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꿈

일상 2014. 2. 16. 22:06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조금 듣다가 바닥에 누웠다. 게스트인 소설가 김연수의 목소리가 막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인데 왠지 익숙했다. 바닥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시린 계절이다. 자고 일어나면 손끝 발끝까지 데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숲속이었다. 거기에 야외 스튜디오가 있었고 그 자리에 신형철과 김연수가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는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음량을 조절해주었다. 작지만 복잡한 기계에 열중하는 사이, 두 사람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이제 목소리들의 음량은 일정했고 나는 둘이 있던 자리에 남은 소형 녹음기를 보았다. 예뻐보여 그걸 챙겼다. 숲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니 숲과는 완전히 분리된 듯한 공간이 펼쳐졌고 그곳은 운동장이었다. 사람들이 열을 지어 앉아 방송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디쯤에 앉아 방송에 필요할 만한 장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판자로 지붕 같은 걸 만들었다. 숲속 나무들만으로는 비를 완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 그런 걱정에 나무판자들을 잇고 못질을 했다. 김연수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던 걸 그만두고 다시 숲으로 걸어갔다. 스튜디오에는 피디와 작가들이 있었다. 녹음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디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녹음기를 어쨌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턱만 보였고 그 턱에 눌릴 것만 같아서 사태를 잘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알게된 건 나에게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꿈에서 나는 벙어리였다. 찌를 것 같은 턱을 밀어내면 낼수록 오히려 내가 점점 작아졌다. 점점 눈앞의 화면이 닫히고, 아주 천천히 의식이 열렸다. 김연수가 낭독을 하고 있었다. 뭉개진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손을 흔들고 웃는 그 단순한 동작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손을 흔들고 웃는다는 그 느낌이 좋아 몇 번 되뇌어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웅얼거렸다. 온기가 돌아 말랑해진 몸을 움직여 옆으로 누우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마저 조금 더 잤다. 후에 찾아보니 김연수가 낭독했던 책의 이름은 <불안의 책>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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