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다큐라면 꼭 챙겨보려 한다. <파도의 소리>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특히 단순하지만 특별해보이는 카메라의 이동이 감동적인데, 인터뷰만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명을(인터뷰이+인터뷰이, 인터뷰이+인터뷰어) 사선에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각 인물들의 정면으로 옮겨가고 그때부터는 두 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이다. 카메라가 사선에서 정면으로 이동하는 그 편집점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사건처럼 느껴지는데, 연출 의도를 참고해보자면 어색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평상시 대화하는 것처럼(카메라가 그들에게서 잊혀질 즈음) 친밀감이 감돌 때에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에 좀 졸다가 깨었는데 스크린에서는 나이든 여자분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으로 죽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린 둘 다 역사소설을 좋아했는데 늘 일본 역사소설만 보던 자신에게 중국와 한국의 역사소설도 즐겨 읽던 그 친구가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고, 그 후로 그런 소설도 재밌게 읽게 되었다고 한다. 살면서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말한다. 졸음으로 말랑해진 내 온몸을 따뜻하게 주무르던 이야기.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2013
-연출: 하마구치 류스케, 사카이 고
-연출의도:
<파도의 목소리>는 2011년에 만들어진 <파도의 소리>에 이어지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파도의 소리>와 같은 접근법으로 진행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후 이어진 쓰나미 사태 생존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파도의 소리>가 재난 사태 이후 6개월간 이와테 현에서 후쿠시마 현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파도의 목소리>는 후쿠시마 현 신치마치와 미야기 현 게센누마시의 두 지역을 일 년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을 선정할 때, ‘그들이 얼마나 그 재난으로부터 참혹한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그들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기준으로 두고, 인터뷰이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 생존자들은 자신들보다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자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지진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 집이 무너졌거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재난의 ‘핵심’에서 멀어질수록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터뷰이들도 역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재앙의 진짜 ‘핵심’을 담고 싶다면 우리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들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목소리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21명의 사람들은 재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을 하는 동안, 그들의 말투 또한 평상시에 대화를 나누는 말투로 변해간다. 즉 우리는 ‘희생자’의 목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가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영화의 목소리들도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파도의 목소리>를 만들면서 우리의 소망은 100년 후에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었던, 파도에 휩쓸려간 이들의 목소리와 이어주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