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손자가 고삐를 잡은 마상에 앉아서 이 힘든 여행이 훗날 손자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상상해보며 부디 사랑받은 기억이 되기를 빌었다.” (박완서, 『노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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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 나의 엘리자


임경섭



엘리자와 그녀의 어린 아들을

헤일리는 마지막까지 뒤쫓고 있었다

여물이 잔뜩 묻은 광포로 아들을 둘러멘 엘리자는

얼음이 풀려 물이 붇기 시작한

오하이오강에 다다르고 말았다

수면 위로는 겨울을 견뎌낸 

거대한 얼음덩이들이 유속만큼 빠르게

달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엘리자는 지쳐 울지도 않는 아들을 앞섶으로 끌어안은 채

마른 물억새밭 사이 기슭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녀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1

마님,

오 나의 스토 마님!

우리를 어찌하시려고 이곳까지 끌고 오셨나요

별빛도 반사하지 않는 저 차가운 강물 속에

우리 모자를 빠뜨려 죽이시려고 여태껏

그리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게 하셨나요?

오 스토 마님,

이제까지 우리 모자를 살려두신 거라면

그 이유라도 알 수 있게

제발 여기서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혹 이곳에 죽음이 필요하다면 저만 죽여주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제 어린 아들은 제발

오 제발 살려주세요 마님도 아시죠?

제 아들이 저 악독한 백인 헤일리의 손에 들어간다는 건

죽음보다 더 황폐한 일이라는 것을 말예요

오 마님!

제 아들만은 이 어두운 강을 건너가게 해주세요


#2

엘리자, 나의 엘리자,

내가 어찌 참혹한 죽음의 강으로 너를 내몰겠느냐

나에겐 너희를 죽일 힘도, 너희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할 힘도 없단다 내가 적은 단어들과

내가 만든 문장들이 고삐가 되어

너희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이란다

사랑스러운 나의 엘리자, 생각해보아라

내가 너희를 지금 저 깊은 겨울 강물에

빠뜨려 죽인다고 해보자

내가 너희를 수십번 죽인다고 해도

내 글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너희는 죽은 게 아니지 않느냐

또한 내가 너희를 영원히 살려둔다 한들

아무도 내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너희는 영원히 태어나지도 못할 것 아니냐

엘리자, 너무 서글퍼하지 말아라

너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그런 행복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를 끌어안고 있는 배경들이

배경들을 조합하고 있는 기호들이

너희 모자의 삶을 결정할 것이란다 다만

너희는 반복되는 굴레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테니

내가 이번만은 기적같이 너희 모자가

저 광막한 겨울 강을 건널 수 있게끔 힘써보마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라이프치히 동물원

슈레버 일기


임경섭



세살 된 아이를 데리고

내가 찾아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곳은 가질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어제 내린 비로

하늘빛이 무척 푸른날이었지만

군데군데 얕은 물웅덩이들이 놓여 있어

나는 말간 하늘보다는

앞서 내달리는 아이를 주로 쳐다보며

숲처럼 우거진 포장길을 걸어야 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내 아이는

처음 보는 동물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들을 갖고 싶다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것들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나는 아이에게 동물원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동물원은 움직이는 사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동물원 안에선 그 어떤 사물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동물도 스스로 그곳을 선택한 적 없었으니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아놓은 주체가 빠졌으니

나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도 동물이었으니

나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가둔 테두리는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으니

나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살 된 아이가

아무 말 하지 않는 나를 데려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곳은 경계와 경계들이 놓여 있는

경계의 안쪽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옮겨두고 요즘 가장 곱씹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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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는 픽션이고 다큐는 넌픽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모두 필름 메이커의 입장이다.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담론’의 일부이며 효과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시선, 입장성(standpoint), 위치성(position), 당파성(partiality)이다. 이것은 보편, 중립, 객관을 넘어서는 다른 세계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자기 위치를 역사 속에서 자각한 당사자의 당파성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쾌감(‘미학적 성취’)은 이러한 깨달음 때문이다. 

