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9.01.15 빙글빙글
  2. 2018.07.10 오기, 오만,
  3. 2017.12.25 교차로에서
  4. 2017.09.19 불안의 기운
  5. 2017.01.23 휴대폰의 메모들
  6. 2016.12.12 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2
  7. 2016.08.24 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1
  8. 2016.08.15 시차(시안)
  9. 2016.08.14 기차(란저우)
  10. 2016.06.25 사막(둔황) (1)

빙글빙글

여행 2019.01.15 12:50

 


2016년의 배낭여행에서 찍은 영상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회전하는 노동을 반복했을지 모를 저 인형에는 빛과 그림자를 반씩 섞어만든 어떤 영혼이 깃들었을 것 같다. 시안에서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보고 나오는 길에 찍었다.

나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한숨이 나올 만큼 더웠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창구의 줄이 무척 길었고, 아이도 어른도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서는 뜨거운 볕을 피해 맥도날드 건물 아래에 앉았다. 시원하고 달콤한 것이 몸 속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고 나와 같이 그러고 앉은 사람들이 열댓 명은 되는 우리 앞으로, 누군가 빠르고 요란하게 지나갔다. 전력질주해서 누군가에게 당도한 맥도날드 직원은 손님에게 잔돈을 잘못 챙겨준 모양이었다. 적은 액수인데다 바빠서 모른 척할 법도 한데 입구도 좁은 창구에서 굳이 나와 이 더운 거리 위를 달린 거다. 그는 손에 쥔 동전을 상대에게 건네주고는 손님의 표정도 보지 않고 다시 매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급해서 빨리는 가야겠는데 지친 다리가 상체를 따라가지 못해 곧 바닥에 엎드릴 듯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내 앞을 지나 좁은 창구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얼굴은 땀으로 반질거렸다. 스무 살은 됐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그는 숨을 짧게 내쉬더니 다시 능숙하게 아이스크림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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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오만,

여행 2018.07.10 11:25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이제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아마 국제 바자르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가이드북에 위구르족의 생활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첫날에는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버스를 탔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종점까지 가서는 좀 걷다가 돌아왔다. 부채를 좌우로 아주 천천히 부치던 한 여자만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 날에는 제대로 버스를 탔는데도 헤맸다. 지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원하는 곳에 가닿질 않았다. 더위에 체력은 금방 바닥났다. 땀을 내는 게 아닌 몸을 바짝 말려버리는 더위였다. 6월의 우루무치가 그랬다. 나는 화가 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길을 묻지 않았다. 중국어를 모르기도 했고 더위에 기운을 빼고 싶지도 않았는데 어쨌거나 오기를 부리는 거였다. 정말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나는 중국에서 자꾸 중국이 아닌 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중국 표준시로는 밤 열 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이 땅에서 진짜, 아니 이 표현보다는 자연스러운, 시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온통 한족뿐이었다. 당연했다, 중국 땅이니까. 그럼에도 신장위구르 자치구 시내 어디에서도 위구르인 한 명 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놀랍게도 나는 떠나기 전 날까지 헤맸고 결국 허겁지겁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중국어로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 있다며 오기를 부린 기억이 남아있다. 찾던 바자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후였다. 상상했던 곳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몰에 가까웠으니까. 근처의 큰 마트에 들어가 에어컨만 실컷 쑀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면 어느 방향에서 버스를 타야 할까, 만일 택시를 타면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하나, 낯선 곳에서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자 나는 그런 생각을 떨치고 싶어 그냥 낯선 방향으로 걸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막 다 먹은 즈음이었던가 몸통에 회칠을 한 나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마법처럼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거리에 위구르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에, 벤치에, 주택가에, 나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변두리였다. 더위가 좀 꺾이는 해 질 녘, 피부를 식히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 밑으로 낯선 언어가 낮게 깔렸다. 조용하고 묵직한 활기가 내 발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모인 벤치에 가 앉았다. 이상하게 배밑에서부터 조금씩 안도감이 차올랐다. 

우루무치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건 무장한 군인들이다. 그때 내가 공포스러웠던 건 일어날지도 모를 위구르족의 테러보다 눈앞의 총을 든 군인들과 장갑차였다. 감시와 억압이라는 말을 조금은 실감했다. 겨우 여행자일 뿐이었는데도, 아니 여행자이기에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루무치에서 삼일을 머물고 기차로 열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슈카르에서 나처럼 계속 서쪽으로 이동 중인 한 한국인을 만났다. 그도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을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이 사는 구역에서 묵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는 공무원 학원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좀 씁쓸했다고. “어쨌든 중국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위구르족 청년들이 많다는 거 아니겠어요. 부모도 자식이 안전하게 편입되길 바랄 거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일 텐데, 어쩐지 나는 그 애쓴다는 말이 오래 맴돌았다. 나로서는 가늠하기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이 그 땅에 있다. 문제가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샤허에서 란저우로 가던 버스에서 티벳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반가운 마음에 질문을 쏟아냈다.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앞으로 티벳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내 호들갑에 그는 조금 시큰둥하게 답했다. 지킬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고. 

