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까지 재택 알바를 했다. 마감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야 일을 끝냈다.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새벽 늦게 잠을 자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위에 눌리기도 한다. 심장이 너무 쿵쿵 거려서 잠에 잘 들 수 있을까 싶었고, 이 걱정은 내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망상으로 이어졌다. 집이 좀 지저분해서 이대로 죽으면 안되는데, 일어나서 치우고 자야하나, 그렇지만 기력이 없다, 그러다 훅 잠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잠든 시간은 없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마취처럼, 그리고 전화 진동에 놀라 깼다. 그렇게 받은 전화가 할머니의 부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평소처럼 잠들었다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 늘 그랬듯이 어떤 꿈이라도 꾸었으면 나는 그 꿈을 애도의 구실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했던 내 망상이 부끄러웠다. 

# 아빠의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왔다고 했다. 왠지 느낌이 안좋아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주 그랬듯이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주무실 시간이려니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출근을 하고서도 작업 현장으로는 나가지 않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엄마도 어지러운 꿈을 꿨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자꾸 뭘 줬다가 받았다가를 반복하는 꿈을 꾸다 너무 일찍 깼고, 피곤했는데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는 높은 벼랑에서 한 바위가 흔들흔들 거리다가 쾅 떨어졌다고 했었다. 꿈에 그걸 보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려나 하고 느꼈단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이의 생과 사를 감지하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꿈이란 뭘까.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이 갑작스럽다고는 하지만 가족인 우리들 모두 마음 깊이에는 불안을 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 부끄럽고 유치하다고 느끼면서도 <죽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몇 페이지 읽었는데 다행히도 몇 문구들이 위로가 됐다. “죽음을 무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의지”, “존재했음과 살았음의 신비로 통하는 문을 열어두려는.” “존재했던 사람은 이제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을 살았다는 신비롭고도 극도한 난해한 사실”

# 장례식장에서 나도 모르게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을까, 창 밖의 풍경이 보고 싶었던 거였을까. 추측으로 말하는 건 나는 그 행위를 할 뿐 내가 왜 창문 밖을 보는 지는 알 수 없었다는 거다. 그건 내 습관도 아니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창문 밖을 바라보는 행위가 이해되는 것이었다. 행위 그 자체로 이해되는 느낌.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창문 밖을 보는 행위를 지금까지는 대수롭게 여겼다면 이제부터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은. 의도가 아닌 의미. 행위 그 자체의 의미. 여전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창문 밖을 보는 행위가 이제는 내게 특별해졌다는 건 분명하다. 먼 곳에 뿌연 산등성이가 보이고, 앞에는 초록빛이라고는 없는 누런 밭이 있었다. 영정 사진 앞에 있다가도 자주 창문 앞으로 가곤 했다. 

# 할머니의 입관을 지켜보았다. 곱게 화장한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이마의 주름이었다. 열심히 얼굴을 마사지했다는 장의사도 펼 수는 없었던 그 주름. 그 상황에서 나는 내가 저 주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의 주름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까지 편집본에 넣을지 말지 고민했던 ‘컷’으로서의 그 주름 장면이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왜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인지. 나는 살아생전의 그 주름과 내 눈앞의 주름을 번갈아가며 머리에 떠올렸다. 그 주름 밑으로 눈을 조금만 내리면 멍이 든 상처가 보였다. 한번 본 후 두 번은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얼굴이 참 평안해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장의사가 할머니의 표정을 평안하게 만드려 얼마나 노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슬프다. 

# 내가 참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촬영하며 함께 보냈던 1박 2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할머니를 관찰했던 그 이틀이 내 인생에서 소중한 몇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 할머니가 맨 손으로 풀을 뽑던 그 땅에 할머니가 묻힌다. 잡초를 잡아당기다가 그 뿌리가 너무 깊어 다시 흙으로 덮고 말았던 그 자리. 포크레인의 삽질에 그 잡초의 뿌리도 뽑혀나갔을 것이다.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꿈을 꾸었다. 쭈글거리고 거친 할머니의 손이 젊은 사람의 것처럼 재생되는 장면이었다. 꿈에서 깬 날 전화로 들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힘있게 들렸다. 할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그의 마음 한켠에 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묻힌 할머니의 무덤을 보며 문득 스쳐지나갔던 그 꿈의 이미지. 

# 할머니의 집. 방에 들어서자 창문에 걸린 커튼이 보였다. 예전엔 몰랐는데 연꽃 무늬였다. “엄마는 왜 다 쓰지 못할 휴지를 저렇게 알뜰히도 모았을꼬.” 고모가 말했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걸두고 ‘왜’라고 묻거나 할머니를 질책하는 게 싫었다. 유별나게 아끼고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자신을 아끼거나 가꿀 줄을 몰랐던 사람. 쓰던 고무줄들을 손목에 끼고 다니면 엄마는 “니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가방을 무겁게 넣어 다니는 걸 보고 엄마가 “니는 니 할머니랑 똑같다”고 했다. 고모들을 배웅한다고 할머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섰다가 울음이 터졌다. 이른 새벽 할머니가 걸어갔을 길 어딘가를 돌아보았다. 춥진 않으셨을까. 방 한켠에 예쁘게 말린 할머니의 허리 보호대를 유품으로 챙겼다. 당분간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를 자주 생각할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느낌이셨을까를 더 많이 생각하고 오래 슬플 것 같다. 

# 장례식장에서 어떤 분이 할머니를 두고 “참 재밌고 유머러스한 분이셨는데.”라고 했다. 이 말이 마음의 어떤 부분을 툭 건드리더니 내 기억에서 할머니의 그랬던 모습들이 갑자기 와르르 쏟아졌다. 왜 나는 할머니를 마냥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치부했을까. 할머니가 겪었을 역경과 고생에 대한 상상에 오히려 내가 더 짓눌렸던 건 아닌지. 할머니 입관할 때 모두들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편히 쉬세요.”라길래 나도 덩달아 고생 많으셨다고 했는데, 할머니 활짝 웃는 모습을 좀 더 떠올릴 것을, 그래서 참 멋지게 잘 사셨다고 혹은 살아내셨다고 말씀드릴 걸 좀 더 밝은 이야기 속삭여 드릴 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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