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인용 2014. 3. 3. 01:33

“결코 사물들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과 실어증에 걸린 듯 사물들에 대해 말없이 숙고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실제로 선택권이 없을까? 한쪽은 사유함으로써 사물들을 파악하지만, 늘 그것들의 실질적인 단독성 앞에서 실패하게 된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사물들 고유의 실재성, 즉 온전한 현존으로써 사물들을 파악하지만, 총체성 안에서 필연적으로 그것들의 가치를 읽게 된다. 한 극단에서는 모든 실재를 총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개괄적인 이해만을 경험한다. 또 다른 한 극단에서는 전체를 만들어 내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서 각각의 실재들을 하나씩 터득한다. 나는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그리고 몇 장의 종잇조각들을 무기력하게 줄곧 응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두 가지의 극단 속에 갇히는 것을 피해야 한다. 중간에서 비스듬히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철학자들의 덫에 걸리지 말고. 이 모든 것들과 저 모든 것들을 떠나야 한다. 한쪽을 피하면서 다른 한쪽의 위력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떨어져서 똑바로 전진하라. 사물들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응시하며 유심히 살펴보라.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두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비교하기 위해 그것들에게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자성을 띠는 양 극단의 중간에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유쾌하게 나아가라. 대단히 힘이 들 테니까. 그렇다. 이것이 적합한 방법이다.”

<사물들과 철학하기>, 로제-폴 드루아, p22,23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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