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여행 2017. 12. 25. 22:02

  땀이 그의 등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색이 바랜 티셔츠는 아마 본연의 색이었을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낡은 티셔츠에 목에 두른 스카프만은 화려하다. 오늘 기온은 사십 도를 넘겼다. 이곳은 인도의 암리차르, 삼십분 후면 나는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여기서 버스로 열다섯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다. 숙소 앞에서 사이클릭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 넉넉히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 릭샤왈라는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십 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내가 자전거에 올라타던 순간 휘청대던 그의 마른 몸을 봤을 때부터 불안했었다. 버스 출발시간까지 십오 분이 채 남지 않았다. 뒤에서 한숨소리만 크게 내던 나는 결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제발 빨리 가달라’고 말한다. 그는 느리게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한 발 한 발 페달을 밀어내듯 누르다가 힘에 부치는지 이내 엉덩이를 내린다. 그러고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이마에 묶는다. 긴 눈썹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오토릭샤와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를 앞지른다. 시커먼 매연이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그는 ‘저 교차로를 건너 직진하면 오 분 안에 터미널이 나올 거다’며 ‘노 프라블럼. 돈 워리, 돈 워리’ 여러 번 힘주어 말한다. 그가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왜 나는 돈 몇 푼 아끼자고 오토릭샤나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네거리에는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창문으로 먼저 팔을 내미는 운전사들이 빠르게 제 갈 길을 갔고, 그렇게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도를 건넌다.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경적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있긴 한데 호루라기 소리만 더 정신없게 할 뿐이다. 인도의 이런 혼란을 내가 좋아한다지만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 앞에서는 짜증만 솟구친다. 여행자의 여유 같은 것도 어느새 잊었다. 릭샤왈라의 힘을 덜어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서 살짝 뗀 채로 힘을 줘본다. 이젠 그의 검은 팔뚝도 온통 땀으로 반짝인다. 이 교차로를 건너기나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러니까 분명 교차로를 건너면 터미널이 나온다던 그는 느닷없이 자전거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버린다. 경사가 낮은 내리막길을 따라 자전거는 스스로 달리기 시작하고 당황한 나는 무슨 일이냐고 그의 등을 툭툭 친다. 그는 ‘웨이트, 웨이트’라고만 말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울화가 목 끝까지 치미는데 얼마 안 가 그가 자전거를 세운 곳은 수도 앞이다. 이미 사람들로 북적하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플리즈 웨이트’라고 말하고는 내 반응도 살피지 않고 달려가 물을 마신다. 쉬지도 않고 물을 몇 컵 연달아 마시는 걸 보자 짜증났던 선명한 감정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물 한 컵을 가져와 나에게도 내민다. 물이 입에 닿고서야 나도 목이 말랐다는 걸 깨닫는다. 뒤늦게 인도의 수돗물은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하며 ‘돈 워리’ 하더니 자전거를 방향을 돌린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는 자전거를 끌며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가 붙은 자전거에 그가 올라타자 자전거가 크게 휘청거린다. 순간 놀란 나는 그의 어깨를 꽉 잡는다. 그는 또 한 번 ‘돈 워리, 돈 워리’ 흥얼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 발 한 발 페달을 누를 때마다 자전거 체인이 끊어져버릴 것만 같다. 차라리 이 자전거가 망가져버리면 나는 버스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버스가 출발하려면 몇 분 남았다. 나도 엉덩이를 들었다. 아수라장과도 같은 교차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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