글을 쓰는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티벳 자치구에 점점 더 많은 한족들이 몰려들고 더 높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어떤 종류의 편리함들이 늘어갈 것이다.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고 딱지 붙일 수는 없는 변화들이 그곳에서 복잡다단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시와 억압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반발할 수도 없게 만드는 무서운 기운이. 얼마 전 신장 위구르를 검색하다가 중국 정부가 그 지역에 새 모양의 드론을 띄워 위구르족의 분리투쟁운동을 더 치밀히 감시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고 상기된 몇 년 전의 중국 여행, 중국 아닌 것을 더 찾았던 당시의 오기와 고작 여행자일 뿐인 나의 오만, 그럼에도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배 밑에서부터 묵직이 떠오르는 화는 여전히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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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여행 2017.12.25 22:02

  땀이 그의 등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색이 바랜 티셔츠는 아마 본연의 색이었을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낡은 티셔츠에 목에 두른 스카프만은 화려하다. 오늘 기온은 사십 도를 넘겼다. 이곳은 인도의 암리차르, 삼십분 후면 나는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여기서 버스로 열다섯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다. 숙소 앞에서 사이클릭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 넉넉히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 릭샤왈라는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십 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내가 자전거에 올라타던 순간 휘청대던 그의 마른 몸을 봤을 때부터 불안했었다. 버스 출발시간까지 십오 분이 채 남지 않았다. 뒤에서 한숨소리만 크게 내던 나는 결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제발 빨리 가달라’고 말한다. 그는 느리게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한 발 한 발 페달을 밀어내듯 누르다가 힘에 부치는지 이내 엉덩이를 내린다. 그러고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이마에 묶는다. 긴 눈썹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오토릭샤와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를 앞지른다. 시커먼 매연이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그는 ‘저 교차로를 건너 직진하면 오 분 안에 터미널이 나올 거다’며 ‘노 프라블럼. 돈 워리, 돈 워리’ 여러 번 힘주어 말한다. 그가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왜 나는 돈 몇 푼 아끼자고 오토릭샤나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네거리에는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창문으로 먼저 팔을 내미는 운전사들이 빠르게 제 갈 길을 갔고, 그렇게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도를 건넌다.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경적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있긴 한데 호루라기 소리만 더 정신없게 할 뿐이다. 인도의 이런 혼란을 내가 좋아한다지만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 앞에서는 짜증만 솟구친다. 여행자의 여유 같은 것도 어느새 잊었다. 릭샤왈라의 힘을 덜어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서 살짝 뗀 채로 힘을 줘본다. 이젠 그의 검은 팔뚝도 온통 땀으로 반짝인다. 이 교차로를 건너기나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러니까 분명 교차로를 건너면 터미널이 나온다던 그는 느닷없이 자전거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버린다. 경사가 낮은 내리막길을 따라 자전거는 스스로 달리기 시작하고 당황한 나는 무슨 일이냐고 그의 등을 툭툭 친다. 그는 ‘웨이트, 웨이트’라고만 말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울화가 목 끝까지 치미는데 얼마 안 가 그가 자전거를 세운 곳은 수도 앞이다. 이미 사람들로 북적하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플리즈 웨이트’라고 말하고는 내 반응도 살피지 않고 달려가 물을 마신다. 쉬지도 않고 물을 몇 컵 연달아 마시는 걸 보자 짜증났던 선명한 감정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물 한 컵을 가져와 나에게도 내민다. 물이 입에 닿고서야 나도 목이 말랐다는 걸 깨닫는다. 뒤늦게 인도의 수돗물은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하며 ‘돈 워리’ 하더니 자전거를 방향을 돌린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는 자전거를 끌며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가 붙은 자전거에 그가 올라타자 자전거가 크게 휘청거린다. 순간 놀란 나는 그의 어깨를 꽉 잡는다. 그는 또 한 번 ‘돈 워리, 돈 워리’ 흥얼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 발 한 발 페달을 누를 때마다 자전거 체인이 끊어져버릴 것만 같다. 차라리 이 자전거가 망가져버리면 나는 버스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버스가 출발하려면 몇 분 남았다. 나도 엉덩이를 들었다. 아수라장과도 같은 교차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불안의 기운

