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졌어

일상 2008. 4. 18. 02:04

자취집을 나서서 내리막 길로 쪼로록 내려가면 나오는 낡은 구멍가게
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늘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엔 900원이된 포스틱이 여전히 800원이고 700원이 된 비비빅이 아직 500원이다
흐르지 못한 외로운 시간들이 이 슈퍼에 고여 있다
500원이라 적힌 비비빅을 내 손이 집는 순간 서로 다른 두 시간이 접촉하면서 시간대가 어그러진다. 틈이 생긴다. 찢어진 허공 사이로 500원짜리 비비빅을 몇 십개 숨겨 두고 싶다.
그나저나 과자 집어 가도 모르게 곤히 졸고 있는 저 할아버지는 어느 시간대를 살고 있는 걸까. 꿈에서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흰 우유를 밥과 함께 끓이고 있을 것 같다.
'하라버지'라고 불러 본다.  
반쯤 뜬 눈으로 할아버지는 되려 내게 묻는다.
'얼마냐'
'1300원이요'
거스름돈을 마치 내게 용돈주듯 쥐어 준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선 가게를 나선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들이 보인다. 슬쩍 비껴서선 비비빅 봉지를 길게 쭉 찢는다. 성큼 베어 문다. 오래된 비비빅의 팥 알갱이가 심하게 짜져 있다. 괜찮다. 팥 알갱이들이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입 안에서 살살 녹여 먹는다. 이제 산책을 할 시간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