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 기술의 문제는 무엇인가. 기술인 한에서는 그것도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오는'
'탈은폐'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참여를 통한 드러냄'이 아니라, 자연에게 빨리 내놓으라는
'닦달'과 같다.
"과거 농부들은 돌보는 자였다. 그의 일은 씨앗을 뿌려 싹이 돋는 것을 그 생장력에 맡기고 잘
자라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작은 자연을 닦아세우는 일이 되었다."
비료와 농약을 써가며 토지에게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자연은 강요받고 있다.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며 바람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풍차" 와 "대지로부터 광석을, 광석으로부터
우라늄을, 우라늄으로부터 원자력을 강요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차이.
"물의 흐름에 따라
돌아가던 수차" 와 "물의 흐름을 바꾸어 설립된 댐" 의 차이. 문제는 거기에 있다.

2. 나는 홉스를 리얼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을 볼 때조차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푸코가 잘 지적했듯이 그의 전쟁은 "피도 전쟁도 없는 일종의 재현 게임"
이다. 국가는 적의 야만성, 테러의 공포를 끊임없이 상상케 함으로써 자신의 야만과 테러를 감추어버린다. 전쟁과 테러에 대한 공포를 환기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자유를 빼앗고, 테러리스트의
야만성을 시청케 함으로써 자신의 침략전쟁과 테러를 못 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홉스식 전쟁이 사실은 실제의 전쟁을 은폐하기 위한 가짜 전쟁이고, 홉스가 말한
권리의 양도가 양도되지 않는 권리를 은폐하는 가짜 양도라고 생각한다. 진짜 쿨한 리얼리스트
였던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괴물이 아니라 "온갖 연기를 피우며 시끄럽게 짖어대는
위선적 개 한마리에 불과하다".

3. 우리에겐 불가능해 보이는 '국가없는 사회'가 원시부족들에게는 실재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당연하지. 그들은 미개하니까. 그들은 국가를
극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인류학자 클라스트르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국가의 부재는 그들의 미개함이 아닌, 어떤 능력, 어떤 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사회가 단순히 '국가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에 대항한 사회'라고 말한다.


4.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들 한다. 최소한 그와 똑같은 정도의 진리로서 우리는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가 국가에 대항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_클라스트르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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