여행 2017.09.19 11:21

  베란다 문을 열면 남해가 펼쳐졌다. 바다는 어제 늦은 오후 숙소에 도착해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해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었다. 친구가 카메라를 집어 들더니 산책을 가자고 했다. 나는 어제 저녁으로 먹은 순두부찌개가 담긴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순두부, 애호박, 팽이버섯과 제조된 양념으로만 만들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밥을 감탄하며 먹은 건 오랜만이었다. 두 사람의 한 끼 분량이 꼭 남아있었다. 그럼 아침식사를 하고 나설까, 하고 친구에게 물었다가 좀 더 배가 고프기를 기다리자고 내가 먼저 답했다. 알람 없이 일어나 바다를 보았고, 이제 산책을 한 후 아침식사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 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여행이지. 우린 모자를 단단히 쓰고 숙소를 나섰다. 펜션 주인네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깔끔한 펜션이었다. 편백나무로 깔았다는 바닥 덕분에 상쾌한 향이 나는 것하며 식탁, 침대, 진열장 같은 가구도 신경 써서 갖춘 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집보다 좋은 숙소에서 단 며칠이라도 묵는 게 아니겠는가. 내일도 기대되는 기분 좋은 상태로 땡볕 아래를 걸었다. 바다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었다. 좁은 흙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위들이 보였다. 바위까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먼 곳에 작고 새카만 섬이 보였는데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라고 친구가 일러줬다. 신발을 벗고 마른 발로 바위 위를 걸어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가 높이 칠 때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바지가 젖었다. 우리는 까불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젖은 발로 바위를 걸으니 표면에 쫀득하게 붙는 발바닥의 느낌이 좋았다. 뜨거운 볕에 발은 금방 말랐다. 한껏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이던 바다의 표면도 그새 강한 볕에 조금 누그러진 듯 보였다. 모래밭이었다면 바다를 끼고 근처의 유명 해수욕장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저 너머까지 바위 길로만 돼 있어서 우리는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그만 돌아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베란다에서 본 큰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가자고 했다. 크고 푸르렀으며 누가 관리를 하는지 아주 단정한 나무였다.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던 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달력 사진처럼 완벽했다. 우리는 멋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며 기대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나였는지 친구였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이제 배가 고프네.”라는 말이 나왔다. 다시 둘 중 누군가가 “나무랑 사진만 찍고 어서 순두부찌개 먹으러 가자.” 라고 했다. 그 순간 내 발이 멈췄다. 순간 머릿속에서 화악하고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질렀다. “가스렌지 불 켜놨어!” “언제! 난 못 봤는데.” 친구가 말했고, “아닌가? 아니 켰는데 껐을지도 몰라. 아니야. 켜둔 것 같애.” 말은 오락가락했지만 사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찌개를 데우려고 가스 불을 켰다가 끄지 않았다는 걸. 일단 펜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이라 금방 지쳤다. 친구가 빠르게 앞서 달려갔다. 더 빨리 힘을 내서 달려야 하는데, 나는 두려운 마음에 도착을 피하고만 싶었다. 펜션에 연기가 나고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불이라도 붙었으면 어떡하나. 감당할 수 있을까. 사고라는 건 이렇게 순식간에 벌어진다는 걸 실감했다. 몇 분을 달려 펜션 앞에 도착했다.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화난 얼굴의 펜션 관계자들도 없었다. 뛰어오느라 헐떡거리는 숨과 겁이 나 벌렁거리는 심장소리가 온 몸을 두드렸다. 빠르게 숙소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집 안은 희끗한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차 있었다. “불 켜 있었어?” 친구는 묵묵히 냄비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응.” 난 쭈뼛거림과 신속함이 뒤섞인 걸음으로 다가가 싱크대를 내려다 봤다. 국은 완전히 졸아 냄비바닥에 시커멓게 덩어리져 있었다. 그때 주인이 문을 세게 두드렸다. “음식 태웠죠?” 죄송하다고, 음식이 좀 탔다고 했다. 주인은 손으로 코앞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거 다 편백나무라 냄새 배이면 안 된다구요!” 얼굴을 찡그렸지만 길게 말하지는 않고 떠났다. 혹시 주인이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가 집에 없었다면, 아찔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어떻게 불을 켜둔 걸 까맣게 잊을 수 있는지, 그런데 또 어떻게 순식간에 그 사실이 빠르게 환기가 됐는지. 난 또 이런 사실들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괜찮다며, 다행이라며 냄비 바닥이나 열심히 닦자고 했다. 국을 데울 때 물 한 컵만 넣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이 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머릿속에서 가스렌지에 불이 붙을 때 나는 화악 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햇반을 데워 참치 한 캔과 밥을 먹었다. 목이 말라 자꾸 물을 마셨다. 결국 밥에 물을 부어 말아 먹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안심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느낀 평온함은 싹 사라졌지만, 그 평온함보다 이 안심하는 감정이 더 달콤해서 냄비 닦는 일은 제쳐두고 침대에 누워 그만 낮잠에 들었다. 꿈에 결국 가보지 못 한 아름다운 나무가 보였다. 나무를 올려다보는데 내 쪽으로 커다란 파도가 느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곧 온 몸이 물에 젖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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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메모들

여행 2017.01.23 13:39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슬러 중국까지 되돌아가는 메모)

-사방을 둘러싼 산들. 밤이면 산들이 마을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산등성이에서 빠르게 솟아오르는 달.

-멀리서만 보던 라다크의 독특한 산을 오늘은 차를 타고 달리며 가까이서 보았다. 손을 뻗으면 곧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멀리서 볼 땐 그저 아름답다고만 느꼈는데 곁에서 보고 있자니 이건 오를 수 없는 산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동키가 풀을 뜯는 모습은 하루종일이라도 보겠다.

-이렇게 세상의 멀리까지 오니까 세상은 쉽게 멸망하지 않을 거라는 묘한 위안이 생긴다. 그 위안이 희망 때문인지 절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뚜르뚝 마을. 벌이 많은 곳. 꽃이 많은 곳. 열매가 많이 열리는 곳. 지천에 떠있는 살구들.

-나무껍질같은 산과 산등성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 이 아름다운 롱테이크를 눈을 깜박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지켜보았다.  

-도로 곳곳에 비석처럼 세워진 표지들: Don't worry, Be happy. Never give up. 달라이 라마의 말씀. 어딘가에선 흔해진 말이 다른 어딘가에서는 가장 절실한 말이다.

-킬롱으로 가는 로컬버스 안. 내 왼편엔 젊은 여자와 그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있다. 아마도 모녀. 아이는 작은 손으로 과자를 꽉 쥐고 있다. 내가 쳐다보니 행여 과자를 뺏을까 싶어 눈을 살짝 흘기고는 등을 돌린다. 아이는 먹은 과자를 금새 토한다. 작은 머리통. 여자는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토를 받는다. 오백 원짜리 동전 만큼의 토사물. 비포장 도로에 버스가 넘어질 듯이 비틀거린다. 어느새 여자와 아이는 잠에 들었다. 아이를 품에 앉은 채로 여자는 한 손에 토사물을 감싼 수건을, 또 한 손으로는 앞좌석을 꽉 쥐고 있다. 운전 기사가 핸들을 꺾을 때마다 내 몸은 좌석 밖으로 튕겨나가거나 모녀에게도 쏠린다. 그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엉덩이에 힘을 준다. 힘이 풀렸는지 이제 여자의 검지 손가락 만이 손잡이에 걸린 채 버티고 있다. 둘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는다. 아이가 자꾸 여자의 품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여자. 까맣고 긴 머리를 땋았고 작고 마른 몸. 안경을 끼고 있다.  

-창 밖으로 개가 짖는 소리. 여행하는 동안 보았던 끔찍한 기사들. 터키, 방글라데시, 이스라엘의 테러들. 터키의 쿠데타. 이게 모두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벌어졌다. 

