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이동진)

일상 2010. 4. 29. 02:36

“대중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고 전문가들은 점점 고리타분해지고 있는 상황이죠. 근데 똑똑해지고 있는 대중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영화기자가 된지 얼마 안 된 1995년과 비교해보면 불과 10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어요. 1995년이 딱 영화 100주년이었는데, 그때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래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같은 작품을 극장에 보러가서 러닝타임 내내 졸고 나오면서도,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어쨌건 그 영화를 봤다는 게 중요했죠. 사실 허영이죠. 그런데 저는 문화에서는 허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요즘 대중은 허영이 없어요. 아니 내가 졸려 죽겠는데 이 영화를 왜 참고 봐야 해? 한다는 거죠. 우연히 낚여서 <희생> 같은 영화를 보면 욕하고 나와요. 감독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쓰레기 영화다, 라는 말을 거침없이 날리죠. 말하자면 지금 관객이 훨씬 더 주체적이고 허영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주 훌륭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허영이 없으면 문화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가 없어요. 허영이 있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고, 허영이 없으면 스스로 충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뭔가 다른 걸 자기 마음으로 초대할 만한 구석이 없어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밌는데 왜 내가 타르코프스키를 보며 괴로워야 돼?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문화적 시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에 대해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1990년대 중반의 관객은 오늘은 짐 자무쉬 영화를 보러 가서 자고, 다음날은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잤더라도, 졸지 않고 본 5분씩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도약의 순간을 경험해요. 훈련이 되니까요.”  

_이동진, <문화 서울>


  단어의 의미를 비틀었을 때 나오는 새로운 얘깃거리. 허영이라. "허영이 있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한다는 거잖아요."  !

무엇보다,
".... 그 영화를 욕하지 않았어요." 이 말에 왜 이리 울림이 있는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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