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후 열두 가지 이야기 <유다, 1/12>, 양손극장

 

1.
극장 앞에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 소극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광경은 처음 본다. 입장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지하로 빨려들 듯 내려간다. 입장하고서도 한참이나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객석이 모자라 무대 앞까지 관객들이 점령했다. 밤 8시를 넘긴 시각. 두근두근. 어떤 연극일까.


2.
관객들이 자리는 잡는 사이, 무대 한켠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린다. 절규하는 여자의 비명에 사람들 시선은 그쪽을 향한다. 심하게 놀란 듯 멍하게 서 있는 여자가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한다. 그 옆엔 미안하다며 계속 사과를 하는 남자가 보인다.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여자를 놀래켰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여자는 이제 엉엉 울기 시작한다. 친구가 급히 달려가 감싸안곤 밖으로 데려 나간다. 여자의 비명과 울음에 잠시 동안의 침묵, 여자가 나가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극장 안. 마치 연극의 한 장면과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3.
서서히 조명이 켜지고 다시 조명이 꺼지는 사이. 무대 한 가운데로 들어온 유다, 종이 한 장을 꺼내 가위질을 한다. 가위질이 끝난 종이에는 예수가 그려져 있다. 그 예수 사진을 가슴팍에 붙인다. 은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로 알고 있던 유다, 그를 무대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4.
무대를 감싸안듯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조명. 그 사이 12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무엇보다 조명에 매료됐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한 순간 한 순간 완성된 조명을 보여주겠다는 듯, 마치 하루에 피고 지는 꽃 같다.


5.
열두 개의 에피소드, 열두 개의 다양한 표현방식. 장르를 넘나드는 표현으로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더욱 풍성해진다.


6.
최후의 만찬 : 예수가 제자 한 명 한 명의 발을 닦아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다는 생각한다. “저 분은 쓸쓸하신 거다. 저 분은 외로우신 거다.” 아아.


7. 유다의 이야기 : 사랑과 증오, 지독한 뫼비우스의 띠

사랑에서 증오로, 한 줄 사이 바뀌는 그의 마음.

“갈기갈기 찢어발겨서 죽여주세요. 그 사람은 제 스승입니다. 주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랑 동갑입니다. 서른셋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겨우 두 달 늦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대단한 차이가 있을 턱이 없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리 없지. 그런데도 나는 여태껏 그 사람에게 얼마나 혹사당해 왔는지. 얼마나 조롱당해 왔는지...그는 뭐든지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처럼 남한테 보이고 싶은 거야. 웃기는 얘기지.

....

저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알아주시지 않아도. 또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만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런 것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8.
예수를 사랑하고 증오했던 유다. 예수에 대한 존경 그리고 예수에 대한 시기와 열등감, 사랑했기에 예수의 행동이 유다에게 쉽게 상처를 주었고 미운데도 사랑하니까 죄책감이 들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들고 자신도 죽어 버리고. 사랑이 먼저였는지 미움이 먼저였는지도 알 수 없는 마음. 자칫하면 미움으로 가라앉고 다시 사랑으로 떠올랐다가도 자칫하면 다시 미움으로 가라앉는. 인간의 감정이란.


9.
연극 내내 들리던 음악 류이치 사카모토의 <Bibo No Aozora>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이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은 제 멋대로 내 몸을 흐르고 여기저기 박혀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며 춤을 춘다. 아주 슬픈 춤. 무대 위 두 명의 유다가 사랑하고 증오하듯 감싸 안고 싸우던 그 몸짓처럼.

10.

“죄악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죄의식과 행위,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연극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관객과 배우, 공간이 있을 뿐입니다.”

읽고 또 읽게 만드는 팜플렛의 문구.

‘죄인’ 유다가 아니라 ‘사람’ 유다.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날 팔리라.” 예수는 자신을 팔 그 제자의 입에 빵을 물려주겠노라며 서서히 유다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유다의 입에 빵을 물리는 예수.

유다는 회상한다. ‘창피하다기보다 미웠습니다.’ ‘왜 예수는 나만 미워하는 것인가.’ 독백이 끝난 후 그는 관객석을 향해 말한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제 이름을 말씀 안 드렸죠. 제이름은 유다입니다.”

침묵을 강요당한 자에게 목소리를 주었을 때, 봇물처럼 터지는 그의 말들. 그게 변명이든 자기 정당화든. 심판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쉽게 죄인이란 딱지를 붙이지 마라.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물론 예수의 마음 역시 우린 잘 모른다. 


11.

“연극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관객과 배우, 공간이 있을 뿐입니다.”

폐쇄된 한 공간은 기원전을 거스르기도 하고 또 현재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또 지상계가 되기도 천상계가 되기도 한다. 단순한 하나의 소품은 책상도 되고 의자도 되고 벽도 되었다가 나무도 되었다가 자유자재로 관객의 상상을 자극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배우는 눈짓, 손짓, 몸짓 다해, 온 마음 다해 공연한다. 관객을 위해.

연극이 막 끝나고, 소극장에 모인 몇백 명이 짝짝짝 박수칠 때 백팔십도가 되도록 허리 숙여 인사하는 두 배우, 깊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배우, 곧 울음이 터질 듯 반짝이는 눈으로 관객을 바라보던 그 얼굴.


12.

영화와 연극은 달라서 감정이 쉽게 과잉되는 영화와 다르게 연극은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그랬다. 눈앞의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환기하고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에야 감정이 생겼다. 이건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찝찝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연극,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함께 나 역시 동요한다. 무대와 관객석이 현장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 “배우의 표현이 드라마로써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양손프로젝트의 말처럼 나, “연극의 맛”을 알게 되다. 연극을, 그 실체 없는 연극의 기운을 참 좋아하게 되다.






열두 명 중의 한명이었던,
열두 명 중의 한명이 될 수 없었던
한 사람


원작_ 다자이 오사무 '직소'
연출_ 박해성
출연_손상규, 양종욱
제작_양손극장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