-윤회를 끊기 위해, 그래서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바라나시에 죽으러 간다는 노인들. 이 말을 듣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파키스탄와 인도의 국경인 와가보더. 인도로 넘어가자 입국장으로 데려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거리를 굳이 버스로 이동시켜주니 편안하긴 한데 왠지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버스 안에서 광광 울리는 음악도 시끄럽다. 그래도 흥이 나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 그립던 문화.

-여행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루하루 즐겁고 싶어서. 보람과는 상관 없는 것.

-중국에서 자꾸 중국 아닌 것을 찾고 있다. 우루무치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총을 든 군인들을 보았다. 몇 년 전 위구르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테러의 끔찍함 보다는 중국의 폭력적인 중화 사상에 더 치를 떨게 된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위구르인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이다. 도시의 끝에 와서야 만났다. 이들은 도시의 변두리으로, 더 서쪽 지역으로 떠밀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시 반,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2,400km 떨어진 이곳은 어쨌든 중국의 땅. 그래서 베이징의 표준시각을 따르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체시계는 그렇지가 못하다.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어디서 만나도 좋은 풍경.

-둔황의 막고굴을 만들기 위해 당시 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천년 후를 생각해 투자했다. 아 이거 정말 멋지잖아.   

-중요한 건 내가 여행지에서 무엇을 느끼느냐다. 나의 느낌. 그리고 그걸로 쉽게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

-난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해발 삼천 미터의 샤허에 오고 고산병 증상에 시달렸다. 두통이 멈추질 않았고 그래서 평소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없었다. 입맛이 없고 무기력했다.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마냥 누워 있을 수는 없겠어서 마을을 천천히 산책했다. 기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봤을 때 두 시간이 지난 걸 보고 놀랐다. 깊은 주름이 박인 산들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고, 지붕 없는 집들은 높은 데서 보면 마치 납작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이 집들이 받들고 있는 것은 라브랑 사원. 티벳 불교의 3대 사원 중 하나가 이 샤허에 있다. 야크 버터를 들고 사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법당에선 24시간 내내 야크버터를 태운다. 처음 법당을 들어섰을 때 압도당한 것은 시각도 청각도 아닌 이 야크버터 냄새에 놀란 후각이었다. 코끝에서 야크 버터 냄새가 가실 즈음 고산병도 나았다.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닌, 그래서 가장 평온할 땅들이 창밖으로 한참이나 펼쳐진다. 

-중국에서의 첫 기차. 인도에서의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밤기차를 타고 침대에서 자다보면 새벽에 문득 깨는 일이 있다. 달리던 기차가 잠시 멈춘 탓이다. 선로가 하나로 바뀌는 곳에서 반대편의 기차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잠시 고요한 사이 들리는 잠의 소리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머-언 곳에서 경적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눈을 감고 있으면 안개를 뚫고 달려오는 피곤한 얼굴의 기차가 보인다. 이내 기차는 레일을 누르며 내 옆을 지나가고 그 진동의 여운이 내 몸까지 전해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발티트 포트에 갔다가 알리라는 가이드를 만났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카페트가 깔린 방에 앉아 짜이를 두 잔 마시고 막 따온 체리도 잔뜩 먹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었다. 학교에서 여동생이 돌아왔다. 요람에서 잠자던 아기가 그녀의 딸이었다. 남편은 돈을 벌러 외국으로 갔다고 했다. 아기는 삼촌인 알리가 아빠인 줄 안단다. 집에서 나와 수로길을 걸었다. 훈자의 수로는 유명하다. 빙하에서 녹은 물을 마을까지 끌어다 쓰는 거다. 미네랄이 많아 회색빛이다. 그가 동네 아이에게 컵을 얻어 수로에서 물을 떠서는 내게 권했다. 시원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알리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모르겠다고, 그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해외에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도와줄 수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건 잘 모른다고, 나는 답했다. 꼭 오고 싶던 아름다운 훈자, 설산과 포플라 나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주는 곳, 그리고 이곳에 사는 한 청년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는 먼훗날 자신의 집을 지을 터를 보여주었다. 사과와 체리나무가 많은 땅이었다. 물이 흐르는 아랫마을과 설산이 잘 보였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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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를 계속 읽는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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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정신없이 책에 몰입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의 느낌이 좋다.

-뭘 잘못 먹었는지 체했다.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하고는 다음 날에도 내내 잤다. 꿈에서 엄마와 이글네스트에 다녀왔다. 꿈에서 자꾸 목이 말랐다.

