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09.02.16 습관대로 살지 않고자
  2. 2009.02.06 vegemil B Sweet
  3. 2009.02.01 내사정아닙니다 2
  4. 2009.01.21 지금 이곳
  5. 2009.01.10 2
  6. 2009.01.08 이곳은 마을회관이 아닙니다
  7. 2009.01.05
  8. 2009.01.02 아나키스트
  9. 2009.01.02 울렁증 1
  10. 2008.12.29 공간, 버스 2

 

평소에 있을 때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잖아요. 평소에는 사람이 생각을 안 하거든요.
생각하고 사는 것 같지만 생각 잘 안 해요.
그냥 습관대로 사는 게 우리잖아요.
철학을 한다는 건 그 습관에서 벗어나는 사유의 선을 그리는 거예요.

_들뢰즈. 천 개의 고원. 강의 보다가 남긴 기록. 


요즘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생각하기'다. 바쁜 일상 속에서 불현듯 툭툭 떨어지는 사유보다 (물론 이런 사유들의 가치를 안다. 지난 4년 간 난 이런 사유만 했다.)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것이 필요한 날들이다.
그 뭐냐 홍상수 감독 영화 <극장전> 보면 나오잖는가.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 생각은 중요하다. 끝까지 생각을 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나 스스로에게 죽음을 선고하지 않기 위하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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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emil B Sweet

일상 2009. 2. 6. 03:21
부패하여 퉁퉁부은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는다
베지밀병에 몸을 구겨넣는다
빈틈없이몸을둥글게말기위하여나는나를부패시켰다
이제나는
숨을죽이고죽이고

숨을죽이기위하여나는미리죽지않았다
피어나는곰팡이를관찰하기위하여견딘시간
이공간으로오기위하여나는 시간을죽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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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정아닙니다

일상 2009. 2. 1. 00:52

1. 전화 인터뷰를 했다. 20대인 또 대학생인 나의 <사정>에 대해서. 주제는 '88만원 세대'
작가는 내<사정>에 대한 내<입장>을 듣고선 말했다. 
연연치 않고 정말 낙관적이세요-

쪼근쪼근 속내를 더 말하려다 말았다.
철없다로 치부되기 싫었던 반발심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질문>은 이미 특정한 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듣고 싶은 어떤 말이 있는 거다. 시시해졌다. 
나 같은 대학생에게 듣고 싶은 얘기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주제가 88만원 세대라면. 그들에게 나는 쓸모없는 취재원이었다.
그냥 껄껄 웃으며- 그렇죠 제가 좀 철없어 보일 수도 있죠, 라며 여운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 내 얘기를 듣고는 친구가 말했다. 
'차라리 88만원 세대의 사례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은 거지' 

그래, 88만원 세대라는 20대의 우울한 자화상 안에 갇히지 않아야지.
그것이 내가 서열의 맨 꼭대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88만원 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특정한 기준에 포획되고 싶지 않으니까.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고프니까.  


 
2. 하지만 내 확신에 대해서는 늘 경계한다. 가끔 내 앞의 누군가에게 뭔가에 씌인 듯 내 인생관에 대한 확신으로 열변을 토하고 돌아서면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그렇게 행동하는 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한다,가 아니라 생각을 해본다.

내 삶에 너무 확신을 가지면 성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늘 분열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연기자의 태도일 지도 모르겠다. 
기뻐하는 순간 그 기뻐하는 나를 관찰하는 것.  



3.
그리고 확신을 피하는 내 모습이 <성찰> 아닌 <실천>에 대한 자신 없음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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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

일상 2009. 1. 21. 00:10


# 작년 한 수업 시간에 전두환이 스포츠로 은폐한 부조리한 일들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게 됐다. 아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꽤 오래된 티비 다큐물이었을 것이다.
전두환 저새끼 저새끼 하다 결정적으로 억 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었다. 아주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88올림픽 당시 판자촌이 미관을 해친다 하여, 정부는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땅에 굴을 파서 살게 했다. 판자촌을 철거당한 사람들이 고속 도로근처에 판 땅굴로 들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발상 자체를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88올림픽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자꾸만 주변으로 밀려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흑백영상에 표정조차 읽히지 않는 사람들이 땅굴로 들어가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화보다 수치감을 주었다. 그렇게 하라고 한 정권보다 그렇게 땅굴에서 생활하기를 수용했다는 사실이 더 속상했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들의 예의가 혐오스러웠다.


# 철거민들이 죽었다. 진압하던 경찰도 죽었다. 사람들이 죽었다. 자꾸만 삶을 죽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드는 사건들이다. 
거리를 걷다 멈추어 문방구 앞에서 아저씨들이 대화하는 걸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중요하지. 철거민들도 제 목숨까지 내놓고 싸워야 했나"
맞다. 어떻게든 죽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들은 살기 위해 싸운 것이지 죽을 작정을 하고 싸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자 한 아저씨가 '또 누구 한명이라도 죽어야지 정신을 차리지' 라며 물대포 차를 향해 달려 갔다. 그러면 안된다. 어떻게든 죽는 건 안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면 나는 왠지 무기력해진다.  

