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웃음

일상 2008. 8. 18. 00:19

서울역 지하도를 걸어간다
지상으로 오르는 길을 향해 그늘의 틈을 비집으며 걸어간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목, 햇살이 겨우 비켜간 그늘에 살지 않는 듯 누워있는 아저씨
바지춤 끝에서 폴폴 나는 먼지를 햇빛이 태우자 때어 절어 반질거리는 옷
구십도로 꺾어 오른쪽 다리를 무릎에 올리고선 여전히 살지 않는 듯 누워 있는 아저씨
코까지 내려 온 푹 눌러쓴 모자

걸어가며 스치듯 본 그의 입은 웃고 있다
계속 걷는다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웅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훙얼훙얼 썩고 낡은 누런 이로 부르는 노래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표정으로 그늘을 벗어나 계단을 오르며 뜨거운 햇살을 맞는다
기꺼이 제 몸을 익히러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에게서 숭고미가 느껴진다
같이 이끌려 난 계단에 발을 디딘다
웃던 아저씨의 모습이 뜨거운 햇살에 파랗게 질린다
내 눈에 계속 둥둥 떠다니는 파란 웃음

나는 그네들 때문에 운 적 있는데 이젠 울지 말아야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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