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글은, 이제까지 사례로 든 디자인 리서치나 아티스틱 리서치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미래의 예술 형태를 섣부르게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디자인 리서치나 아티스틱 리서치의 사례에서 파악할 수 있었던 긴요한 점은 프리프로덕션의 일부로 취급되어 온 기존의 리서치 개념보다 확장된 대문자 R로서 리서치(Research)이다. 이러한 리서치가 연구 수행 과정 즉, 하나의 예술 작품에 직접 관련하며 몸을 통해 얻어진 감각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 이에 관한 비평 역시 감각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대문자 R로서의 리서치가 가진 인식론적 의미는 암묵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암묵적 지식 논의를 토대로 인간의 몸속에 있는 지식, 명제화되어 있지 않은 지식과 창의성의 발현을 논한 바 있다. 암묵적 지식이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외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현상의 요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암묵적 지식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몸 안에 잠복한 감각을 통해 외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이며 또한 상상력과 창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구자나 예술가들이 지닌 몸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영상ㅡ미술작가의 영상 작품, 영화, 다큐멘터리 등 모든 장르를 포함한ㅡ을 암묵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발언하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가 아니라, 등장하는 세계 내 인간과 자연의 마찰, 다시 말해, 내용을 떠받치는 과정 자체가 암묵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나 영화에 선 그어진 매체 특정적 분류는 영상에 의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의 각 영토나 장르에 대한 명시적 접근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감각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감각은 암묵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그것을 비평하고 전달하기 위해 언어와 비언어적 표상의 종합과 배열을 확장하는 실험에서 비롯할 것이다. 암묵적 지식은 문제는 해결하는 데 발휘할 수 있는 감각적 능력이다. 아직까지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를 파악함으로써 종국에 발견될 인식의 범위는 더욱 확장될 수 있다. 미술작가들과 영화감독들의 리서치에서 카메라에 담긴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설령 우발적으로 포착된 것이든 간에 살아 있는 사람의 암묵지와 현상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풍경이다.

소문자 r로서의 리서치(research)가 아닌, 대문자 R로서의 리서치(Research)는 연구를 위한 자료 수집보다 더 넓은 의미로서, 현상에 관한 여러 가지 감각들을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조사하고 배치해 내는 방식이다. 도래할 영화가 전해 줄 활력은 한 화면 안에 다양한 미디어의 요소들이 자유롭게 놓일 때 발생할 것이다. “과학 그 자체는 이론이 아닌, 과학자가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경험”이라는 폴라니의 말에서 과학을 예술로 바꾸어 다시 적는다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불확정적이고 암묵적인 인간의 감각과 현실 인식에 관한 R로서의 리서치(Research)이다. 


이정빈, 대문자 R로서의 Research <OKULO 001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