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장군협주곡

인용 2008. 4. 30. 00:59



나는 선언의 천재/사계절을 저지르며 거듭 태어난 포 스타
(four star)/
침묵과 비명의 일인자인 철문이여/얼음으로 만들어진 찬 변기여/
그리고 너 속 검은 의자여/나의 실패담이 그렇게 듣고
싶은가...

뜨거운 세상이 소년을 달구었는지/소년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려
했던 건지
어쨌든 세상을 조금 알 것만 같던, 솜털 수염이 막 나기 시작하는/
한 소년이 야구를 합니다/소년의 아버지의 머리통이
담장을 넘어가고/
소년은 배트를 던지며 퍼스트 베이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담이 비 오듯 쏘아집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그러나 퍼스트 베이스는 어디에

나는 두 번째 죄의 계절을 맞았습니다/더 이상 태어나기 싫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주근깨 여자는 어디로 간 걸까 지난밤 태내의 쌍둥이처럼
친밀했던)
나는 사방에서 자꾸 태어났습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차창의 불빛 환한 밤 기차처럼/
이렇듯 나는 너무 빤하고 선언은 늘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선언의 천재/모든 것을 선언한 뒤 알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겠습니다.

....결국 빛이 빛을 찾아 헤매는 슬픈 시간입니다


주근깨 여자의 행방을 물으며 H에게 피 묻은 야구공을 선물하던 밤/술에 취한 H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거만한 말투로 내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오늘 밤이군.

....결국 빛이 빛을 모른 체하는 슬픈 시간입니다

소년은 여전히 퍼스트 베이스를 찾아 달려가고/몇 개의 담장을 넘고 넘어 늙은 남자의 머리통이/보건소 쓰레기통에 처박히자,/소년의 어머니는 달리는 소년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칩니다


빠울 빠울

나는 노래를 잊었습니다 댄스를 잊고 비행기/접는 법 잊었습니다 팔 걷지 않습니다
뜀뛰지 않습니다/그러나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잠들 수 없는 시간


-황병승, '사성장군협주곡'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