맞겠지만, 요즘은 과정이라 딱지 붙이면 되고 말 문제에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굳이 과정이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의 명료한 어떤 것이다. 그건 성과 보다는 자신감에 가깝다. 

그나저나 난 선배에게 뭐라 말했던 걸까 그가 내게 단호히 말했던 것만큼 그 옛날 나도 자신있게 내 꿈에 대해 말했었겠지 그 말이라도 기억이 나면 좋을 텐데, 생각이 나면 좋으련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