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용 2008. 8. 12. 15:17

'미루야마 겐지'의 소설<천년동안에>에는 무려 천년동안을 살아온 나무가 등장한다.
그 긴 세월동안 수천가지의 삶을 보아온 나무는 이 세상엔 더 이상 신기해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모든 삶에 냉소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나무 앞에 등장한다.
천년의 나무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뭇가지에 목을 매다는 여자.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여자의 몸속에서 갓난아기가 툭 떨어져 나온다.
숲 속에는 아기를 돌보아줄 자가 아무도 없다. 엄마인 여자는 이미 죽어버렸고,
나무는 제 아무리 천년을 살아왔다 한들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아기가 생존할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하지만 그 순간, 온갖 회의에 빠져 있던 천년의 나무는
거의 꿈꾸는 듯한 심정으로 저도 모르게 이렇게 외쳐버리고 만다.
"잘 태어났다! 살아라! 겁내지 마라!"



이처럼 일상이란 시간이 중매한 마주침, 그 만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무엇인가 하게끔 되어 있다. 만남! 그 어떤 의미로도 포획할 수 없는
사건이며, 찬란한 섬광인 마주침에 이끌린 그들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도 기적처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만남은 절망을 넘어선 희망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축복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만남 사이에 터져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경이로운 사건일 뿐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메시아적 시간 : 복음인가, 비극인가 / 이종영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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