-S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에 전혀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새로운 여행자와 나란히 혹은 마주 앉아 몇 시간씩 대화를, 그것도 즐겁게, 목소리에 힘이 빠지지도 않고 한다. 놀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잘 노는 사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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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건강하게만 살고 싶은데 슬프고 고통스럽기도 할 거라는 걸 감안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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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질듯 슬플 것 같다. “어머니가 죽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했던 정릉동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눈화장을 하고 반바지를 입은 파키스탄 청년을 만났다. 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물론 많지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남에게 뭐라하지 않으니 당신도 나에게 뭐라하지 말라.”고 한단다. 그는 이 나라의 옛 것을 존중하지만 그래도 자유가 좋다고 했다. 중국어, 페르시안어,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페르시안어는 유투브를 보고 배웠단다.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곧 중국으로 가서 공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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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부터 자전거로 여행 중인 또래의 홍콩 청년을 만났다.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 영어가 유창해서 이 사람과 더 깊이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다. 저녁 여덟 시가 되기 전에는 길기트에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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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훈자왕이 사는 궁전엘 갔다. 궁전이라고 부르지만 대저택에 가까웠다. 이곳 정원의 체리맛은 여지껏 먹어본 것들 중 최고였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경호원이 나서서 체리를 따주었다. 그리고 파라솔 아래에서 같이 수다를 떨었다. 우린 왕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왕이 자신의 창 너머로 놀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깔깔거렸다. 허술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느슨함이 좋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일하다가 올해 훈자로 배치된 이 경호원은 “이곳에서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일이 없다”고 했다. 평화롭다 못해 심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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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 체리나무를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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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포시 베이스 캠프 트래킹을 하는 날. 새벽 네 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네 시 오분에 동행이 방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쿠리와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쿠리는 스위스 사람이다. 셋이서 같이 쓰는 방에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짐들을 늘어 놓았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지 않는다. 입던 바지, 그 앞에 신던 양말, 그 옆에 티셔츠, 그 앞에 먹던 빵과 잼. 하루하루 차곡차곡 짐들이 진열되고 쌓여갔다. 미소를 지은 채 자곤 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라고 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는데 물어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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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포시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 남자 동행들의 걸음에 뒤처지지 않아야 했다. 숨이 심장까지 전달되도록 숨을 끝까지 들이쉬고 길게 내뱉기를 반복했다.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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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에 한 사람씩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만났다. 난간이 없고 오른편엔 낭떠러지였다. 이 길의 건너편에서 소 세마리가 줄지어 걸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못 지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가이드는 주저하지 않고 길로 진입했다. 사람이 보이자 소들은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방향을 틀어 도망치다가 좁은 길에 두 마리가 지나가려고 우왕좌왕 하더니 한 마리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소들이 놀라서 움찔하던 순간, 근육질의 몸이 펄떡거리며 방향을 트는 모습, 한 마리가 또 한 마리를 추월해서 달리려다가 좁은 길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던 순간, 짧은 순간 그걸 보아야했던 나는 비명을 질렀고 순간 눈앞이 하얘져서 차마 아래를 보지 못했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우리는 소들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굴러 떨어져서 아마도 저 먼 아래에 죽은 채로 있을 줄 알았던 소는, 그 소는, 몇 미터 아래의 절벽에 붙은 바위 위에서 우리를 향해 큰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걸음만 걸어나가면 바로 추락할, 딱 소 한 마리가 서 있을 만한 크기의 바위 위에서 말이다. “유아 럭키!”라며 가이드가 얄밉게 소리쳤다.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소는 정말 운이 좋았지만 거기서 소가 올라올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냐며, 구해줄 수 없느냐고 우린 걱정했고, 가이드는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하며 주인이 와서 구해줄 거라고 태연히 말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두 마리의 소가 우리 주위를 서성였다. 아아, 나는 괴로웠다. 사람이라고 저 무거운 소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밧줄로? 소가 제 몸에 밧줄을 묶을 수 있을까, 그냥 두면 결국 굶어죽는 거 아닌가? 가이드는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못해 우리도 발길을 돌려 따라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움머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세 마리의 소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당황해하는 우리를 보고 가이드는 “히 이즈 스트롱, 히 이즈 로컬 카우” 하며 웃었다. 네 발로 기어오른 것이다. 아아 네 발의 힘, 네 발의 힘, 저 근육질 몸의 힘. 너무너무 놀라웠다. 기어오르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게 몹시 아쉬웠다. 아아, 로컬의 힘이란... 그리고 소들이 겁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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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끝난다. 이제 훈자를 떠나 이슬라마바드로 간다. 이른 새벽인데 쿠리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동행할 친구가 손을 흔드는 쿠리의 사진을 찍었는데 푸른빛의 공기와 푸른 옷과 모자를 쓴 쿠리의 모습이 참 좋았다. 친구는 “언니 나 내년에 여기 꼭 다시 올 거예요.”라고 했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 새벽 네 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낮에는 나도 친구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잤다. 이슬라마바드도 라호르도 숨막히게 더울 거라고 다들 겁을 주었다. 기사 한 명이 스무 시간 내내 운전을 했다. 처음에는 노동권이 안 지켜지네 어쩌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저 그가 지치지 않기만을 응원했다. 무사히 도착하게 해달라고.. 그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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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동안 대여섯 번의 검문을 받았다. 어느 검문소에서는 기사가 총을 받아왔다. 장총을 운전석 옆에 툭 하고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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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는 길에 세계 최고봉의 설산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설산이 너무 좋다.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릴 때는 버스가 넘어질 듯이 흔들거리고 그 버스보다 내 몸이 더 흔들린다. 흔들리는 대로 몸을 편하게 둔다. 비가 내리면서 더위가 좀 가셨다. 해 질 녘 버스는 강을 오른쪽에 끼고 절벽 위를 달린다. 갑자기 선명해지던 비 냄새, 비에 젖은 흙 냄새, 기름 냄새, 사람들의 땀 냄새, 절벽 아래의 강물 냄새.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익숙하고도 낯선 이 냄새를 오래 기억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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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에서는 지인의 집에 묵었다. 외곽에 위치한 베리아 타운이라는 곳이다. 여기는 테러의 위협이 없다고 했다. 전기가 끊기는 일도 없단다. 이 타운에 들어갈 때는 신분 확인을 받았다. 이 부유한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담이 느껴졌다. 밖은 거의 50도에 육박하는 더위로 끓는데 지인 덕분에 우리는 시원하게 이틀 밤을 잤다. 뜨거운 물로 사워도 했다. 지인은 삼계탕을 해주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베리아 타운을 구경했다. 타운 안에는 주거지 건물들뿐 아니라 학교, 영화관, 쇼핑 센터, 카페 등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마련돼 있다. 거주민들 대부분이 타운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과 거리는 깨끗하고 세련됐다. 아이스크림 집에서 만난 아이들은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왕이면 막 잡은 닭을 사자고 해서 타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늦은 새벽에 도착해서 어제는 보지 못했던 풍경, 타운의 입구를 지나자 어지러운 전깃줄과 낡은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포장 안 된 거리는 더운 모래가 날렸다. 그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차를 향해 다가왔다. 아이들은 차를 쫓아 달려왔고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닭집 주인은 빗자루로 아이들을 쫓았다. 사실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두려웠다. 이렇게 선명한 부와 가난의 대비는 낯설다. 하나의 프레임에 들어오는 이 풍경은 거짓말 같다. 그래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거잖아. 놀라는 내가 당황스럽다. 생닭을 잡는 것을 보았다. 닭장 안의 닭들은 자신들 앞에서 하나의 닭의 목이 비틀리고 털이 뽑히고 토막이 나는 것을 쳐다보았다. 죽어가는 닭을 볼 수 없어서 그걸 보고 있는 닭장의 닭들만 바라보았다. 닭값을 계산하는데 직원이 피 묻은 손으로 거스름돈을 건넸다. 내가 잠시 망설이자 지인이 대신 받았다. 건네받은 봉지가 묵직했다. 마늘을 아낌없이 넣어 만든 삼계탕은 맛있었다. 사실, 너무너무 맛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씻고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었다. 근처에 큰 마트가 있다고 해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갔다. 이렇게 크고 밝고 물건들과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이상하게 점점 기운이 빠졌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것 같은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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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에 물렸다. 훈자에서 물린 것 같다. 빈대가 배를 좋아한다더니 정말 뱃살 위를 잔뜩 물었네. 진짜 너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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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로 간다.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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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는 이슬라마바드보다 더 덥다. 새벽 내내 잠의 근처를 서성이면서 이마에서 굵은 땀이 귀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내 감각이 흐르는 땀들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땀의 궤적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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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걷다가 렌즈가 빠지는 꿈을 꾼다.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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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 박물관을 다녀왔다 폭탄 테러와 명예 살인으로‘만’ 알려진 파키스탄.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철학자도 예술가도 죄다 서양이 익숙하다. 문득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를 더 알고 싶으니까. 이해하고 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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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의 힘을 믿고, 그 힘으로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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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적이 있었고 어느 시절이 지나고부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럼에도 내 마음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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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는 챠만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 두 컵을 내리 퍼먹었다.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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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의 짧은 일기들-1


