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26

일상 2025. 4. 2. 13:30

실종 동물을 함께 찾는 봉사를 틈틈이 하고 있어서 오랜만에 무심코 당근에 들어가 목격 제보가 없나 싶어 살피다가 “다리 다친 고양이가 하반신을 끌고 다니고 있는데 누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글이 12시간 정도 전에 올라온 걸 발견했다. 우리집 근처 사거리의 대로변에 있는 공사장에서 목격됐고 아침에도 그대로 있어서 제보자가 구청에 포획 신고 했다고 하길래, 아 그건 도움 안된다고 사진 없냐고 내가 아는 고양이일 수도 있으니 직접 가보겠다고 하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 입었다.

옷을 입으며 머리 한쪽으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했다. 만약 아직 거기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야 할 텐데, 일단 치료는 시도하자, 포획틀을 남양주 캣맘에게 빌려줬으니 시시미미 가방을 들고 갈까, 그건 이따 발견하고 정하자, 다리를 다쳤으니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거야, 치료하고 계속 돌봄이 필요하면 방사하기 어려울 텐데 어쩌지, 집은 절대 안되고 동네 쉼터? 거긴 아닌 것 같아, 아 그래 최근 돕고 있는 미아리 캣맘이 작은 쉼터를 열었으니 거기에 입소비를 내고 부탁해보자, 돈이야 괜찮아 일단 쓰자, 난 또 왜 몸부터 나서고 있나, 이렇게 된 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거니 할 수 있는 걸 하자, 알게 되어 다행이야, 너무 심각한 상태면 어쩌지, 그럼 구청에서 그대로 일을 진행하고 동구협에다 빨리 안락사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발은 이미 그곳에 도착.

방치된 지 오래된 듯한 입구도 없는 공사장 한가운데에 노란 고양이가 모로 길게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이 멎었다. 누워 있는 뒷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이제 그의 몸은 안식에 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펜스를 조금 뜯어 안으로 들어가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외상은 없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깊이 숨지도 못하고 이렇게 노출된 땅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떠났구나.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기를..

평소 같으면 내가 어떻게 할 엄두를 못내고 친구에게 저녁에 같이 묻어주자고 했을 텐데 그 시간까지는 한참 기다려 하는지라 어서 그를 조용하고 구석진 곳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집앞에서 내가 챙기던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머리 한쪽을 떠나지 않았고, 일단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 목장갑을 사와서 등을 여러 번 쓰다듬어 주고는 두손 가득 안아 공사장 구석으로 가 누일 곳을 찾았다. 방치된 곳이라 쓰레기가 많았다. 최대한 쓰레기가 없는 곳을 찾아 뉘었다. 흙을 깊이 파지는 못하고 몸을 덮을 정도로만 팠다. 그리고 주변의 수풀로 가려주었다.

흰 턱시도를 한 치즈 남자였고, 중성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항문에서 피가 흘러 나와 있었다. 어떻게 죽은 건지는 알고 싶었다. 장출혈일까. 외상은 없지만 제보자가 하반신을 끌었다고 하니 교통사고로 다리와 장기를 다친 걸까. 그렇다면 도로를 건너다 그랬을 것이다. 이곳은 도로변이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겠다. 발정이 날 시기라 도로까지 건넌 걸까. 이맘 때면 이런 일이 잦다.

평안하기를. 그동안 여러 일을 겪었기에 이제는 나 혼자서도 죽은 동물을, 그나마 외상이 덜하다면 이렇게 마지막을 보내줄 수는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비둘기도 묻어주지 않았는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곤하여 해 질 녘 잠시 누워 있는 지금, 나는 머리 한쪽 미뤄왔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아는 게 낫다 싶어서 폰의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도로 건너편에서 밥을 챙기는 한 고양이의 사진을 찾기 위해. 한참 스크롤을 올린다. 못 찾겠어서 친구에게 사진이 있나 물어보니 금방 찾아서 보내준다.

무늬가 너무 똑같다.

1년 전쯤 눈이 몰리고 몸집이 큰 고양이가 급식소에 나타났다. 귀여워서 한참 쳐다보았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밥을 달라 애옹 울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은 꼭 만났고 최근 일주일은 잘 보지 못했지만 밥은 늘 없어졌다. 따뜻해지니 마실 다니나 보네 싶었다. 정드는 게 무서워 언제부턴가 고양이에게 이름은 붙여주지 않는다.

아랫 입술에 특유의 굴곡이 있었다. 몰린 눈과 그 입매가 그의 인상을 크게 형성했다. 나는 죽은 고양이의 사진을 다시 열어 입매를 본다. 아까는 침착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얼굴을 사진으로나마 응시한다. 입매가 비슷하다. 최근 만났을 때 입 주위로 이물질이 조금 묻어 있길래 혹시나 입이 아픈 걸까 걱정했는데 죽어 누워 있던 고양이의 입 주변도 그렇다.

정말 그 고양이일까.

아는 고양이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까보다 더한 슬픔이 몰려온다.

그래도 안 죽은 거면 좋겠다. 내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해마다 했던 고양이 불임수술도 이제는 최소한으로 그들 삶에 개입하자 싶어 올해는 하지 않았는데, 자주 만나게 되던 너는 해주었다면 6차선 도로를 건너는 일은 없었을까. 바보 같은 후회도 든다.

만약 니가 맞다면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 챙겨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아는 고양이라도, 모르는 고양이라도, 부디 평안하기를. 이빨을 보니 아직 어린 것 같았다. 짧은 생 잘 누렸다 갔기를.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런 말 덧붙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알면 아프다. 안다는 건 아픈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다. 견딜 수밖에. 이런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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