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는소수자다

일상 2008. 6. 18. 02:03

1. 원래 사람들은 이절적인 '다중'에 가깝다. 사람들은 하나로 소급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래서는 통치가 쉽지 않다. 집단의 정체성이나 성격을 파악하고 규정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관리 방법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사람들을 동질적인 성격의 '군중'으로 만드려고 한다. '국민'이나 '노동자'와 같이 특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 들이 '군중'의 예들이다.
이런 동질적인 집단은 관리하기가 훨씬 쉽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것에 분노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잘 봤듯이 '국민'은 그 엄청난 수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에 감동하고 동일한 것에 분노한다.
하지만 이런 동질화 작업이 모든 사회 성원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랬다가는 권력에게 별 이득이 없다. 모두가 같은 것만 할 줄 알고 같은 것만 느낀다면, 사람들을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여러 다른 집단을 형성시키되, 각 집단의 규칙을 공고하게 유지해서 지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2. 권력은 대중의 흐름이나 이동보다 결코 앞서서 존재하지 못한다. 들뢰즈는 권력을 어디로 튈지 모르고 무엇을 생산할지 알 수 없는 '흐름'들을 명확하고 동일한 성격을 지닌 몰적인 '선분'으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한다. 즉 권력은 대중이라 지칭되는 여러 사람들의 흐름과 창의성을 특정한 형태로 고정함으로써 기능한다. 권력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리 고정시키고 경계를 명확히 해 놓았다고 여겨도 또 빠져나가는 흐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흐름 자체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 다시 그 흐름을 쫓아가서 고정시켜야 한다. 권력은 끊임없이 쫓아갈 뿐이다.

3. 가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 밑에는 '이주노동자도 비참한 존재이고 우리와 같이 고통받는 존재'라거나 '우리도 이주노동자처럼 고통 받을 수 있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주노동자가 오히려 내 고통을 가중 시킬 경우, 내 직장을 빼앗아간다 여겨질 경우 같은 노동자라도 이주노동자에게 적대적이다. 함께 뭉쳐 고통을 극복하고 부르주아와 협상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가 오히려 그 협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진정 힘을 가지는 것은 부르주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협상이 아니라 혁명을 할 때, 부르주아 질서로부터 이동할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꾸로 말해야 하는게 아닐까.
노동자의 일부에 이주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모습은 이주노동자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노동자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비참함을 공유하지 않는다. 반면 이동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다양성을 공유한다. 그리고 권력은 그런 무수한 횡단과 이동을 통해 무너진다. 이제 고쳐 말할 때다.
동자는 이동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와 이동' 中 , 만세



2년 전이던가. 수유+너머에서 들었던 소수성의 정치학 중에서의 한 강의였다. 이주노동자 관련 자료를
찾다 다시 꺼내 읽게 됐다. 자꾸만, 자꾸만 더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공부? 이런 공부.

이런 글을 보면 구호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시위 현상에서 불편한 구호들이 많다. 예컨대 이명박 I'm gay 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확성기녀라는 말은 얼마나 듣기 불편한가.
또 내가 암묵적으로 끄덕이고 있는 구호 중에 생각해 볼거리가 있는 것도 많을 거다.
지금의 촛불 시위 현장에 더 많은 소수자들을 불러와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타자들이 만나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고 더 넓은 인식으로 그 균열을 다시 메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 내부는 자꾸만 싸워야 한다. 반성할 거리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 그게 시위 문화의 발전이다.

좋은 구호하나를 마음에 도닥도닥 잘 묻으면 얼마나 풍성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경험이 내겐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 라는 말이었다.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알게 됐고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됐다.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물과 흙바람이 소수자이고
뻘의 조개와 들판의 곡식이 소수자이며
농민과 노동자 청년 여성 장애인 학생 예술인이 소수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수자입니다 (수유 + 너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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