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09.06.25 졸려
  2. 2009.06.25 이명박 허수아비
  3. 2009.06.10 울면 지는 거라 2
  4. 2009.06.07 어느 - 속
  5. 2009.06.06 이 기운
  6. 2009.06.04 인간 1
  7. 2009.05.22 생강차의 맛
  8. 2009.04.30 그래.
  9. 2009.04.26 단지 안 깎았을 뿐입니다
  10. 2009.04.26 온기

졸려

일상 2009. 6. 25. 01:49

(타인과 내가)
같을 거란 믿음
다를 거란 희망

같고 다름을 나누는 내게 믿음과 희망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믿음과 희망 '같은 건' 겪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진실이 된다.
'같은 것'은 없고 '무엇과 같은 것'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희망이라기 보다
위로와 자만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지 믿음일 뿐이다.



다시 고쳐
다를 거 없다는 믿음
다를 거라는 희망

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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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허수아비

일상 2009. 6. 25. 01:27
 
이회창과 이명박 정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론’에 대해 “이를 근원적 쇄신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MBC 라디오에 나와 “국정혼란의 원인은 대통령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 대통령이 중도에 있지 않고 우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또한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의 ‘중도실용론’에 대해서도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다”며 “중도우나 중도좌가 있는 것이지 좌도 우도 아닌 아주 순수한 중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환상”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국민통합 도모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할 사회통합위원회에 대해 “무슨 일이 생기면 기구를 만드는데 하나의 고질적 병폐”라며 “노무현 정권 때 걸핏하면 위원회를 만들어 결국 정부기구 늘리고 예산만 퍼넣었는데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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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회창 총재의 정세 분석이 날카롭다. 일전에 내가 칼럼으로 썼듯이, 이회창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존재이다. 이총재는 국정혼란의 원인으로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꼽았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리더십의 부재를 해소할만한 뾰족한 수가 이명박 정부에게 없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총장 임명을 놓고 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인적 쇄신'이라는 말은 결국 이명박 라인으로 검찰을 교통정리하겠다는 건데, 이건 강력한 리더십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오락가락하는 정국에서 이런 강제는 반이명박 세력만 더 확장시킬 뿐이다. 전선은 확대될 것이고, 조갑제나 김대중 같은 우파의 입에서 대통령 탄핵의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명박을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는 건 전략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의 독재는 강력한 국가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나오는 게 아니라, 이명박이라는 기표를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정부 내 특정세력들이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권력의 작동은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출처 : 이택광 블로그 wallflower.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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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이 수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욕을 먹으면서도,  그는 마치 의성어나 의태어로만 둥둥 떠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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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지는 거라

일상 2009. 6. 10. 00:22

죽어도 나한테는 지기 싫어서 울지 않으려 눈물을 꿀떡꿀떡 넘긴다.

아. 유치해.


그래도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은
참. 황홀하다.

이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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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 속

일상 2009. 6. 7. 10:35



헤집어진 여러 개의 마음들이 흩어져 있는 풍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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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운

일상 2009. 6. 6. 01:14

수업시간에 남과 여의 차이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거진 70명되는 학생들이 있었고 흥미로운 주제인지라 다들 집중하고 있었다.
재밌는 실험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자는 공감능력 남자는 체계화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엄마들이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와 같이 놀다 일부러 다친 척을 했다. 채 두 살이 안 된 아이들 같았다.
남자 아이는 엄마가 아프다고 우는 척을 해도 신경을 안 쓰는데, 글쎄 여자 아이는 처음엔 어리둥절 하다가 이내 눈물이 그렁 그렁 결국엔 엉엉 우는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장면을 잊지 못 하는 건 아니 이 순간을 잊지 못 하는 건, 스크린 안의 여자 아이가 엄마가 아파하는 걸 보고선 까맣고 커다란 동공에 눈물이 차기 시작하는데, 교실 안의 여학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눈물을 닦느라 정신 없는 풍경 때문이다. 나 역시 눈물을 훔치며 주변을 흘끔 돌아보았던 게지.
아파하는 엄마를 보고 울기 시작하는 여자 아이, 그 아이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갈 때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스크린 밖 여학생들. 이 기운이 묘해서 빙글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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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일상 2009. 6. 4. 01:37

그의 죽음 앞에서 새삼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어떻게든 죽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말하면서도 산다는 건 매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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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차의 맛

일상 2009. 5. 22. 03:25


"감기엔 무슨 차가 좋을까요?" 

오후 카페지기 하는 날, 책을 읽느라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나는 고요를 깨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든다. 얼굴을 보니 연구실에 오며가며 그저 한두 번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다. 봄 더위에 얼굴이 땀에 젖었다. 목소리가 가쁜 걸 보아 연구실에 오자마자 카페로 곧장 왔나보다. 거기다 감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 이 봄에 감기라니. 그녀가 피곤한 기색으로 웃는다. 웃으며 보이는 치아 교정기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생강차를 권한다, 얼마 전에 들어온 유기농 생강차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좋다 한다. 냉장고에서 생강차를 꺼냈는데 병마개에 꿀이 쫀쫀하게 묻어 잘 열리지 않는다. 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낑낑대는 내 행동이 재밌는지 계속 쳐다본다. 천성이 살가운 듯한 그녀의 행동에 쑥쓰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 진다. 봄 햇살 때문인지 고개 돌리는 곳마다 봄 더위에 반질해진 그녀의 얼굴이 눈앞을 따라다닌다. 잘 익은 바나나색 머그컵을 가져 와 생강차를 듬뿍 듬뿍 담았다. 많이 줄게요, 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와 고마워요, 하며 고마워한다.
 
