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야말로 진짜 이념정부가 아닌가?
 
  노무현 정부는 보수언론과 학계의 '정답'과 달리 이념정부보다 오히려 실용정부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이제 '실용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과연 실용적인지 그 '정답'을 검증할 차례다.
 
  한국적인 맥락으로 볼 때 이념정부란 특정 이념에 갇혀서 정책목표, 정책수단, 정책구호 등이 경직적으로 그 특정한 이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정부의 요직도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즉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만 채워진 정부를 의미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사회주의 이념과 같은 좌파 이념뿐만이 아니라 우파 이념을 포함한 다양한 세계관 즉,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체계적 사고의 집합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좌파 이념만 이념이라고 생각하는 공부가 제대로 안 된 사람도 많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념을 굳세게 따랐던 영국의 대처 정부, 미국의 레이건 정부, 현 조지 W. 부시 정부 등도 이념정부다. 그리고 나치즘을 신봉했던 독일 나치정부도 이념정부라고 할 수 있다.
 
  출범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를 완전하게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나온 발언과 정책방향, 정부 출범 후 나온 인사, 그리고 이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종합해 볼 때, 이명박 정부는 현재로서는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더 이념성을 많이 띤 이념정부에 가깝고 그 이념은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가 복합된 '변종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요소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 시장원리에 의한 경쟁, 감세, 노동시장의 유연성, 사회복지의 축소 내지 시장화 등을 강조해 왔다. 잘 알다시피 이러한 내용은 대처, 레이건, 현 부시 정부가 고수한 신자유주의의 금칙과 같은 것이다.
 
  아주 단순히 요약하자면 신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경제운용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1) 정부에 의한 시장 개입은 시장실패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소화해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2) 이러한 시장에서는 기업이 세금과 규제, 그리고 경직된 노동시장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쟁하고 기업의 수익률도 올라간다. (3) 기업이 잘 되면 궁극적으로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그래서 실업도 감소하고, 세수도 늘어난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에는 이를 공급중시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이라고도 불렀다)
 
  정책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정부기구의 축소, 법인세·종부세·양도세 감세, 재벌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융산업 구조개선을 위한 법률(금산법)' 완화, 수도권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사회복지의 축소, 건강보험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이념에 너무나도 충실한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정책도 신자유주의의 원칙 아래 시장과 경쟁에 충실하게 나아가고 있다. 노동정책도 정규직의 확대보다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자유롭고 유연하게 노동의 수급이 이루어지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정책방향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이념에 매우 충실한 이념정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보더라도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복지, 환경, 문화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공유하거나 저항 없이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각 부처의 장관들은 그 부문의 전문성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을 공유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주로 보았거나, 앞으로 볼 상류층 사람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상당수는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시장에 잘 적응하는 경쟁력 혹은 능력으로 인식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보로 치부하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방향과 인사는 왜 문제일까? 이를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대기업의 임원진은 보통 평사원과 달리 억대의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아간다. 평사원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비교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설명한다. '회사의 이익창출에 기여하는 만큼 연봉을 받아가는 것이 시장논리다. 임원진이 기여하는 부분이 일반 평사원보다 훨씬 높아 연봉이 그만큼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기여도와 연봉을 어떻게 기계적으로 계산하는지에 논란이 있겠지만 일단 여기까지 인정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이고, 적자를 보는 상황에 돌입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이 경우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는 임원진을 고용조정하기보다는 일반 평사원 아니면 비정규직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조정 할 것을 권고한다.
 
  물론 임원진도 감봉을 당하겠지만 그 고통은 평사원이나 비정규직이 직장을 잃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 임원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만 대개의 경우 이들은 새로운 회사에 다시 임원진으로 채용되거나 그 동안 벌어놓은 막대한 자산(부동산, 예금, 주식, 펀드 등)으로 평사원이나 비정규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는 경제가 잘 나갈 때 상위층이 엄청나게 버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편, 경제가 안 나갈 때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하위층이 책임을 지게 한다.
 