#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재산 한 푼 더 모으려고 건물짓고 땅 투기 하는 짓들. 제발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돈이라는 허상에 왜 그리도 제 목을 매달지 못해서 안달일까. 인간과 돈에 대한 예의만 있을 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들에 대한 예의는 없는 곳. 사유하지 않는 곳. 
있는 자들 더 배불리려고 내가 왜 쫓겨나야 하나. 더구나 그렇게 무자비하게 쫓아내는 건 개발을 위한 철거가 아니라 추방하기 위한 추방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조차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

가난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말을 믿으며 나 하나 그렇게 생활한다 해도 세상은 변하는 것 없다. 이런 사건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왜 일까. 그래도 내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데..
제도 때문인걸까. 그러고 보면 건물 사고 팔고 주인과 세입자의 권리 등 법에 이미 다 나와 있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 그거 지켜야 마땅한건데, 이제와 보니 대체 그런 법들에 누가 동의했고 누가 만들었는데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 닥쳐 사람을 죽이나. 



어제 이 장소엘 가보고, 내가 한때 뻔질나게 지나다니던 길이라는 걸 알았다. 수도 없이 이 건물을 봤었겠지. 왠지 도시의 모든 건물이 시한폭탄같다 느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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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09. 1. 10. 00:35


                     

                 오늘 밤 바다로 가면
                 썰물에 밀려 달에 다녀올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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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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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09. 1. 5. 02:52


12월 30일 이른 아침. 양평 용문사로 향하는 길 어디 즈음. 눈 내린 다음 날.


꼬리에 강아지풀을 달고
모든 곳이 제 집인양 여기저기 오줌 찍찍 누며
앞장서서 걸어가던 너.

좋겠다.
햇살이 너 비춰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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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일상 2009. 1. 2. 12:17


이 곳은 서울 중심부의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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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렁증

일상 2009. 1. 2. 00:52

얼마 전 낙산공원 가는 길에 그네를 탄 적이 있다. 그 때문일까. 다시 울렁증이 심해지고 있다. 울렁거림을 느끼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가령 남의 집에서 잠을 잘 때마다 그랬다. 물론 어릴 적이다. 낯선 이불 냄새가 포록 올라올 때마다 현실감이 뚝뚝 떨어지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탈 때가 가장 심했는데 묘하게 그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그건 세상에 대한 이질감이다. 살면서 사는 것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공기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울렁증 때문에 순간의 적응도가 뚝 뚝 떨어지면서도 묘하게 존재감이 상승한다. 그건 살아 있다는 충만감이 아니라 위태로움이다. 인식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여기서 튕겨나갈 것만 같다. 살얼음을 딛는 것처럼. 한 발자욱조차 뗄 수 없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태는 이내 무력감으로 바뀐다.  
어릴 적엔 워낙 세상 물정을 몰라서 아직 많은 것이 낯설어서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제와 다시 느끼는 울렁증은 참으로 나를 서글프게 한다. 어떤 순간 어떤 사건 앞에서 울렁증은 재바르게 나를 흩트러 놓는다. 세상 이런저런 것을 많이 경험했다 생각했는데, 부쩍 잦게 찾아오는 울렁증 앞에서 무력감만 짙어간다. 두려워진다. 엄마 냄새 나는 익숙하고 포근한 곳으로 빨리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약해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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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버스

일상 2008. 12. 29. 01:16


한때 꿈이 있었다. 아침마다 가방에 서너권의 책과 노트를 담는다. 한솥 도시락 하나와 커피우유랑 팥빵을 산다. 버스를 탄다. 뒷바퀴가 있는 좌석 창가에 앉아선 책을 읽는다. 
그게 생활이다. 
버스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 당분간의 매일매일이 혼자 있기 좋은 날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내가 아는 한 서울 구석구석을 가장 많이 돌아 다니는 버스 143번 . 그 버스를 타고 나는
카프카를 읽어야지. 정오쯤엔 종점에 도착하겠지. 그 곳에서 한솥 도시락을 뜯어 식사를 한다.
먹고는 기사 아저씨들 틈에 끼어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다시 버스를 탈거야.

얼마나 졸릴까. 버스 창문에 기대어 결코 닿진 않는 창문 밖 햇살을 희미하게 느끼며
낮꿈을 꾸어야지. 잠에서 깨면 버스는 반쯤 거리를 달렸을까. 집으로 되돌아 가지 않기 위해
나는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한다. 그리고 다시 오른 버스 안에서 나는 수잔 손택의 책을 꺼내 읽는다. 매일 아침 그 날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얼마나 설렐까. 한솥에서 도시락을 고르는 일 그 날 먹을 빵을 고르는 일도. 중요한 건 낮이 밤으로 바뀌는 그 경계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거다.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이 매일 매일 달라질거라 믿었고 그 느낌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즈음이면 빵과 우유를 꺼내 저녁을 먹을 시간이겠다. 퇴근시간이겠다. 이내 버스 가득 지친 얼굴들이 둥둥 떠오르겠지. 그들을 올려다보며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나름대로 상상해 볼 것이다. 그러다 이내 나는 또 한번 잠에 들겠지. 아무 일도 없이 죽 그 자리에 앉아 있었겠지만 그들만큼 나도 피로하다. 또 한권의 책을 꺼낸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은 내가 사치부리는 물질, 중요한 건 버스라는 공간
어릴 적 나는 멀미가 너무 심해 차를 탈 때마다 얼굴이 노래져 엄마를 놀라케했고 시골가는 버스를 탈 때마다 바닥에 토악질을 해서 아빠를 곤란케했다. 그런 아이가 이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녀도 멀미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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