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봉우리가 붉게 차오르자마자 아랫마을에는 어둠이 깔렸다. 그제야 불빛들이 서두르며 하나둘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모스크에서 퍼지는 예배 소리에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곧 한 달 간의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은 작은 축제를 연다고, 여행자들에게 소고기를 구워주며 식당주인이 말했다. 나는 오늘 새벽 카림아바드에 도착했다. 중국의 국경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넘어와 이곳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여행자들에게는 훈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지상의 낙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는 곳. 눈이 깊고 코가 뾰족한 주민들이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었고,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설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십 년 전부터 막연히 꿈꾸던 곳인데, 도착한 지 하루가 다 돼 가도록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잘 실감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들은 싼 값에 소고기를 원 없이 먹는다며 벌써 다섯 번째 추가 주문을 했다. 식당에서 잠시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멈출 때마다 먼 데서 기도하는 소리만이 잔잔히 들렸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더 높이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을 깰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달팽이관을 따라 뇌를 왕왕 떠돌아 다녔다. 집 안으로 침범해 귓구멍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그 소리에 내내 긴장하며 사는 기분이었다.
난 어느 순간 집 보증금을 빼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딱히 작정하거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고 다만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한 잔 할래요?” 옆 테이블의 나이 든 여성이 페트병에 담긴 액체를 컵에 가득 부으며 건넸다. 훈자에서만 나는 술이라고 했다. “여기 공기가 워낙 맑아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할 거야.” 그 술을 받아 마셨고 반은 남겼다. 탁자에 컵을 내려놓자마자 여자는 소고기를 내 입에 들이밀었다. “여기 너무 좋죠?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돼서 이런 데가 없어.”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난 어떤 대꾸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술도 고기도 너무 맛있어서 생각을 더 이어갈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켜고 식당을 나섰다. 배웅하는 식당주인이 콧수염을 퍼뜨리며 환하게 웃었다. 난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흙길을 따라 숙소를 향해 걸었다. 흙이 발에 자박거리며 밟히는 소리에, 신발을 끌 때마다 올라오는 마른 흙냄새에 난 기분이 좋아졌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거기서 여기로 왔다는 실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있다, 있다. 설산이 저기에 있다. 바닥에 흙이 있다. 바람에 포플러 나무가 흔들린다. 그리고 생각했다. 휴대폰 조명 없이도 이 길을 익숙하게 걷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를. 1주? 2주? 한 달? 이 길에 익숙해지고도 한참이나 더 오래 여기에 머물고 싶었다.
숙소 테라스는 여행자들로 붐볐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아침에 만난 A가 불렀다. 사업을 위해 파키스탄에 정착한 지 오 년이 넘었다는 A는 여름마다 훈자로 휴가를 온다고 했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밤이 되어도 여전히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또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에너지가 넘치는 A가 마냥 신기했다. 그는 숙소 아르바이트생과 함께였다. 아슬람이라고 했다. 콧수염 때문인지 서른 살은 돼 보이는 아슬람을 보며 A는 그가 겨우 열여덟 살이라고 놀리듯 소개했다. 내가 어색하게 자리에 끼자마자 그들은 이어가던 대화를 계속했다. A는 아슬람에게 파키스탄 젊은이들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돌아보더니 파키스탄과 중국의 교류가 많아지는데 그에 관해 대화하는 중이라고 빠르게 알려주었다. 아슬람은 나이 든 사람들은 싫어해도 젊은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답했다. 자신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터넷이 잘 들어오니 유튜브로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건 좋다고 했다. 순간 정전이 됐다. 몇 여행객이 작게 소리를 질렀지만 대부분은 익숙한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중국이 도로를 깔아준다, 개발시켜준다, 좋다, 두렵다, 전통이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도 나는 많은 전기와 물이 더 좋다. 반바지…. 화장품…. 총……. 체리……. 들렸다 말았다 하는 영어가 갑자기 귀에서 묵음이 되었다 들리기를 반복했다. 눈을 뜨니 테이블에 촛불이 생겼고 A와 아슬람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명치에서 무언가 팔딱거리는 걸 느꼈다. 침을 삼켜도 목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말하는 A의 진지한 얼굴이 괴기스럽게 커졌다 멀어졌다. 팔딱대는 몸 안의 물질이 이내 목 너머로 범람할 거라는 예감이 들자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화장실로 뛰쳐 갔다. 커다란 덩어리가 내 목구멍을 넓히며 한 번, 두 번, 세 번 변기로 떨어지며 물에 가라앉았다 떠올랐고 다음엔 액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가 무엇을 쏟아내는지 볼 수 없었다. 고장난 변기 레버는 헛돌기만 했다. 양동이에 담긴 물을 가져오려는데 몸 안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또 한 번 파도를 타며 목구멍을 넘어와 변기 위로 떨어졌고, 파편들이 얼굴로 날아왔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솟구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욕 대신 위액이었다. 목 안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휴대폰의 조명을 거울에 갖다 대자 눈물과 콧물과 시커먼 소고기 파편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이 있었다.
다시 테라스로 나간 나는 평상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등이 뻐근하게 아팠다. 습기 많은 바람이 피부 위로 내려앉자 몸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A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속이 텅 비어버리자 이곳에 왔다는 게 완전히 실감났다. 오른 귀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이 없으니 별이 더 잘 보인다고, 좀 더 기다리면 은하수도 볼 수 있다는 들뜬 목소리들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Welcome”이라고 외치던 일본 여자는 밤이 되자 울고 있었다. 후추 냄새가 나는 연기가 코밑으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곤대는 말이 들렸고 그건 노래로 바뀌었다가 합창으로 이어졌다가는 이내 고요해졌다.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A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며칠 전 이 마을에 사는 누군가가 칼로 온몸을 난도질해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아슬람은 “I know”라고 짧게 답하고는 잠시간 침묵하더니 어쩌면 여기 사람들이 겪는 우울이 그 어디보다 더 심할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목이 말랐다. 사방을 둘러싼 검은 산들이 마을 쪽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 가까웠고, 무서우리만치 아름다운 은하수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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