-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왔다. 시계를 세 시간 뒤로 돌렸다. 숙소에 따뜻한 물 한동이를 부탁했는데, 받는데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나라로 왔음을 실감한다. 한동이로 몸은 충분히 헹구었으나 머리를 감느라 찬물을 두동이 썼다. 머리를 헹구는데 물을 많이 쓴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국경을 넘어 처음 도착한 소스트(Sost)는 도로 하나를 두고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이 도로가 카라코람 하이웨이(K.K.H). 이 도로를 꼭 달리고 싶었다. 이제 원없이 달릴 것이다. 도로에 서면 보이는 웅장한 설산은 아무리 보아도 영원히 질릴 것 같지 않다. 그 설산을 향해 걸으면, 이 정도는 견디며 다가오는 사람만을 맞이하겠다는 듯 피부를 때리는 세찬 바람이 분다. 걸어도 걸어도 그 설산에 닿지는 못하겠지만. 

-혼자보다는 둘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는 여행이다. 왜 둘이 만나 (꼭 제도로서가 아닌)결혼을 하라고 하는 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둘이 되면 ‘상실감’이라는 게 생기겠지. 나는 상실감이 두렵다. 

-미도리는 늦게까지 책을 읽는다. 먼저 자는 나를 위해 불을 끄고는 휴대폰 전등앱을 희미하게 켜둔다. 자다가 문득 깨어 돌아보면 저만치에서 그녀가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다. 일본의 작은 책이 유난히 귀여워 보인다. 

-흔히 사람들에게 훈자 마을이라고 알려진 카리마바드(Karimabad)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 숙소의 책꽂이에 『여행생활자』가 있었다. ‘
덕분에 십년 후의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난 뒤의 막막함. 여행을 시작한 지 꽤 되었음에도  새로운 장소로 옮길 때마다 매번 이런다. 특히 숙소가 나쁘면 빨리 적응하기가 어렵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파수(Passu)의 서스펜션 다리를 건널 때의 두려움과 집중력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다. 세상에서 건너기 가장 무섭다는 다리였다. 

-아마 평생 고통에 관한 질문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포플라 나무를 쳐다보다가 문득 긍정적인 질문들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서 말이다. 꽤 불행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래 나는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를 ‘생존자’의 관점에서 관찰해보면 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다시 이 숙소를 찾는다면 지금 눈앞의 포플라 나무 때문일 것이다. 이 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모네가 왜 하루종일 포플라 나무를 그렸는지 알 것만 같다. 굵지 않은 줄기로 여느 나무보다 높게 자랐고, 줄기의 대부분이 가지와 잎들에 뒤덮혀 있다. 바람이 불면 줄기까지 함께 흔들린다. 처음에는 보기에 위태로웠는데 익숙해지니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 사이로 빛이 고일 때, 이 나무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잎들. 잎이 반짝거린다는 것은 별 거 아닌 말이지만, 이렇게 그 말이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을 직접 바라보고 감동하고 있으니까 아직 내가 겪지 못한 흔한 말들이 아쉽다. 