물론 당파성은 약자의 사실(facts)이나 과학이 아니라 부분적 지식(situated knowledge)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백인을 포함해 앎의 의지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다. 볼드윈은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나 보편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흑인(사회적 약자)에 대한 통념은 거의 대부분 실제가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당사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당사자도 있다. 그래서 투명한, 인지 가능한 ‘당사자’와 사회적 실천으로서 ‘당사자성’은 다른 개념이다. 지배 세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히, 당사자성이다. (정희진, 지성과 당파성 -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다큐매거진 DOCKING)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종소리/ 송승언

인용 2018.05.10 00:24

돌 위에 앉아 돌을 던지면 흔들리는 수면 아래로

감감 가라앉는 돌이 있었고, 속 모를 깊이로부터 솟

아오르는 불가사리도 있었다 그건 시체였고, 한번

떠오른 시체는 수면을 흔들며 떠오르다 가라앉다

자맥질만 되풀이했다 감감 가라앉는 돌 위로 숙연

히 일그러지는 얼굴도 있었고, 얼굴 뒤로 불처럼 번

지는 그늘도 있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어린 시절에는 만성절과 만령절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깊은 날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았다. 특히 매년 먹었던 만성절 과자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마이어베크는 일 년에 단 한 차례, 이날에만 그 과자를 구워 모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에게 딱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다. 흰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과자는 사람이 손아귀에 숨겨버릴 수 있을 만큼 작았고, 한 번에 네 조각짜리 한 줄을 구워냈다. 과자에는 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언젠가 나는 과자를 다 먹고 나서 손가락에 남은 밀가루 흔적을 보면서 일종의 계시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그날 저녁 내내 나무 숟가락으로 조부모님 침실에 있던 밀가루통을 휘저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안에 숨겨진 어떤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p65

-다음 기차를 타고 베로나로 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칠 년 전 급작스럽게 중단해버린 베로나 체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고, 카프카 박사가 1913년 9월 베네치아에서 베로나의 가르다 호수로 향하던 길, 그가 직접 묘사해놓은 바에 따르면 무한한 슬픔에 잠겨 있었다는 어느 날 오후의 여정도 따라가보고 싶었다. 열린 차창으로 바람과 함께 찬란한 빛 속에 고인 풍경이 그대로 밀려들어왔고, 그렇게 한 시간을 채 달리지 않았을 때 시야에 포르타 누오바가 들어왔다. 둥그스름한 산 앞에 자리잡은 도시 베로나를 마주한 나는 기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몸을 움지일 수조차 없었으므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의아함에 사로잡힌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차가 다시 베로나를 출발하자 통로를 지나는 차장에게 부탁해 데센차노로 가는 표를 추가로 끊었다. 1913년 9월 21일 일요일 평소 한없이 깊은 우울함에 빠져 있던 카프카 박사가 언젠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유일한 행복으로 느끼며 홀로 누워서 갈대 사이로 일렁이는 물결을 응시하던 장소가 데센차노였다. p84-85

-회한이라고는 전혀 스며 있지 않는, 담담한 투로 뱉은 그 문장을 끝으로 암브로제 가족사를 종결지은 루카스는, 나에게 무슨 이유로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것도 하필이면 11월에 다시 W를 찾을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매우 장황하면서도 군데군데 모순이 섞인 대답을 했는데, 놀랍게도 루카스는 그것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이 내 안에서 저절로 설명되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수수께끼처럼 변해간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p199

『현기증. 감정들』, W.G. 제발트, 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그렇게 해야

인용 2017.10.09 21:46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 그들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동물과 식물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평선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p399)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이상한 일이지만,

인용 2016.12.10 13:46

“교수대까지는 40야드 정도가 남았다. 나는 바로 앞에 걸어가는 죄수의 갈색 등을 지켜보았다. 그는 팔이 묶여 있어 어색하긴 했으나 저벅저벅 잘 걸었다. 절대 무릎을 펴지 않고 까닥까닥 걷는 인도인 특유의 걸음이었다. 걸을 때마다 근육이 매끈하게 제자리로 미끄러졌고, 두피에 바싹 붙어 있는 짧은 머리털이 아래위로 춤을 추었고, 젖은 자갈땅엔 맨발 자국이 절로 생겨나듯 찍혔다. 그리고 한 번, 어깨를 한쪽씩 붙든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는 도중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살짝 옆으로 비켜갔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ㅡ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을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ㅡ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조지 오웰, ‘교수형’, <나는 왜 쓰는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요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다큐라면 꼭 챙겨보려 한다. <파도의 소리>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특히 단순하지만 특별해보이는 카메라의 이동이 감동적인데, 인터뷰만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명을(인터뷰이+인터뷰이, 인터뷰이+인터뷰어) 사선에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각 인물들의 정면으로 옮겨가고 그때부터는 두 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이다. 카메라가 사선에서 정면으로 이동하는 그 편집점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사건처럼 느껴지는데, 연출 의도를 참고해보자면 어색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평상시 대화하는 것처럼(카메라가 그들에게서 잊혀질 즈음) 친밀감이 감돌 때에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에 좀 졸다가 깨었는데 스크린에서는 나이든 여자분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으로 죽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린 둘 다 역사소설을 좋아했는데 늘 일본 역사소설만 보던 자신에게 중국와 한국의 역사소설도 즐겨 읽던 그 친구가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고, 그 후로 그런 소설도 재밌게 읽게 되었다고 한다. 살면서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말한다. 졸음으로 말랑해진 내 온몸을 따뜻하게 주무르던 이야기.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2013 
-연출: 하마구치 류스케, 사카이 고
-연출의도:

