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지않았어

일상 2008. 5. 30. 01:55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자 마자 학교 건물에서 쪼르르 달려 나왔다. 교문을 지나 5분 여 걸어간 곳. 아무도 반기지 않는 듯한 무표정의 북한산 등산로를 찾았다. 도로변에서 살짝 비켜난 이런 두근두근한 위치. 마치 다른 세계로 잠입하는 통로같다. 도로 변이라 자동차 매연이 여전히 심해 도망치듯 등산로 입구에서 달려 올라 갔다. 하아- 그래도 산은 산이다. 오분 정도 걸었는데 몸 속의 공기가 정화된다. 인적이 드물어 좋다. 무릎을 한껏 굽히며 씩씩하게 걸어 본다.

형제봉까지 갈 참이다. 교문을 들어 설 때마다 늘 흘끔 보곤 하던 북한산의 모습에서 형제봉은 어디에 박혀 있던 걸까. 산 속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내 위치를 알 수 없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난 묵묵히 닦여진 산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래 산을 오르면서 단순해지고 단순해지자. 잡념을 버리자. 그러고마 했는데도 자꾸 생각들이 내 머릿 속으로 떨어진다. 또 생각의 노예가 된다.
살면 살수록 왜 이렇게 방향잡기가 힘든 걸까. 되돌아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은 인생의 이 지점에서 한 없이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기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이토록 치열한 고민으로 다가오는 때. 그건 현실을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인 건지. 그건 그렇고 현실이란 게 있긴 있는 걸까. 그래 이 모든 건 내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나를 사랑하진 않는가 보다. 삶을 위해 자꾸 나를 희생시키는 듯하다. 땀이 흐른다 싶었더니 꽤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바람이 낙엽을 건드리겠더니 했는데 묘하게 자꾸 눈길이 간다. 자꾸 보니 흙이 움직이네 두더쥔가. 이 시점에 뭔가 환상적인 일이 벌어졌으면 좋으련만.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뭔가 비밀스러운 일. 유에프오를 봤다거나 하는. 땅을 뚫고 무언가가 확 출몰했으면 싶다. 땅에선 여전히 뭔가가 꼬물거린다. 흙의 표면이 길을 만들며 들썩거린다. 한참을 비탈길에서 어설프게 서서 바라보고 있다. 혼자 등산하니 한없이 태평스러워지는 구나. 좀 전의 긴장감에 머쓱해져 다시 길을 오른다.

한 시간쯤 올라서야 쉴 만한 너른 바위가 나온다. 가방을 풀고 앉았다. 옆엔 중년의 부부가 이야기를 나눈다. 친척끼리 싸웠나 본데 돈을 빨리 안갚아서 문제가 있었나 보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형제들끼리 돌아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던데 그래도 요즘은 형제들이 별로 없으니 그런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난 동생에겐 뭐든 퍼줄 수 있을 것 같다. 군대를 가서 애틋해졌나 보다. 뭐 여튼 그래도. 이야기를 끝낸 부부가 가방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더니 카라멜을 먹는다. 그러곤 나에게 와서 두손 한웅큼을 쥐어 준다. '학생 이거 먹어' 그러더니 이내 치즈 두장까지 얹어 두고 가신다. 기분 좋다. 곱게 포장을 펼쳐 따뜻함을 까먹으며 신대철 시인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인간적이라는 것. 글자 한 땀 한 땀에 배어 있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그는 어릴 적 나무 위로 곧잘 올라가 해질 녘까지 내려오질 않았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사랑하게 하고 자꾸만 떠돌게 하는 걸까. 여전히 알 수 없는 허허로움에 휩싸여 있는 나. 평생 그럴 것이다. 그래 이게 삶인 걸. 그 허허로움을 견뎌 내며 조마조마한 허무감을 즐기며 나는 성실한 생활인이 되겠지. 산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정말 생물체같다. 김광섭의 시처럼 '새벽녘이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렾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가는 산.' 이렇게 자연과 부대끼고 부대끼면서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되어 가는 기쁨. 하지만 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되지 못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덧대면서 존재감을 얻는 것. 아무 것들도 아닌 사람들의 살짝 목마를 듯 결핍한 사랑이 넘치는 세상.  

친구의 문자가 온다. 산엘 한참 올랐는데도 터지는 휴대폰이 신기하다. 미처 꺼두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앞머리 자르다 눈두덩이 베어서 피난다는 친구의 문자에 피식 웃음이 난다. '나 여기 북한산이야아아아아호' 문자를 보내니 '또 청승맞게 혼자 갔겠구먼' 타박을 준다. 어느새 땀이 다 말랐다.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모른다. 굉장히 비탈길이다. 바위를 손으로 짚고 용을 쓰며 오른다. 어릴 때 극기훈련을 할 때면 선생님들은 내게 제일 못할 것 같이 보이는데 제일 깡다구 있다고 해주었다. 어릴 적 기억에 괜히 뿌듯해져 산악인처럼 폼을 내며 오른다. 산 그늘에 어두운 낙엽길이 나온다. 실컷 걷다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래도 좋겠다 싶다. 쉬고 걸으며 두 시간을 훨씬 넘어 올랐다. 이제 정말 다 온 것 같다. 막 파른 계단길이 보인다. 손에 힘을 꽉 주고 하얀 바위를 짚고 오르는데 불현 듯
사람들은 공평한 걸 싫어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왜 이 생각이 불쑥 떨어졌지. 그러고 보니 오전에 본 영화잡지에서 영화 추격자가 주는 불편함을 지적하며 극 중 여주인공이 죽은 것에 대해 관객들은 죽지 않는 것을 지지하지만 잔인하게 죽는 것에 더 매혹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가 전면화한 신자유주의의 잔인한 풍경이라고 했다. 예리하다. 영화평에 감탄했는데 그랬는데 왜 형제봉을 맞기 직전 이런 생각이 드는가 싶다. 폐허처럼 자꾸 무너져 내리며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픈 욕망과 세상 속에 푹 담겨 그걸 휘젓고 싶은 욕망에서 난 여전히 갈등하는 것인가.
 

하아 다 올랐다. 사방으로 서울이 내려다 보인다. 잡념들 다 부질없다. 어쨌든 나는 여기 이곳에 있으니까. 가까운 시야엔 야트막한 집들이 있는가 하면 멀찍이엔 아파트들이 징그럽게 가득 꽂혀 있다. 옆에 앉은 아저씨와 아주머니 둘은 저기가 형 봉우리고 여기는 동생 봉우리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저 너머 형 봉우리에도 몇 사람이 보인다. 문득 투신하고 싶은 욕망이 인다. 아슬아슬해져 풀썩 주저앉곤 바위에 벌렁 누웠다. 산의 허공은 맑고 깨끗하구나. 꽤 먼 거리의 봉우리인데도 그 곳에서 떠드는 소리가 부서지지 않고 곧게 날아온다.
하늘과 마주보고 누워있기에 눈이 너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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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옥상에서 낮잠 자던 개야 개야 왜 놀라 깼니 무슨 꿈 꿨니 하암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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