너무 진해서 생강맛에 맵지 않게 그렇다고 싱겁진 않도록 뜨거운 물의 양을 맞추는데 신중을 가한다. 그리곤 왠지 아쉬워 생강이 배인 꿀을 한 숟갈 더 탄다. 먹어 봐요. 맛있어요? 그녀가 마시기도 전에 물어 본다. 그녀는 서둘러 한 모금 마신다. 미안해요, 코가 막혀서 맛이 안 느껴져요, 라며 미안해한다. 그래도 단맛이 남는 것 같아요, 라며 웃는다. 나도 살갑게, 이거보세요 되게 좋은 꿀 같아요. 생강차가 담긴 유리병을 들어 보여준다. 곁에 바짝 붙어 쳐다보던 그녀가 말한다. 천연 꿀인가 봐요.
 
몇 모금 길게 생강차를 마신 그녀는 무슨 얘기를 꺼낼 입모양을 한다. 막지 않는 한 늘 열려있는 귀.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귀의 존재를 새삼 느낀다. 저항 없이 듣도록 만들어진 귀의 존재가, 오만하지 않은 귀가 좋다.
 
"다음 주까지 교생실습을 해요." 중학교 1학년 교생을 나간 그녀는 학생들 상담하는 일을 맡게 됐단다. 오늘 상담한 친구는 별 존재감이 없던 반장 아이였다. 얌전하던 그 아이가 상담 도중 복수를 하고 싶다 했단다. 자기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 했다고. 담임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꺼내지 못 했던 속마음을 교생인 그녀에게 꺼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상담이 끝났는데 그렇구나 하고 그냥 인사하고 돌아설 수가 없어 그 아일 데리고 남산으로 홍대로 놀러 다녔다고 한다. "이거 예쁘죠?" 그녀가 가슴에 꽂힌 뱃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동그란 뱃지에는 불꽃이 그려져 있다. "홍대에서 행사하더라고요. 종이에다 자기 소원을 적으면 이걸 선물로 주더라고요." 무슨 소원을 적었을까.
 
훕 훕 생강차 마시는 소리가 달아 생강차 한 잔을 더 탔다. 한 번 씩 생강 건더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호기심에 생강을 먹어 본다. 뜨거운 물 때문에 순해진 탓인지 덜 맵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런 생 생강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이건 매운 맛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두 개, 세 개, 일부러 생강을 띄워 올려 입 안에 넣고 계속해서 씹어 본다.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알게 될 때까지. 그렇다고 믿었던 매운 맛에서 벗어날 때까지 말이다.
 
"저도 변할지도 모르죠"
난 변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걱정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덜 변할 거라고 답해 본다. 좋은 선생님이 되세요, 라고 말하고는 그 좋은, 이란 말이 너무 뻔해 다른 말을 찾아보려는데 그녀는 그러고 싶다며 곧바로 대답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나 보다, 좋은.
 
꽤 오래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했다. 눈을 마주치고 있다고 의식하게 된 순간, 나는 그만 어색해져 슬쩍 고개를 피해가며 대화했다.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눈을 마주보며 얘기하는 그녀가 부럽다. 그녀의 나이에, 나의 나이에, 우리 세대가, 다시 세대를 넘어 그녀가그냥 어른 말고 좋은 어른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모두 다 이미 알고 있는 좋은, 말이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덧 저녁식사시간이다. 세미나를 끝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오늘은 연구실에 사람이 많은지 식당에서 카페까지 밀려 왔다. "밥 먹어요" 감기 때문에 밥맛이 안 인다던 그녀는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이내 밥을 먹으러 가겠다고 한다. 맛있게 먹어요, 네 안녕히 계세요. 다시 봐도 치아 교정기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글자를 새하얗게 지울 정도로 강한 봄볕이 어느새 책읽기 좋은 조명으로 바뀌었다. 어둑해진 카페에 조명을 켜려다 만다. 나는 읽던 책을 마저 펼쳐 읽는다.
 
삶은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삶에 더 가까운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눈을 마주치기에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로 귀를 마주하고 대화해도 좋을 일이다.
이 모든 생강차가 만들어낸 시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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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상 2009. 4. 30. 00:29

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 니가 좋아."

그녀는 답했다.
"그래 나도 내가 좋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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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제 수염이 길어요. 사람들이 묻습니다. 수염을 왜 기르느냐고요. 저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곧장 대답을 해요. "기른 적 없습니다. 단지 안 깎았을 뿐입니다." 라고요. 사실 그렇거든요. 몸 불편한 어머님을 모시고 살명서 한 4개월 목욕탕을 못 갔어요. 그랬더니 그냥 긴 겁니다.

