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와 함께 삽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그녀가 젖 먹던 힘까지 기울여야 할 만큼 힘이 듭니다. 마침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그녀는 원래 그녀의 출신인 ‘저속한’곳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러고는 답을 찾아냅니다.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는 거라는. 그런데 현기증이라는 건 뭐죠? 저는 그 정의를 찾아내서 “쓰러지고 싶은, 막막하면서도 이겨 낼 수 없는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금방 저는 생각을 고쳐서 그 정의를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에 저항하기보다는 투항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 하며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백주 대로에 쓰러지고 땅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라고 명확히 합니다. 현기증은 테레자를 이해하는 열쇠예요. 당신이나 저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어는 아니죠. 그렇지만 당신이나 저나 적어도 이런 종류의 현기증이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것, 실존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알지요. 저로서는 이런 가능성, 이 현기증을 이해하기 위해서 테레자라는 ‘실험적 자아’를 만들어 내야만 했던 겁니다.


『소설의 기술』p50 , 밀란 쿤데라, 민음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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