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보고싶어요

일상 2006. 9. 18. 22:48


오랜만의 편지네요
갑자기 가을바람이 드세졌어요. 덜컹거리는 창문에 내 마음도
덜컹거리는 것 같아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밖을 나섰네요.
어둑한 운동장을 축 처진 어깨로 거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없는 긍정은 그저 민들레 홀씨와 같아서
훅-하고 불면 휙-하고 날아가기 십상이라고,
하지만 수십,수백 번의 회의와 허무를 통해 피어난 긍정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그 뿌리를 통해 시원한 물을
흠뻑 빨아 들이며 알차고 알차게 여물어 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슬픈 눈빛. 그 속에서 저도 살아 가는 힘을 얻거든요.

비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지금쯤 창문에 박히는 빗방울을 하나둘씩 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서점에 들어가 평소처럼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을 골라들고
쇼파에 앉았습니다. 황경신의 책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괜찮아,그 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프로방스 여행기인데
제목에 꽂혔죠. 머리글을 읽으려 하자마자 영업 마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오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교보서점의
마감방송에 흘러 나오는 음악.

우선 아랑곳않고 머릿말을 읽다 참 좋은 글귀를 찾았습니다.
"삶은 표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안한 세계를 떠다니고 있다.."

물었었죠. 힘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일상이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지 말입니다.
이 글귀를 읽어 주면 분명 당신은 그렇게 말하겠죠.
내 의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사는 거겠죠.
계속 살다보면 가로등에 불 켜지듯 모든 게 하나둘씩 선명해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요.

태풍이 온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태풍이 온다는 말의
그 조급하고 불안함이 좋다고 했어요. 당신의 일상도 저의 일상도
조마조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에 대한 기대감에서라면
더 좋겠죠.

굉장히 보고 싶어요.
스산한 가을 바람이 깔깔한 제 가슴을 훝고 지나가며
사정없이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다해도 좋은 가을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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