<파도의 목소리>는 2011년에 만들어진 <파도의 소리>에 이어지는 작품이다이 영화는 <파도의 소리>와 같은 접근법으로 진행한동일본 대지진과 이후 이어진 쓰나미 사태 생존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파도의 소리>가 재난 사태 이후 6개월간 이와테 현에서 후쿠시마 현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파도의 목소리>는 후쿠시마 현 신치마치와 미야기 현 게센누마시의 두 지역을 일 년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을 선정할 때, ‘그들이 얼마나 그 재난으로부터 참혹한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그들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기준으로 두고인터뷰이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우리가 만난 생존자들은 자신들보다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자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지진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집이 무너졌거나 가족사랑하는 사람들을 파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 재난의 핵심에서 멀어질수록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적어진다는 것이다우리의 인터뷰이들도 역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그들은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재앙의 진짜 핵심을 담고 싶다면 우리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들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목소리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21명의 사람들은 재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을 하는 동안그들의 말투 또한 평상시에 대화를 나누는 말투로 변해간다즉 우리는 희생자의 목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가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영화의 목소리들도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파도의 목소리>를 만들면서 우리의 소망은 100년 후에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었던, 파도에 휩쓸려간 이들의 목소리와 이어주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행운아(존 버거)

인용 2016.09.06 21:19

영국인이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많은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청교도주의나 소극적인 국민성 등으로 이를 설명하곤 한다. 그런 설명은 더 심각한 사태를 가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노동계급이나 중산계급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전반적인 문화적 황폐화의 결과로 말주변이 없게 되어 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들의 사고(思考)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해 버렸다. 
그들은 경험을 보다 분명히 밝혀 줄 말을 찾을 때 참고할 수 있는 그런 예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속담의 형태로 구전되던 전통들은 오래 전에 파괴되어 버렸고, 또한 엄격히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문맹이 아니라고 해도, 글로 남겨진 문화적 유산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일반적 문화라 함은 거기에 비춰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적어도 자신의 모습 중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훨씬 적게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들의 경험 중 많은 부분 ㅡ 특히 감정적이거나 내재적인 경험ㅡ은 그들 자신에게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결국 그들의 주된 자기표현 방식은 행위를 통한 것이다. 이것이 영국 사람들이 '직접 해보기(DIY)' 취미에 그렇게 많이 매달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때 정원이나 작업대는 만족스러운 자기반성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무엇이 된다.
가장 쉬운ㅡ그리고 가끔은 유일하게 가능한ㅡ 대화의 형식은 행위와 관련된 혹은 행위를 묘사하는 대화이다. 말하자면 행위가 하나의 기술이나 과정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때 이야기되는 것은 말하는 이의 경험이 아니라 완전히 외적인 메커니즘 혹은 사태ㅡ자동차의 엔진이라든지, 축구 경기, 배수로 혹은 위원회의 운영 등ㅡ다. 이런 주제들, 개인적인 부분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는 이런 주제들이 오늘날 영국에서 스물다섯 살 이상 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화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더 어린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욕망이 가지는 힘 덕택에 이러한 탈인격화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는 따뜻함이 있고, 거기서 우정이 생겨나 계속 유지될 수도 있다. 대화의 주제 자체가 가지는 복잡함 덕택에 대화자들이 가까워질 수 있다. 마치 대화자들이 주제 자체의 아주 작은 세부까지 철저히 살피기 위해 서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 과정에서 손을 마주잡는 것만 같다. 그들이 교환하는 전문가적인 의견이 곧 공통의 경험을 상징하게 된다. 이미 죽어 버렸거나 지금 함께 하지 않는 친구를 생각할 때, 남은 친구들은 항상 전륜구동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던 그 친구의 설명을 생각한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그 설명은 이제 그들 사이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p.107-108 

-『행운아』,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눈빛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