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 거기가 어디였는지…… 한번은 헛간에 부상자들이 200명 가까이 꽉 찼는데, 위생병은 딱 나 혼자였어.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이 생기는 대로 곧장 헛간으로 데려오다보니 그렇게 많아졌던 거지.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어…… 그후로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꽉 나흘을 잠 한숨 못 자고 잠깐 앉을 새도 없이 뛰어다녔던 것만 기억나. 그 많은 부상자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불러댔지. ‘간호병! 간호병!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한번은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지 뭐야. ‘조용! 명령이다. 모두 조용히 한다!’라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지. 지휘관인 젊은 중위였어. 역시 부상당해 들어온 그 중위가 다치지 않은 옆구리로 반쯤 몸을 일으켜 소리치고 있더라고. 중위는 내가 쓰러질 지경이라는 걸 안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명령이고 뭐고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간호병! 간호병!’ 부상병들은 계속 나를 불러댔어. 나는 벌떡 일어나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어다녔지. 그리고 그때 전선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울고 말았어.

그리고…… 사실 사람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 한번은 겨울에 우리 부대 옆으로 독일군 포로 행렬이 지나갔어. 포로들은 찢어진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에 타 구멍이 숭숭 뚫린 외투만 걸친 채 우위에 꽁꽁 얼어 있었어. 그때 날이 얼마나 춥던지 날아가던 새가 다 떨어질 정도였지. 새들이 날다가 그대로 얼어 죽은 거야. 그 행렬 속에 병사 하나가 가는데…… 어린 남자애였어…… 울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이 얼어 있더라고…… 그때 마침 나는 손수레에 빵을 담아 식당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어. 그 아이가 빵수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수레만 뚫어져라 바라봤지. 빵이다…… 빵…… 나는 큰 빵 하나를 집어들어 좀 떼어서 그 아이에게 줬어. 아이가 받긴 받는데…… 어리둥절한 것 같았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냐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세르게예바, 사병, 위생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156-157,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속으로 읽다가도 인용의 마지막에 사람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밖으로 소리내 읽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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