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1961, 유현목 연출
                                                                                                   김진규, 최무룡 외 출연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리는 관광버스에서 내렸고, 진흙땅은 질척대고 질벅거려서 운동화를 딛기도 거북스러웠다. 우산 하나에 여럿이 달라붙어선 언덕을 올랐다. 도착한 곳엔 희끗한 머리 위에 캡모자를 살짝 얹은 한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흙으로 둘러싸인 그저 평원 같은 곳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몇 십 명의 사람들이 트럭에 실려 왔고, 깊이 파인 구덩이에 떠밀려선 총을 맞고 그대로 묻혔다고 했다. 최근에야 발굴작업이 있었고, 드러난 허연 뼈들은 찾아가는 이도 없이 그곳에 오래 방치됐다. 잠자코 그 노인의 말을 들었다. 굳이 보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두텁한 손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전라도 순천이었을 것이다. 이젠 말끔해진 그 장소 앞에서 그 시절의 끔찍함을 ‘상상’해야 했다. 슬퍼지려고 노력해본 것도 같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꾸 그 할아버지의 자글한 주름과 감각이 무딜 것 같은 두터운 손에만 자꾸 시선이 갔고, 그게 이 현장에서 역사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한 몇 편의 글을 쓰면서, 이미 많이 무뎌진 감성으로 당시의 아픔과 슬픔을 유추하며 좀 오바 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땐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믿었고, 물론 여전히 그 감수성에 대한 희망은 있지만, 지금은 또 조금 변해버렸는지,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너무 취하지는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 수업 덕택이었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 할 것 같은 그 시절의 고통이 어렴풋이나마 내 관심의 영역이 되도록 해주었다. 당장 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이라는 말 뿐이었던 말이, 내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작은 방에서만 지내며 괴로워하다 죽었는지를 고민해보게 했다. 시간이 또 지나니 그저 ‘앎’이란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 앎이란 게 적어도 속지는 말자는 다짐은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때의 기억이나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 고민들이 소위 말하는 ‘역사의식’이라는 걸 준 건지도 모르겠다.

국사가 아닌 국문학 수업이었다. 예술이라고 하면 늘 서양의 것들만을 떠올리곤 했다. 고전을 접하는 것도 서양문학이었고 영화도, 연극도 그러했다. 그러다 접한 한국의 소설들이었다. 5,60년대의 소설을 많이 접했다.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흔적을 따라 간 곳이 여수였고 순천이었다. <해방전후>나 <비오는 날> 등 그저 교과서의 지문으로만 존재했던 소설이었을 뿐인데, 아주 진지하게 접할 기회가 생긴 거다. 그 당시의 소설을 읽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강요받는 일이었는데, 읽을 때마다 눈물이 많이 났다. 그러면서도 다 읽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난다.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당장 몇 십 년 전의 한반도의 풍경들을 살펴보는 것이 재미이기도 했다. 그저 사람이야기가 아닌,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나 시대 아래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개인들의 고뇌가 매력적이기도 했다. 그때 감동 깊게 읽은 소설 중 하나도 오발탄이다. 밑줄 박박 그으면서 베껴 적고 느낌도 달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 오발탄을 보고 나서, 한반도의 해방 전후를 예술로 다룰 때 나올 수 있는 뻔한 주제들에 공감하고 말진 말자 하면서도, 결국 남는 건 영화가 그려낸 그 시대 그 사람들이 겪었을 아픔이다. 그 아픔이 머릿속으로만 상상가능한 거라 할 지라도, 이렇게 '볼 수 있는 게' 행운이란 생각도 든다.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그 절박한 심정, 우리 육성으로 이 사회의 시대를 표현해야겠다. 이 자세가 가장 중요했다고요.“ 

