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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감독_우니 르콩트)
 


 올챙이알처럼 투명하고 까만 눈을 빤히 뜨고 있는 매혹적인 진희의 얼굴 때문에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다가도, 마르고 야무진 팔뚝으로 인형을 다 분질러 버릴 때, 널어놓은 이불에 방망이로 분풀이질을 할 때, '이제 나는 죽을 거예요' 흙을 파서 그걸 제 몸에 제 얼굴에 덮을 때. 마음이 뻐근해지면서 어린 내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아이가 슬퍼한다. 더 이상, 그저 고아원에 버려진 진희의 상실감이 아니라, 누군가들의 상실감이 된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본다. '아이의 슬픔'에 대해. 진짜 슬퍼하는 건 아이가 아닐까 하고. 

여행 가자고 예쁜 옷과 신발을 사준 아빠가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을 때,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상투적이 되어버렸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코 이건 흔하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삶이다.) 겨우 정을 붙인 친구가 같은 곳에 입양되자고 약속 해놓고 그냥 혼자 떠나버렸을 때. 왜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하며 슬픔을 채워가던 아이. 믿음이 허물어질 때마다 아이는 더욱 표독스러운 얼굴을 가지게 됐고, 그만큼 더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아, 없었으면 좋았을 상처, 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젠 너도 아 잊어버려야 돼' 라는 원장님의 말을 겨우 인정했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슬쩍 웃는 진희를, 나는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받았을 상실감을 넘어, 이 아이 안에 곪아 있었을 상처가 영화에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새엄마가 데려온 애기를, 그냥 너무 예뻐서 한번 안아본 건데 애기가 울었단다. 갑자기 피를 흘리며 엉엉 울던 애기는 제 옷핀에 찔린던 거였다. 사람들은 자기 때문에 애기가 죽을 뻔했다고 했다. 고개도 못 들고 계속 색연필질을 하면서 제 눈동자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아이. 진희야 울지마 진희야 울지마.
그것 때문에 아빠가 널 버렸다고 생각하니? 진희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린다.
캐릭터를 깊이 있게 만드는 이런 작은 요소 하나 때문에, 오래도록 나는 그 캐릭터에 들러 붙어서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게 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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