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난 밤에 잠들기 전의 상상하는 시간을 너무 좋아했더랬다. 그 시절 간절히 상상하던 건 내 인형이 진짜 아기가 되는 거였다. 밤마다 난 내 인형이 진짜 사람이 되어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함께 노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 당시에, 인형이 아이랑 단둘이 있으면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공포얘기가 유행이었다.
가끔 인형을 빤히 바라보다 살아 움직일 거라 생각하면 무서웠다.
정지한 시간의 흔적처럼 멍하니 제자리에 붙박혀 있는 인형들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인간의 신체가 외화된 인형, 사람들은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인형이란 존재를 만들어 놓고 즐거워 하면서도, 한편 정말 그것이 인간이 될까 두려워 한다.
나와 닮은 타자를 만들어 놓고선 정말 그것이 나의 모습인 것 같아 불안해 하는거다.
외견상으로는 살아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정말로 살아있는지 어떤지 하는 의혹, 그 반대로 생명이 없는사물들이 어쩌면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 인형이 기분 나쁜 이유가 뭐냐고 한다면,
그건 인형이 인간의 닮음꼴이며, 결국 인간 자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간단한 장치와 물질로 환원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
결국 인간이라는 현상은 본래 허무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
_ 오시이 마모루 <이노센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