영화 오발탄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유현목 감독은, 처음과 마지막에 위의 말을 반복한다. 어떤 사명감이 있었다면서 말이다. 오발탄이란 말은 ‘신이 잘못 장전한 총알’ 이란 뜻이다. 어디로 날아 박혀야 할지 알길 없는 사람들이, 짊어진 ‘노릇’들에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짐짝처럼 되어버린 제 몸뚱이 때문에 괴로워 한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곳이 없고 붙어살려고 해도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잘못된 건 전쟁 난 세상이라고 탓해 봐도, 신이란 게 어딨냐고 따져봐도, 그건 정말 헛주먹질 같다. 영화를 보면서 머릿속에 드는 이미지 중 하나가 허공에 헛주먹질이었으니, 어쩌면 견고한 물질보다 더한 게 허공 같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모든 인물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무너지고 만다. 나름 살아보겠다고 푼돈 벌어가며 이런저런 ‘노릇’을 하는 가장 철호도 그렇고, 소심하고 무력한 형을 탓하며 윤리나 도덕을 버리겠다는 동생 철호도, 결국  은행털이라는 행동을 택했지만 도망치다 감옥에 잡힐 뿐이다. 살아보겠다고 나선 여동생과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오발탄이라는 뜻에 신이라는 주체가 있는지 몰랐던 나로선, 신이 뭔데 내 목적을 미리 만들어놓느냐, 방향 잃은 인간이면 좀 어떤가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며 속상해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해진 사람들에겐 이 생각마저 사치인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하는 자들은 오히려 더 힘들 뿐이다. 오발탄의 영호가 그랬듯이.  
  

 

  괴기스럽게 "가자"라고 외치는 어머니. 소설의 내용이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됐는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가자'라고 외치는 어머니는 영화에서도 역시 아주 센 이미지를 준다.


몸과 마음이 다 아파, 짜증이 나겠다 정말.

 영화 오발탄의 마지막 시퀀스는 인상적이다. 돈을 아낀다고 미련하게 치통을 참던 철호가 가장 절망스러운 사태에 이르러서야 치과엘 간다. 동생은 은행을 털다가 감옥엘 가고,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리고, 전쟁이후 미쳐버린 어머니는 ‘가자’라고만 외치고.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이 한꺼번에 다 벌어지자 철호는 결국 이를 뺀다. 그것도 아내가 죽자 생긴 돈으로 치료를 한다. 철호는 위험하다는데도 한꺼번에 사랑니를 두 개나 빼버린다. 빼버린 이 때문에 어지러운 건지, 벌어진 상황들에 적응을 못 하는 건지, 철호는 비틀거리며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입밖으로 흐르는 피도 닦지 않은 채. 



  슬픈 것도 아닌 화가 나는 것도 아닌 '짜증'. 철호는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었다. 뽑아버린 이의 자리는 욱신거리고 피는 계속 나고 위로할 수 있을 밥 한술조차 뜰 수 없고, 가족의 상황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지만 또 그들이 ‘짐짝’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오히려 죽어버린 아내 때문에 슬플지라도 마음은 홀가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더라도 더 직접적인 고통은 지금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이빨 때문에 생긴 구멍이 주는 것인데 정신도 사납고 이도 아프고 복합적으로 아프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늘 그렇듯..

답답하면서도 이게 당시 한반도의 한 풍경이라고 하면,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이 든다. 이야기가 슬퍼서 울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또, 정말 지독하지 않은가. 돈 아끼겠다고 치통을 참는 철호의 모습은 요즘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스스로 가난해지길 선택했다 하지만, 쓸 데 못 쓰고 바짝 쪼아 사는 모습은 여전히 도덕이나 윤리에 얽매인 거 아니냐는 영호의 공격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영호처럼 은행강도를 해버리면? 별 수 있나. 감옥으로 갈 수밖에. 영호는 자족하며 웃었을까? 과연.
시대에 짓눌리지 않고 잘 도망치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역시나 어려운 일이라고 징징대고 결국은 사회 탓을 하는 걸로 자위해버리는 내가 싫지만 살아야는 겠고, 요즘 시대엔 차라리 방향 잃은 인간이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불안해서 계속 눈치보고 두리번 거리는 내가 보이니 말이다.

정말, 별 수가 없다. 그래도 살아야지. 문득 술자리에서 국에 밥을 말아 열심히 먹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새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러 청승떨고 있는 나를 보면, 이런 게 참말 리얼리즘 영화가 주는 게 아닌가 보다,, 싶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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