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복잡하고 그래서 몹시나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서울.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꿈틀거리는 서울을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선망과 감탄의 마음과는 다르게 이젠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풍경이 그 풍경이라는 생각.  

그러고 보면 내 시각의 프레임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는 것들은 감탄만을 자아내고자 했던 시선일 뿐이었으며, 그러나 서울은 그렇게 즐거운 곳이지만은 아닌 것임을.. 영화 택시 블루스를 보면서 서울에게서 보지 못했던 것들, 하지만 보아야 하는 것들을 나는 느낀다. 또 그 곳에서 시간의 흐름에 구겨졌던 내 삶의 단면들도 본다.

그리고 그 슬픈 서울과 함께 블루스를 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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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1년 동안 직접 택시 기사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놓았다. 영화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일관성 없는 장르에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장면을 붙여 놓은 몽타주는 내용이 아닌 저 장면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엉뚱한 고민으로 흐르게 한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매력 있다. 그냥 그게 서울의 풍경이다. 순간의 장면에서 순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살면서도 뭐라 뚜렷하게 말할 수 없는 감정들.


택시 기사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하루 20시간 가까운 시간을 운행하면서도 사납금과 때로 벌금까지 내버리면 남는 것은 없다. 더 많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고양이의 눈처럼 그들은 사람들을 응시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보지 않아도 될, 하지만 그것이 인간 군상의 어두운 진실이기도 한 모습들을 본다.
여자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남자, 만취해 개가 되는 인간의 모습, 남편 때문에 아이를 안고 우는 여자,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

택시는 밀실처럼 인간의 고독과 슬픔 절망 폭력을 담아내는 장소와도 같다. 꼭 그렇지만도 아닐 공간이지만 어쨌든 이것이 인간이 애써 피해서는 안될 삶의 진실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는 그런 인간의 슬픈 운명에 가장 밀접한 목격자이면서 똑같이 고단한 인간의 운명이다.

묵묵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던 택시기사인 감독의 내면엔 불만과 스트레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택시기사의 고단한 운명을 몸소 느끼면서 그의 고통은 더 켜져만 가는 것 같다. 영화엔 사회 부적응에 불만과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있다는 진단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불만은 영화에서 감독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에게 욕을 하고 예의 없이 구는 사람들에게 감독은 여지없이 폭력을 날린다. 하지만 감독의 그 폭력이 왠지 슬프다.
구석방에 몸을 구부려 잠이 드는 택시기사인 감독은 마치 삶의 절망감 곧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고단한 인간의 절망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결국 온전히 고단한 인간이 되고 절망이 되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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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승객이 택시를 탄다. 그는 불평하기 시작한다. 택시 기사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그리곤 감독인 택시기사에게 자기가 아는 길을 강요하고서는 더 나온 택시비를 보고는 오히려 화를 내며, 지폐를 집어 던지곤 나간다. 그러자 거친 숨소리가 들리면서 카메라는 유유히 그 승객을 뒤따른다. 감독인 택시 기사는 말한다.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그는 승객에게 주먹을 날린다.

마음이 메인다. 그건 절망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주먹과도 같이 느꼈기 때문이리라. 한번도 좋은 기억이 없다고 불평하는 승객은 알고 보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기사를 탓하며 기어코 그를 향해 돈을 집어 던진다. 그게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역시 사람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은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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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회전하는 앵글이 자주 나온다. 첫 장면에 택시기사가 식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회전하며 상승하는 앵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죽은 고양이를 택시 기사가 주위를 유유히 회전하는 장면.
그건 절대자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신 안에 있는 인간의 운명 같은. 내가 카메라의 시선이 된다 치면, 이건 마치 유체이탈하여 나를 보는 것과도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절망스럽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렇다고 희망을 자극하는 영화 같지도 않다. 희망을 얻고 싶지도 않다. 공통적인 삶의 풍경이라 할 순 없지만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 분명히 존재할 그림자. 그 운명 때문에 택시 운전사는 고단해 하고 감독은 고단해하고 또 우리네 삶은 고단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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