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 버렸다.

일상 2015. 3. 14. 21:45


엄마는 어제 점을 봤다며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물론 나에 대한 것은 이번에도 특별하달 게 없어서 그런 거 믿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대꾸하면서도 늘 “또 뭐 물어봤어? 또 뭐? 이건 어떻대?” 하고 묻게 된다. 그러다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점쟁이는 엄마와 아빠의 궁합이 좋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그 점쟁이 못 믿겠네, 라고 답했고, 엄마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면서, 그런데 그거 빼곤 기막히게 다 맞혔다니까, 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최근 본 클레르 드니의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생각났다. 영화에서 “어긋나 버렸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어긋나 버려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무너진 한 여자가 그 얘길하며 흐느껴 운다. 내용과 상관없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원인으로 이 말만큼 강력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긋나 버린 게 아닐까. 궁합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순간의 어긋남 때문에 어느 부부는 돌이킬 수 없이 하지만 헤어지지는 못한 채 서로를 무시하며 살아진 게 아닐까. 그 어긋남이라는 게 따지자면 구체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거기에 그 무언가들이 들러붙어 벌어진 일처럼 느껴진다. 운명이 될 만큼은 강력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항시 노려보고 있다가 때를 노려 악착같이 발에 매달리는 느낌. 그래서 벌어진 일들, 형성된 삶들. 하지만 그것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는 않다. 좋은 궁함-어긋남이라는 상관관계를 두고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걸 자꾸 상상하게 되어서 오래 할 생각은 못 된다는 걸 금세 깨닫는다. 점쟁이 말로 아빠는 훌륭한 기술자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노동을 굉장히 존중하고 있다는 건 가끔 느낀다.) 하지만 뭔가에 눌려서 그걸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고, 그래서 엄마가 자꾸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슬펐는데, 남은 생에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란 예감과, 실은 내가 굳이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요즘은 가족을 자주 이야기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가족 개개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관계나 관계 맺음 자체가 낯설어진다. 물리적으로 가족과 멀어진 지는 10년이 다 돼 가는데, 이제야 가족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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