-넉넉한 마음, 바라지 않는 마음

-『오래된 미래』를 계속 읽는다. “그것은 깊은 생각과 직접적인 경험의 결합에 의해서만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p.97)

-어제 꿈. 백 루피, 한국 돈으로 천 원 가량의 돈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여자가 있었다. (깨기 전까지는 무척 선명했던 그 얼굴) 나는 가진 돈이 별로 없어 빌려주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고도 자꾸 마음에 걸려서 나는 결국 돈을 빌려주기로 결심하고는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정까지 백루피를 갚아야만 한다고 했었다. 갚지 못하면 위험할 지도 몰랐다. 나는 조급하게 그녀를 찾아 헤맸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어느 건물 안에서 마침내 그녀를 발견했고, 그 순간 내 왼손에 백 루피가 쥐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웬일인지 그녀의 모습은 전과 달리 무척 깨끗했다. 심지어 화려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왼손에 쥔 돈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가 지갑에서 꺼낸 것은 한뭉치의 돈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니 내게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느끼게 하는 동선으로 이동해서 창구 너머로 돈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던 동정과 연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느낌이 주던 기쁨. 기뻤다. 해방감에서 느낀 기쁨. 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고 알 수 없다. 그저 이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앞선 드라마(그것도 내가 만든)가 필요했을 것이다. 

-중국의 동티벳을 다녀온 한 여행자의 말: “티벳 사람들은 부처를 정말 사랑하나봐요.” 사랑이라. 믿음과 사랑은 다른데. 

-어제 한 시간쯤 자면서 짧은 꿈을 꾸고, 잠시 깼다가 다시 잠들어 긴 꿈을 꾸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드라큘라처럼 날카로운 이를 가진 소녀를 보았다. 나는 그 이가 무서웠다. 그래서 있던 곳에서 도망쳤는데 도망친 곳에서 소녀를 또 보았다. 떠나기 위해 돌아섰을 때 그녀가 바로 앞에 서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나는 너의 이가 무섭다고, 날 해치지 않을 거냐고 하니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 미소와 한번의 끄덕임이 나를 편안하게 했고 순식간에 그녀가 좋아졌다. 그녀가 좋아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내 얼굴을 가져갔다. 

-꿈은 현실에서 받은 자극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꿈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감각을 얻기도 한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이 감각의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는다. 

-아주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늘 바라는 꿈. 하지만 매번 충분히 날지 못한다. 날개짓에 힘이 너무 많이 들고 곳곳에 장애물도 많다. 하지만 어제는 처음으로 ‘마음껏’ 날았다. 도시의 밤하늘이었다. 너무 벅찼고 온몸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공기를 가르며 날개짓을 할 때마다 손가락들은 차갑고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내 마음은 깊은 곳까지 시원했다. 그래서 너무 좋은데, 그런데 너무 쓸쓸했다. 나를 끌어내리는 중력도 없고 피해야 하는 높은 건물도 없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데,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왜 이럴까.’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꿈에서 깼는데도 이 느낌이 남아서 오래 누워있었다. 

-저녁 여덟 시부터 숙소의 평상에 앉아 별이 뜨는 걸 본다. 설산이 지워지고 별들이 반짝인다. 

-잠이 솔 들 때 바로 진입하지 않으면 반의식 상태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어제는 모기가 계속 내 얼굴과 팔에 붙어있다는 착각(?) 때문에 얼굴과 팔 여기저기를 긁었다. 누가 보면 그런 내 모습이 어떨까. 

-한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는데,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싶고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터키의 테러 소식에 모험과 호기심은 바보 같은 걸로  돼버리는 것 같다. 마음이 무겁다. 

-유년 시절 내게 특별했던 
주문이 생각났다. 
어떤 상황에서 문득 두려움이 일기 시작하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 상상을 끝까지 한다. 엄마랑 동생과 함께 밤중에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느닷없이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지금부터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상상을 끊은 건 내리자는 엄마의 목소리. 동생의 손을 잡고 걷는데 안도와 동시에 허무함이 찾아왔고, 아마 내가 상상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기에 종종 사용했다. (원하지 않게 좋은 일들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나는 철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상상했던 나쁜 상황들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고, 상상도 못하는 더 끔찍한 일들도 발생한다는 걸 알았다. (좋은 일도? 좋은 일에 관해선 이 주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데, 모를 일이다. 좋은 일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어제는 자신의 몸을 칼로 난도질해 자살한 파키스탄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의 우울이 더 심각하기도 하다고. 세상의 고통을 피하고 싶어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닌데, 어딜가도 피할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비가 온다. 짜이를 마시며 안개 낀 산들을 
보았다. 

-내가 살던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낯설음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이곳은 파키스탄이라는 것.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해가 지면서 살구빛으로 물든 구름이 설산을 감싸고 있다. 그런 구름에 설산은 자신을 온순하게 내맡기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얼굴을 씻어주는 부모 같다. 오늘의 설산과 구름. 

-꿈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나는 쇼트트랙을 배웠고 재능이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게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을 잘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았다. 다가 올 경기에서 중국인들을 이겨야 했는데, 그들을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도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알아줌. 완전히 알아줌. 

-내가 느끼기. 무언가를 통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 감각으로 느껴보기. 

-숙소 
건물의 난간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보며 현지인과 나눈 이야기.
파키스탄은 핵을 갖고 있지만 전기는 부족하다. 사람들에게는 전기가 더 중요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 긴장을 만드는 것은 정부고 군사다. 사람들은 군대를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빠른 성장은 위험하다. 한국은 너무 빨리 성장했다. 파키스탄은 한국에 비해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주위는 어두워지고 아랫마을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들려오는 모스크의 기도문 소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시차(시안)

