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 시간은 해가 완전히 사라진 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지는 않은 짙푸른 풍경의 시간이었다. 이건 해뜨기 전의 짙푸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길게 구부러진 도로 위로 헤드라이트를 켠 오토바이 한 대가 오른쪽 끝에서 등장하여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간다. 아마 30초가 안 되는 이 하나의 컷에서 나는 평소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맞닥뜨렸다. 몇 년 전 홀로 떠난 배낭여행 이후 나는 줄곧 이 여행을 그리워했고 다시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 낯선 곳으로 떨어져 그 익숙지 않은 공기를 질릴 때까지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언더 더 스킨>의 초반에 만난 저 하나의 컷을 보는 동안, 해가 진 뒤 컴컴하고 설핏한 풍경 속에서 장소도 사물도 왔던 길도 잘 분간이 안 되던 그 시간 동안의 불안했고 외로웠고 막연히 슬펐던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난 마냥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내 지난 여행의 시간을 되돌아보곤 했었는데, 몸에 배어 있었지만 머리로는 떠올리지 못했던 그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을 이제야 떠올렸던 것이다. 그 시간 동안만은 겪고 싶지 않았던 멀미 같은 것이었다. 아마 이랬던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난, 이 느낌마저 통틀어 여행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앞에서 오토바이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순간 훅 올라온 새삼 낯선 이 감정을 붙잡고 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생각과 느낌이 <언더 더 스킨>이라는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에 깨달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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