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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7 눈으로 희망을 쓰다 (1)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여름엔모기가내가보는앞에서 

당당히내피를포식해도

불난집구경하듯

바라만볼수밖에없다


박승일. 그는 지금 루게릭병에 걸렸다. 연세대 농구팀에서 활동하다 2002년 유학을 다녀온 후 31살에 국내 최연소 농구 코치가 되었던 승일. 한창 인생의 상승 곡선을 타려던 차 바로 맞물리며 찾아온 병.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리는 루게릭. 정신은 멀쩡한데 전신은 모두 마비될 것이라 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고통은 정신으로 모두 느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승일은 그 몸이 다 할 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전히, 더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이규연, 박승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이규연, 박승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이십대를 훌쩍 넘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승일의 얼굴이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저녁밥을 먹다 눈길을 돌린 텔레비전에서는 아주 키가 큰 남자가 침대에 누워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목에 연결된 호스와 팔에 꽂힌 링거 주사, 무표정 뒤에 감춰진 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을 법한 선한 표정. 아마 그때는 겨우 입술을 움직여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냈던 것도 같다. 몇 년이 지나고 그는 이제 눈꺼풀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얇은 막 하나, 눈꺼풀. 그게 영원히 닫힐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나날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아침마다 눈꺼풀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떻게든 식사를 하고 똥도 싸고 사랑을 하며 세상과 부지런히 대화를 한다. 그 눈꺼풀을 일으켰을 때 보이는 눈동자로, 그는 글을 썼다. 안구 마우스라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서다. 이 책은 2005년부터 약 4년간 박승일과 중앙일보 이규연 기자가 주고받은 이메일과 지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승일의 이메일은 교정하거나 교열하지 않고 그대로 실렸다. 남들보다 몇 십 배는 더 걸려 쓴 이메일은 띄워 쓰기도 안 돼 있고 글자 하나 지우기도 벅차 곳곳에 맞춤법이 틀려 있다. 그의 이메일은 진정 글자 한땀 한땀으로 보인다.

그가 부지런히 세상과 대화하려 하는 건 자신과 같은 루게릭 환자들을 위해서다. 그는 꼭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전용 요양소를 건립하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병을 알리고 루게릭 환자들을 도와 달라 요청한다. 승일은 대한민국에서 루게릭 환자로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루게릭병을 무거운 잠수종에 갇힌 신세나 사그라드는 촛불이라 말하지만 승일은 스스로를 물귀신이라 비유한다. 가족들까지 함께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이 책을 쓴 이규연 기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식이었던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이용해 승일의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신문의 일면에 실렸다. 사람들은 그 기사를 보며 감동했다. 마음을 움직였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건립되지 않는 요양소를 위해 승일은 기자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의 대한 책을 써달라고. 몇 번이나 망설였던 기자가 결국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그의 꿈이 단순히 승일의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믿어서다. 이 책이 꼭 나와야 했던 이유도 무엇보다 승일이 ‘대한민국의 루게릭 환자’이기 때문이다. 치료받고 보조인을 쓸 돈이 부족해서 외롭게 그냥 죽어가는 장애인이, 그런 환자에 대한 부담을 전적으로 도맡으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가는 장애인의 가족이, 그걸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회제도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희망을 말하고 너무 쉽게 희망을 버리고 마는 사람들. 이 흔하디 흔해져버린 희망이란 말이, 이 책을 통해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희망은 승일과 같은 불치병 환자들이 한때 절실하게 꿈꾸었지만 이내 실망해야 했던, 황우석 박사가 보여준 그런 희망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을 벌떡 일으켜 주겠다고 하기보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차별 없이 덜 불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라고’, 그런 희망에 나 역시 더 끄덕여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상황에서 뭘 버려야 하고 뭘 꿈꾸어야 할이지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자신이 믿는 꿈을 위해 어쨌든 이승의 개똥밭을 구르며 싸운 사람, 이런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이 왜 다들 감동하고 마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드는 마음들, 삶의 의욕이 생기고, 타인도 돕고 싶고, 내 주위 사람도 한 번 돌아보게 만들고, 그냥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게 그저 ‘희망’ 일지도 모르겠다. 사지가 멀쩡해도 무기력해지고 마는 게 사람인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도록 되어버렸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통해, 특히 비장애인들은 더욱 감동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야 비로소 ‘발견’하는 나의 살아있음 같은 것. (그렇다면 어쩌면 비겁한 위로일는지도)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작지만 그가 볼 수 있는 ‘세계’는 넓다. 그게 부럽다. 나이 먹는 것도, 철드는 것도, 더 나아지는 과정이란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또 다짐해본다.


‘난 산다’라는 문구를매일같이써나갈 것이다

만약내가쓰지못하는날이생기더라도

그것은포기의뜻이아닌

잠시몸이불편해진것이라생각하면된다

대신누가날대신하여계속써주면된다

하루에한문구

‘난 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