  거기다 사회보장을 최소화하거나 민영화를 하게 되면 자산소득이 많은 상위층은 노동시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어도 질 좋은 사회보장과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벗어난 중·하위층은 그런 혜택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물론 경기가 좋아지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업자의 재취업이 가능하게 되지만, 국가경제의 구조가 상위층의 소비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 버리면 경기회복이 전반적인 고용확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게다가 지식 서비스, 하이테크 산업이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 상위층의 고급인력 이외에는 취업의 기회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충실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급속도로 도입하게 되면 정부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개혁을 위해 시장의 강자(재벌)들을 묶어 놓았던 규제를 거의 다 풀어줄 수 있다. 재벌기업들을 규제한 이유는 무분별한 확장과 건전치 못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금융위기에 기여했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규제를 갑자기 풀면 시장이 매우 불균형·불균등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감세, 출총제 폐지, 금산법 완화, 사회복지 시장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는 한국의 경제구조를 재벌기업과, 이미 상당한 자산을 가진 자에게 특혜를 주는 구조로 급속히 바꿀 것이다.
 
  금융시장의 장기적 안정도 담보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서브 프라임사태 및 계속 되는 금융 불안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근본주의적인 신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이 방향감각을 쉽게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자유주의는 상위층이 확대한 부를 사회전반으로 흘려보내는 적하효과 (trickle-down effect)를 이념적·이론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 상위층은 경제가 잘 나갈 때 훨씬 많이 취하고, 경제가 안 나갈 때 중하위 층을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에 적하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반대로 미국, 일본, 영국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정부 하에서 격차가 확대된 것이 증명되고 있고 적하효과는 검증되지 않고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결합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소위 '개발주의'가 접합되면 정부는 시장의 강자를 위해 매우 강력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즉 위에서 기술한 대기업과 상위층에 대한 특혜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정부는 강력한 힘으로 제거해 나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민영화에 대한 저항세력, 사회복지 축소에 대한 반발세력, 비정규직의 농성, 노동자의 파업 등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세력은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제거되고, 그 과정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형태를 띠게 된다.
 
  아직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코스콤 비정규직 농성에 대한 물리력의 동원, 대운하 발상, 노조에 대한 인식, 법치에 대한 인식, 소위 '좌파세력 척결'과 같은 구호 등을 보건대 개발주의적 사고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넘쳐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핵심적으로 투입(input)을 늘려서 산출(output)을 증가시키는 매우 초보적인 경제발전 모형이다. 투입을 늘리기 위해 국가는 강제적으로 투입을 동원(mobilization)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개발 독재 시절에는 안정적인 투입을 위해 국가가 노동을 통제하고, 재벌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국민의 '정신력'을 고양해 노동시간을 늘렸다.
 
  그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높은 경제성장(output)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해 지면 경제성장에는 투입보다 생산성의 향상이 훨씬 중요해 진다. 정보, 지식, 하이테크, 서비스 산업을 지향하는 지금의 한국 경제는 정신력으로 무장해 새마을 운동을 하거나 노동을 통제해 노동 강도만을 높일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명박 정부의 패러다임은 운동장에서 구보하고, 새벽에 출근하고 한밤에 퇴근하며, 월화수목금금금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투입 위주의 개발주의 정신에 갇혀있다. 게다가 '비즈니스-프렌들리'라는 구호와 기업과의 핫라인 설치 등은 과거 재벌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개발주의의 관성에 지나니 않는다.
 
  사실 정부가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철저히 따른다면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기보다는 규제는 완화하되 쓰러지는 기업은 쓰러지도록 하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이 기업과 핫라인을 설치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면 기업들에게 오히려 개발주의적인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게 된다.

 
  Deja Vu: 정실 자본주의?
 
  이렇게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라는 이념이 합쳐지면 시장에서 강자 중심의 지배 심화, 재벌기업과 정부와의 정경유착, 재벌기업에 대한 건전한 규제와 감시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그림은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바로 97년 IMF경제위기 직전의 한국 정치경제다. 그때는 이것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으로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교롭게도 지금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요직은 금융위기 당시의 사람들로 다시 채워져 있다.
 
  강자 중심의 정치경제구도 재편과 함께 소수의 약자들에게 주어지는 안전장치가 순식간에 사라지면, 그리고 정부는 약자들이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면 자연 도태되어야 한다고 방관한다면 앞으로 5년간의 이명박 정부는 참으로 피곤하고 힘든 나날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실용정부를 추구한다면 변종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의 덫에서 빨리 빠져나와 흑묘백묘의 정신으로 양극화 해소와 건전한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편견 없이 연구·채택하고 그에 맞는 인사를 실용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이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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