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일상 2021. 2. 9. 20:47


1-23. 새벽에 잠깐 깼다 다시 잠들자 나는 고래의 배 아래에 있었다. 아주 느릿하고 꼼꼼하게 그의 배를 살피며 꼬리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고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어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아직 완전히 스치지도 못했는데. 고래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숨 막힐 듯 벅차고 황홀하다. 이것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1-24. 소변이 마려워서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문을 여는 칸마다 변기에 똥이 차 있었고, 마지막 칸의 문까지 닫아야 했을 때 느낀 희미한 절망감. 왜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을까 싶은 현실에서의 의아함. 꿈에서는 왜 우회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할까.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고 다시 뚜껑을 들어 올려 맑아진 물을 확인하는 방법 같은 것.

1-25. 잠에 들기 전 그날 저녁에 보았던 최시형 감독의 영화 <영시young poem>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장면들이 떠오르자마자 반쯤 희미한 정신으로 '아 나 이 영화 옛날에 봤던 거네' 하고 생각했다. 아닌데. 오늘 처음 본 영화였는데. 보자마자 멀어지는 영화,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이미지들, 마치 내 것처럼, 아련하게. 멋지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1-26. 숱한 꿈을 꾸었지만 복기하고 간직하는 데 실패한 아침. 방 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틈입하는 순간 스산히 날아갔다, 라고 쓰는 순간 고양이 꿈을 꿨다는 게 떠올랐다. 우리 집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아주 커다란 상자가 보였고 안에 있는 건 누군가 갖다 버린 개들이었다. 상자를 완전히 열기도 전에 그 개들이 나에게 안길까 두려우면서도 어떻게든 내가 책임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내가 개들을 버린 자를 잡겠다고 처벌하겠다고 생각하며 눈 쌓인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아니 그보다는 일단 이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 더 에너지를 쓰자'는 말소리가 들렸고 나는 계속해서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경찰을 만나러 갔지만 당신은 자격이 없다는 답변, 아니 용기가 없다고 했던가? 다시 돌아온 지하실에는 모든 개들이 사라졌고 난 안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픈데 빈 상자에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갔을 때 소복하게 모여 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들. 바깥으로 뛰쳐나간 개들이 남겨두고 갔다고 했다.

1-27. 목욕탕에 여자들이 모여 앉아 있고 그 위로 세찬 물이 쏟아진다. 그들 중 한 여자가 힘겹게 일어서더니 다른 이들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섬세한 손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에게 안마를 끝낸 여자가 이제 내 쪽으로 걸어온다. 걸어나온다. 젖은 얼굴로, 자신은 연극하는 사람이라며 방금 전까지 내가 보았던 한 컷의 긴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해서 듣느라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꿈속에서의 보기. 꿈속에서의 듣기.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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