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철이라는 것은 드는 것일까. 문득 어릴 적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철이 든다는 것은 철새의 머리에 든 철 때문에 지구의 한 극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시간에 마모되는 내 기억력을 장담할 수 없기에 왜곡되고 변형된 이야기겠지만 어째 그럴싸하지 않은가. 철이 든다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하나의 극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것뿐이라고. 나이듦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어릴 땐 철이 들고 싶었다. 더 나아지겠지라는 기대감. 하지만 그래도 철들만하다 싶은 나이가 되었는데 과아연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16살 때 학교에 막 부임한 내 영어선생님과 같은 나이라고 생각하니, 그땐 선생님이 참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때의 나이가 되고 보니 나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만 같다.
웅얼중얼 중얼웅얼 내가 이러고 있는 건 영화 ‘주노’를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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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6살인 주노. 생애 첫 섹스와 함께 첫 아이를 임신하게 된 미-성년자. 듣기도 해도 막막한 이런 상황. 집에서 내팽겨지고 아이 아빠에게 배신당하고 미혼모의 집에 가서 힘들게 생활하는 모습을 비극적 혹은 희망적으로 보여줄 것만 같다. 소재만 들어서는...........이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미혼여성 인식의 한계인가. 두둥.

이 영화가 좋은 건 16살이 16살만큼 생각하고 16살이 생각한대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만한큼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는 걸 보여준다는 거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늘 자기 삶을 강요받기 일쑤였던 청소년은 주노를 통해서, 자기가 먹은 만큼의 나이에서 얼마나 저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노는 비록 임신을 하긴 했지만 울며불며 자책하지 않고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고 좋은 양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배가 너무 불러 학교에서 놀림이 되지만 학교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좋은 귀감’이 될 거라는 반성 섞인 농담까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용기. 말 그대로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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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아요. 철든 어른이라고 해도 알고 보면 철든 척 하든 것일수도. 군것질을 하고 싶지만 안하고 싶은 척. 갑갑한 사회질서에 억압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임을....(라고 말하면 나 너무 건방진가요)
주노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아이를 좋은 양부모에게 입양하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확신이 섰냐는 질문에 주노는 104% 확신한다는 대답한다. 제 삶에 대한 책임은 그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으며 자신이 확신에 차 가면서 이뤄낸다는 것. 영화는 철이 든 어른의 시선도 철이 안 든 어른도 시선도 아닌 17살 주노의 눈을 맞추며 만들어 졌다.

또 하나는 한국인으로서 바라본 영화 주노는 더욱 의미깊었다는 것.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재혼한 여자의 가정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꼈는데 영화 주노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노가 "I'm pregnant." 라고 말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으며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부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내 자식이 아니라느니 해서 기를 죽여 죄인처럼 만드는 게 한국사회의 모습일텐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얼마나 더 좋은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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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주노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일찍이 이혼하고 엄마는 재혼해버렸으니까. 새엄마가 들어오고 새엄마가 낳은 여동생이 함께 사는 가족은 한국식으로 보면 불우한 가정이라고 하겠지만, 영화에선 ‘친엄마와 안살면 불행해’, 어릴 적 동화가 가르쳐준 것처럼 ‘계모는 나빠’ 와 같은 편견이 없다.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족의 탄생인 것을.
마냥 행복해보이던 주노 아이의 양부모가 될 바네사와 마크 부부가 이혼하려고 했을 때, 주노는 믿음에 대한 배신에 너무 서러워 엉엉 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욕심을 버리고 자기 아이를 진짜 사랑해줄 수 있는 바네사를 제 아이의 엄마로 인정하게 된다.
또 어른이라고 당연히 부모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바네사의 남편 마크를 통해 보여준다. 그가 자신의 숨겨왔던 자신의 자유로움을 선언하며 아빠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비난할 순 없다. 오히려 이해와 공감이 앞선다. 

이렇게 영화는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한 명 한 명 그 누구도 편견없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은 카메라의 따뜻한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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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구성됐다. 그리고 내내 길을 따라가는 장면이 많았다. 주노가 가는 길을. 설마 임신일까 싶어 조마하며 임신테스트기를 사러가는 주노를 따라서, 자기 아이의 양부모가 되어줄 사람을 만나러 가는 주노를 따라서. 그렇게 끝까지 지켜봐주고 응시하고 싶어하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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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면서도 104%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런저런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104%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가장 아름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우리를 이끄는 지구의 끝을 향해 아름답게 날개짓하며 날아가자.  머리에 든 철이 조금 무겁더라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주노처럼 조금 더 용기있게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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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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