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는 존재는 '저편'과 '이편'이라는 두 가지로 정확히 분열되어 있었다. 나에게 '이편'의 세계는 값싼 모조품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저편'에 바로 인생의 진실이 있다. 나 자신도 '저편'으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든 그것만이 진정으로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그런 내 내면의 목소리에 반론하지 못하고, 질질 시간만 끌며 '이편'에 눌러앉아 있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2. 나는 '아우슈비츠'가 단순하게 우리에 대한 도덕적 경종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근대에 기인하며, 지금도 현실 그 자체에 내재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는 '일부 인간은 인간이하'라고 하는 사상,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3. '이해'하고픈 강한 욕구와 초조함 그리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 이런 균열은 이성적인 쁘리모 레비에게 죽음의 순간까지 고뇌를 제공했다. 쁘리모 레비에게 '독일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소통 불능의 깊은 균열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그야말로 심신을 갉아먹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4.
원한이라는 것, 이 진실한 도덕 감정의 원천, 언제나 억눌린 사람들의 도덕이었던 것.
그 원한이 싸워 이긴 자들의 사악함을 뛰어넘을 기회는 거의 없다
.
혹은 전혀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우리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각각의 원한마다 '끝장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말은 옛 강제수용소의 은어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방법, 즉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끝장을 내야 하며 또한 곧 끝장을 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원한 어린 푸념으로 때가 오기를 참아주기 바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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