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늘 책을 찾으러 가는 곳이었다. 빌려야 할 책을 정해놓고선 위치를 검색하고 그 자리에 있는 책을 빼내선 대출을 하기까지. 그런데 갑자기 잡지에서 좋다좋다 추천하는 도서나 필요한 전공서적만을 찾기만 하던 단순한 도서관 이용에서 벗어나고 싶었달까, 하릴없이 도서관엘 가보았다. 빌릴 책도 없었고 내 대출목록카드는 넉넉히 비어있었다.

수많은 책 기둥 사이를 휘적거리고 다녔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기를 기다리며.’ 몇 십분 간을 책 제목을 훑으며 걸어 다녔다. 그런데 정말, 나를 잡아 세우는 책을 발견한 것이다. 
‘둘이 아닌 세상’ 오오. 이렇게 정직하고 통속적인 문장이라니. 빼내어보니 아트 북 시대를 거스르는 하이얀 바탕에 흑백의 사과사진이 귀퉁이에 조그맣게 걸려 있는 무미건조한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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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아닌 세상, 이찬훈/도서출판 이후(2002)


내용 역시 아주 정직하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어 하는 책이다. 그 정직함은 땅 위로 난 길이 아니라 깊고 깊은 땅굴을 파면서 저 멀리 나아간 길을 걸어서 나온 것이다.
책은 열심히 살면 살수록 더욱 고단해지는 삶의 역설 속에서 왜 이리 허허로우냐 불평하는 20대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내게 ‘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라고 말한다. 철학자인 저자는 자기반영적 글쓰기로 ‘세상과 나’ ‘너와 나’ ‘자연과 나’ ‘삶과 죽음’ 에 대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공부한 것들을 풀어낸다. 

“그렇습니다. 남들은 모두 당장 돈 되는 일을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철학자는 ‘한가롭게’ ‘인생이 뭐냐’,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쓸데없는’ 온갖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렇겠습니까? .. 당장 눈앞의 이득을 좇아 물불 안 가리고 내달리는 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탈길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추구한 일이 결국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하잘 것 없는 일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어느 순간 문득 지금까지의 인생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러면서 저자는 생활인으로서 누구나 해봤음직한 고민들을, 그러나 그저 고민으로만 남겨진 것들을 고집스럽게 붙잡아선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 준다. 그건 팍팍한 세상에서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것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 바로 ‘불이 사상’ 이다.

참 성품은 깊고도 미묘해. 자성이 어디 있나, 연 따라 이어지지.
하나 안에 일체 있고, 여럿 안에 하나 있네. 하나가 큰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일세

한 티끌 속에 온 세상이 들어 있고, 모든 티끌 역시 그러해
한 없이 먼 시간도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한없는 시간이라
구세와 십세가 서로 부합하지만, 뒤섞이는 일 없이 떨어져 서 있네. _법성계, 의상

흠. 몹시나 진지해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의 관계, 이것과 저것, 이것과 다른 것들의 관계는 그것들을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둘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불이관계에 있는 세상 만물은 개별과 총체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깨달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역사책에서 의상대사가 법성게에서 화엄사상을 얘기했다는 사실 정도로만 알았는데 찬찬히 들여다보고 우리의 삶과 연관지어보니 ‘왜 우리는 이런 생각으로 살지 못하나’ 먹먹하기도 한다.

재밌고 감성적인 소설이나 수필에서만 감동을 찾던 내게 왠지 모를 뜨뜻함이 가슴에서 머릿까지 차오른다. 한 때의 공동체중심생활은 사라지고 타인을 지배,착취하면서 일궈낸 역사가 지금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공교육에 들어서고부터 순위로 내 가치가 평가되고 전교2등이 1등을 죽이는 괴담을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날들. 협동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이 사회가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승자독식사회’! 우린 그저 옆 사람의 고통에 울어줄 수 있는 알량한 친절함만을 가졌을 뿐. 취업스트레스의 구렁텅이에 빠진 우리들을 ‘그러게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래’ 라며 지나가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투쟁인 이 팍팍한 세상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은 너와 나는 둘이 아니며 나는 나로써 구성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로 형성된 유기체라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그래 중요한 건, 믿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살게 하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    

불이사상하니 관계론의 중요성을 말한 신영복 교수가 떠오른다.
“깜깜한 형장에서 교수형을 받건 찬란한 햇볕 아래서 땅위에 피를 뿌리는 총살형이건 한 개체가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결코 그 한 개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맺어 온 수많은 인간관계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무기징역이라는 긴 터널을 마주하면서 느끼기 되는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개인의 아픔이나 비극이기보다는 나로 인한 여러 사람들의 아픔이 다시 나의 아픔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구나, ‘관계는 존재’라는 실존철학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 아. 재미는 없어. 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그건 저자의 편안한 글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팍팍한 사회와 인간관계의 소외에 대한 원인 분석을 수많은 학문들이 하지만 이 책은 담백하고 소박한, 그러나 본질적인 것을 말해준다.
중고등학교때 그 재미없던 교과서를 달달 외웠던 우리들에게 차라리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라고 했으면 개인이 그리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좋은 것들을 가르쳐주면서 정작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주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책을 고르고 때론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글이 생겨나고 때론 문장이 갑자기 내게 떨어져 나를 쓰게 만드는 것처럼, 아직까지 타인의 웃고 울음에 같이 감응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위험사회지만. 살아남는 것도 힘든 불안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그러니까 모두 죽기 전에 우리 좋은 것들을 많이 찾고,, 실천하고! 퍼뜨리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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