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내 인생의 책

: 봉인된 시간(타르코프스키)


삶을 아름답게 할 시간의 재창조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고 보낸 편지의 일부다. 영화라는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읽힌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내게도 그런 것이다.

<봉인된 시간>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그는 내내 당국과 마찰을 빚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영화 창작 과정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숙고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순간들을 창조, 구성하는 데 있어서 그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그 윤리학의 미적 실천을 위해서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는 이런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서 이보다 더 격렬한 순간은 많지 않다.





내가 무얼 찾고 있는 건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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