  먼 훗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당신 애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저렇게 잘 자랐냐?"고 한다면 제가 그때 할 수 있는 대답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가르친 적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배움을 제가 방해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라고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저이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자라는데 제일 큰 장애물이 부모라고 하더군요. 장애물이 아니기를 항상 노력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_ <민들레 통권 52호>에서_  전희식, 대안학교 학부모로 산다는 것

요즘 잡지 민들레 읽는 재미가 .쏠.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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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일상 2009. 4. 26. 23:03


두 시간째다. 벌써 두 시간째다. 평일 오후,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는 나는 책에 얼굴을 파묻은 채 두 시간째 소변을 참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여태 다리를 달달 떨어가며 화장실 가는 걸 참고 있다. 뭐 늘 그랬다. 어릴 적부터 줄곧 그랬다. 웃기면 웃으라지만 소변참기는 세상에 대한 나의 소박한 저항이었다. 아무리 강인한 자도 생리현상 앞에서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는 걸 알게 된 어릴 적 난, 똥오줌을 잘 참으면 진짜 강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참을 수 없는 걸 참아가며 키운 내 반항심이 지금의 내 삐뚤어진 고집을 키운 것 같긴 하지만.  

엄마는 방 안에 앉아서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딸을 볼 때마다 “자꾸 그러다보면 몸에 돌 생긴다”고 달랬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양반다리 하고 앉아 다리를 달달 떨고 있을라치면 참다못한 엄마는 꽥 소리를 지르고는 달려와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이 미련한 년아.”

엄마는 몰랐다. 그저 딸년이 지독히 게으른 줄로만 생각했겠지. 진심을 얘기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라 생각한 어린 나는 귀찮은 것보다는 오해가 낫다고 생각하며 그냥 몇 대 맞고는 화장실로 끌려갔다. 그런데도 오줌 참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일상의 지루한 습관적 저항으로.

‘몸 안에 돌을 모을 테야. 거른 체 위에 걸린 알갱이들이 자글거리듯 배 안에서 돌들이 구르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돌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나는 강해졌다.’    

아까 점심대신 마신 우유 탓인가. 오줌의 비릿한 내가 코끝까지 올라오는 듯하다. 미련한 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선다. 최대한 침착하게 걸어가서 변기에 사뿐히 착지하리라. 침착하고 재빠르게 걸어간다. 화장실로 가는 길 창문 너머 아직 꽃을 튀우지 않은 벚꽃이 눈에 들어온다. 입을 앙다문 모양새를 보니 꽃 피우기 싫은 게다. 풋 하고 웃음을 날리곤 재빨리 스쳐지나간다. 그래 너도 오죽 하겠니. 오줌보 터지겠는데도 오줌을 쥐어 참고 있는 나나, 늦봄인데도 그러고 있는 너나. 가끔은 꽃들에게 봄은 폭력이다.    

두 칸 밖에 없는 화장실엔 이미 여럿 줄을 서 있다. 화장실 밖에서라면 어떻게든 참을 수 있을 것 같은 오줌도 화장실에 한발 디디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발가락 끝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저릿한 순간이리라.    

줄선 화장실 칸에서 빨리 나오지 않는 년이 원망스러워진다. 몸을 웅크리곤 한 주먹을 들어 화장실 문을 쿵 하고 치자 이내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한 여자가 나온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세면대로 간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급했다는 나의 절박한 얼굴을 보여주려 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가다니. 난 숨 한번 크게 쉬고는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재빨리 바지를 내린다. 다리를 비비 꼬며 꼭 이렇게 허둥대는 찌질한 내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싶어 낄낄거린다. 이런 걸 쇼라고 하는 거지. 나를 위한 쇼.    

들이쉰 숨을 크게 내쉬며 소변을 보려던 찰나, 그러니까 참고 참았던 오줌을 시원하게 내보려는 순간, 뜨뜻하다. 엉덩이가 뜨뜻하다. 모든 감각은 정지하고 촉각만 남은 듯하다. 온기 때문이다. 살을 맞대는 듯 변기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앞서 나간 여자의 온기인가보다. 그 여자, 오래도 앉아 있었구나 싶다. 플라스틱 변기로 전해지는 온기라. 촉감의 관음증처럼 수치스러우면서도 수치감에 앞서는 이 그리움은 뭔지.    

그러고 보니 소변보는 것도 잊고는 그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쭉 빠지며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오줌의 온기가 쑥 빠져나가면서 생긴 한기에 푸드득 몸을 떤다. 아까워할 새도 없이 몸의 열기에 순식간에 휘발돼 버린다.

변기의 온기도 이미 식었다.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고 나는 한참이나 그러고 앉아 있었다. 부끄럽겠지만 누군가
노크를 하면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몇 분을 앉아 있어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더라. 다리가 저려오는 것 같아 그냥 일어서 나와 버렸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보니 풍선 바람 빠진 듯 쪼글한 얼굴이 봄 햇살에 하얗게 지워졌다.   

저 멀리 비둘기는 채석장으로 가선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열람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은 나는 다시 오줌을 채우며 몸을 데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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