여행 2016.08.15 13:33

해가 내 눈높이만큼 내려왔을 때에 시안역으로 들어왔는데 긴 줄의 검색대를 통과하고 돌아보니 그새 주위가 어둑했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라 긴장됐다.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 기차는 열한 시에 출발한다. 바닥에까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복잡한 대합실에서 운좋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자꾸 앞으로 고꾸라지는 큰 배낭을 두 다리로 힘주어 잡았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읽을 것이다. 글은 한국어인데도 단 몇 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읽었다. 설마 벌써 모국어가 낯선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키득대는 사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떠나고 한 여자가 다가왔다. 나이 든 여자. 하지만 머리칼은 새까맣고 한갈래로 묶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머리끈을 하고 있었다. 약간은 더워보이는 빨간 잠바.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물었다. “쓰 디엔?” 시간을 묻는 거라 짐작됐다. 나는 내 손목 시계를 보이며 아홉 시라고, 고작 몇 단어 아는 중국어로 답했다. 겨우 뱉은 그 말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 책을 내려놓고 손가락 아홉 개를 펼쳐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표시로 입술에 엑스자를 그어 보였다. 여자는 일어서더니 맞은 편에 앉아있는 공안에게로 향했다. 더워보이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오른발에서 왼발로 내딛는 보폭이 짧았다. 두 다리의 거리는 멀어서, 분명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되는데도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공안에게 답을 들었는지 여자는 다시 자리로 왔다. 그리고 내게 자신있는 목소리로 “쓰 디엔!” 이라고 했다. 내 시계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기차 출발 시각을 물었던 걸까. 난 답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자신의 오른쪽에 앉은 여자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을?) 애띤 얼굴의 상대는 짧게 답을 했고 여자는 자신의 표를 보였다. 상대는 귀찮은 듯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못믿겠는 표정을 한 여자는 다시 일어서더니 유모차를 잡고 있는 한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다정한 표정으로 표를 들여다 보았고, 여자를 데리고 열차 정보가 있는 전광판으로 갔다. 남자의 아내와 아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따랐다. 정확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남자는 여자에게 꽤 길게 설명해주었다. 부디 그녀가 답을 얻었기를, 그래서 행여 기차를 놓치지 않기를. 그 사이 내 옆자리에는 늙은 남자가 차지했다. 대화를 끝낸 여자는 다시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짐, 잡동사니로 가득찬 노란 봉지를 들어보이며 무어라 말하자 앉아 있던 남자는 말없이 바로 떠났다. 주저앉듯이 자리에 앉은 여자는 노란 봉지에서 물통을 꺼내 몇 방울 되지 않은 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그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공안에게로 가서 표를 보였고 공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했고 여자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가 이내 일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 먼 곳에 보이는 그녀는 이제 쇠창살로 된 여러 개찰구 중 한 곳에 서서 그곳을 지키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궁금한 걸까. 그런데 왜 아무도 그녀에게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걸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질문이 아닐까. 계속해서 대합실을 헤매는 그녀가 오래도록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 시야에서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다시 책을 읽었다. 출발 삼십분 전이 되자 내가 탈 기차의 탑승이 시작되었다. 쇠창살로 된 개찰구 앞에 짐을 잔뜩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나는 행여 놓칠 새라 사람들 사이에 바짝 붙었다. 쇠창살의 문이 시끄럽게 열리고 이제 기차까지의 긴 행렬이 시작됐다. 행렬을 뒤따르다가 그녀를 보았다. 허리를 오른쪽으로 틀고 앉아 왼쪽 다리에 왼팔을 기대고 있었다. 왼손에 턱을 괸 채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벽 뿐이니 눈을 감고 있지 않다면 분명 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 뒷모습이, 나는 아주 진지하다고 느꼈다. 개찰구를 지나 기차가 있는 플랫폼까지는 꽤 길었고, 터널 같은 길을 군데군데의 희미한 주황색 빛이 비춰주었다. 밝았다가 그림자지기를 반복하는 눈앞의 뒷모습들이 낯설면서도 나를 안심시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기차(란저우)

여행 2016.08.14 21:25

기차의 2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사슴들이 뛰쳐 들어왔다. 자던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뒤쫓으려 했지만 큰 사슴 한마리가 내 가까이 달려드는 걸 느끼고 구석에 가서 웅크렸다. 사슴은 다가와서 나를 핥기 시작했다. 끈적한 침이 귀와 볼에 옷 곳곳에 붙어 끈적거렸다. 나는 싫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또다른 사슴 한마리가 다가와 내 오른쪽 뺨을 핥았다.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내 몸을 더 작게 만드려고 했다. 놀라서 눈을 뜨니 꿈이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창밖으로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완전히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잠에 들었다. 기차는 이제 목적지인 란저우로 진입했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주위가 너무 아름다웠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만물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다닌 여행지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내 옆의 엄마에게 말했다. 기차는 주위의 산 높이 만큼 오르기도 하고 강물처럼 굽이쳐 돌기도 했다. 수면 위에 화려하게 옷을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인도인으로 보였다. 허공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동작과 부드럽게 출렁이는 수면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너무 아름다워서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차는 곧 란저우역에 멈추었고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채식을 시작했다며 가게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루 음식을 샀다. 가게 창밖으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2층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황톳빛의 산과 강이 보였다. 이 풍경 때문에 본래의 빛깔보다 더 검게 보이는 나무와 풀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에서 완전히 깨자 아까 다시 잠에 들기 전에 슬몃 보았던 그 낯설고 황량한 풍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란저우역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시안에서 이곳까지 여덟 시간이 걸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사막(둔황)

여행 2016.06.25 18:19

이곳은 단순한 선들로 이루어진 풍경. 사막을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대부분은 줄을 지어 오르고 따라가던 대열에서 벗어나 걷는 사람도 있다. 아무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으로. 누군가는 점처럼 외따로 가만히 서있기도 하다. 모두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인다.
내가 오를 이 사막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덮히는 것을 보았으나 무릎을 굽혀 일어나 바지를 터는 사이, 그늘은 사라져 버렸다. 땡볕 속을 걷는다.
이곳은 완벽한 사막이 아니다. 고개를 돌리면 내가 돌아갈 곳이  보인다. 손에는 물과 손수건이 있다. 끝을 모르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걷고 또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죽음과도 같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가 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림자까지 지워버리는 완전한 어둠이 두려웠을 먼 옛날의 누군가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