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삭

일상 2008. 4. 22. 16:24


내 노트북이 제 모든 걸 깨끗이 비워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난 '지난 몇 일동안 계속 켜두고 잠들어서 그런 걸까, 무례하게 네 위에다 김밥 얹어 두고 먹어서 그런 걸까'
이건 정말이지 몹시 아끼던 때수건 분실 이후로 가장 슬픈 분실 사건이다. 그래 이건 분실도 아니다. 소멸해버렸다.  

요즘 계속 '정리하고 싶다'  '담백하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기어코 어제는 시험공부하다 말고 옷들을 수수수 다 풀어내선 필요없는 것들은 다 기증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차곡차곡 정리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 기어코 다음 날 아침 노트북이 몸소 버림의 실천을 보여주다니.  
난 지난 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처럼 지워져 가는 기억을 잃지 않으려 과거의 구석구석을 챙기고 다니진 않았던가, 뒤숭숭했던 꿈을 기억해 내려한다.

강박증처럼 기록해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비릿내 나는 내 일기들을 다시 읽을 날도 없겠지. 런던에서 찍은 사진들이 아른거린다. 아아 대추리에서 찍은 설탕 달게 넣은 고구마를 한솥 쪄서 들고 오던 한 할머니의 웃는 사진. 황새울 노을 지는 배경이었는데.
괜찮다. 어차피 '기록'에 '의존'했던 거니까. 그래도. 그립다.


서비스 센타에 가선 하드를 싹 갈아 버렸다. 건물을 나와선 슈퍼에 들러 빠다코코넛을 샀다.
빠삭빠삭 씹어 먹는다. 컴퓨터 휴지통 비우는 소리 같다. 눈물이 찔끔 났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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