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날씨에 감기조심 밥은 꼭 먹고. 늙어가는 애비”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몸과 마음이 살얼음처럼 위태로운데 문득 날아온 아빠의 문자에 찬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 마음이 아릿하다.

답 문자를 보내본다.

“아부지도 추운날씬데 몸조심하세요. 아부진 술안마시면 젊어집니다. 같이 늙어가는 딸내미가”
“근데 아부지 이제 안 늙도록 딸내미가 빨리 자리 잡아야 할 텐데...”



이제 25살 대학 휴학생인 나는 올해 시작부터 유난히도 흔들렸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 현재의 가치관, 미래에 대한 고민 그런 것들은 내 머리를 흐르고 흐르다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로 수렴된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라디오 뉴스는 나를 더욱 방황하게 한다.

“2008학년도 주요 대학들의 1년 평균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주요 국립대와 사립대들은 올해 등록금을 최저 5%에서 최대 30%까지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벌써 네 번의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매달 말 통장에선 몇 번씩 대출이자가 잔액을 깎아 내린다. 한두 번 받던 대출에도 나중에 갚으면 되지 했는데 이젠 불안하다. 예전처럼 졸업 후 다 갚으면 돼 하는 자신감은 사라진다. 졸업의 문턱에 취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이 당연시 되고 있는 때에 그 기간마저 계획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나 하나쯤 먹고 살 걱정은 안 된다 해도 등록금 빚을 갚기엔 부족할 것이고, 노후대책을 늘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줄 자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출을 갚기 위해 40년 동안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까봐 서글퍼지기도 하다.

등록금은 오르는데 그만큼 나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 학비에 부모님들은 늘 걱정 또 미안해하시며 더 늙어 가신다. 그렇다 해도 난 대학을 포기할 순 없다. 초등학교 졸업만큼 당연한 배경이 되어버린 대학을 포기할 만큼 난 뛰어나지도, 용기가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지구를 떠받치고 우주를 품고 싶었던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의 힘보다 약해지며 자꾸만 키가 줄어들고 결국은 바스스 흩어져 버리는 것만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대학등록금 1000만원시대] 이자 내기도 버거운 취업난 ‘88만원 세대’
“가장 무서운 게 등록금 고지서”

그런데 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데도 자꾸만 외롭다. 이건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그저 옆 사람의 말에 끄덕거리고 토닥거려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린 지독한 생존 문제에서 벗어난 세대지만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나아졌고 또 그만큼 나빠졌다.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세상이 정해준 기준에 따라가기엔 여전히 숨차다. 그래서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어’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견고히 쌓인 모형 같지만 어딘가 구조가 틀어진 건 아닐까 하고. 그 사이에 끼어 우리가 신음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제 목소리를 내게 하고 공동체를 다시금 활성화 시켜보자고 친구들과 고민하고 기사를 썼다.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본질을 파고들지 않고 기계적 중립성만을 보이거나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희망을 고문하는 대학 잡지들이 싫었다. 딛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빨리 버리고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발버둥 쳐야하는 우리네 모습이 서글펐다.

하지만 이젠 내가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 라는 말을 많이 할수록 나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이제 나는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보수화되지 않기를,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칭얼거렸던 내 모습이 철없다 느껴지기도 하다. 차라리 철들지 말아야지 했던 내 바람도 수면의 경계를 넘나들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새해에 내려간 고향에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세상 탓 하지마라.’
그 한마디에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던 내 나침반을 도둑당한 기분. 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도 명절이 다가오면 친척들 만나기가 괴로운 사회지 않은가. 다시금 나는 거리를 방황하다 중력에 충실한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 땅에 붙을 만큼 자꾸 작아진다.

아아. 당분간 나는 많이 앓을 것 같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