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 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악랄함,능청맞음,요괴성을 알아라!'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저는 점차 세상을 조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이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태까지 저의 공포란, 봄바람에는 백일해를 일으키는 세균이 몇십만 마리, 목욕탕에는 눈을 멀게 하는 세균이 몇십만 마리, 이발소에는 대머리로 만드는 병균이 몇십만 마리, 전철 손잡이에는 옴벌레가 우글우글, 또 생선회, 덜 익힌 쇠고기와 돼지고기에는 촌충의 유충이나 디스토마나 뭔가의 알 따위가 틀림없이 숨어 있고, 또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작은 유리 파편이 박혀서 그게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눈알에 박혀서 실명하는 일도 있따는 등의 소위 '과학적 미신'에 겁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였던 겁니다.


+
삼 일 동안 저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고 합니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자하면서 제일 처음 중얼거린 헛소리는 집에 갈래, 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집이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는 당사자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그렇게 말하고는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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