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일상 2010. 5. 10. 02:00

영화에 이런 씬이 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저항군의 공격을 받는, 주인공 제임스와 그의 동료들.  
그 '적의 공격'에 맞서 모래 위에 엎드려, 대체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대치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들은 땀범벅에 모래들이 엉겨붙고 열기에 눈 앞은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순간 순간을 연출자는 꽤 긴 시간동안 디테일하게 연출한다. 디테일, 그게 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밀도 있게 쭉 밀고 나가면서 그 사이에 녹아있는 말랑한 디테일들. 그런 디테일 때문에 캐릭터가 정말 사람 같아지는 거니까.  
이 씬 역시 마찬가지다. 인물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는 그들이 '적'을 잘 쏴서 맞추기를 바라며 함께 마음을 졸이게 된다. 주인공이 쥬스에 빨대를 꽂아 동료에게 넘겨주는 따뜻한 장면에선 어느새 난 그들의 동지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감정들의 마찰을 느낀다. 그 긴장을 밀어내는 것은, 내가 이 전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겪는 죄책감이다. 그들이 총을 쏴 맞춰 죽이는 적들에 대한 연민이다. 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저렇게 행동하는건데, 왜 저럴 수밖에 없는 건데 하는 생각들. (폭탄을 제거하는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고 결국 그걸 성공하면 할수록, 폭탄을 설치한 저항군들에 대한 적대감은 높아진다) 그래서 난 이 씬에서의 디테일한 연출이 좀 무서웠다.

디테일이 풍부할수록 영화는 좋아지지만, 내가 영화에 빠져 적들을 빨리 쏴 죽이길 바랄수록 그러해지는 내 감정이 싫어진다. 아, 이 아이러니. 인물에 애정을 느끼게 됐으면서도 애정을 느끼기 싫은 이 마음. 누군가를 이해했을 때, 아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미 알만큼 아는)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라 더욱 그렇다.

<사실 어떤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접근했을 때 놓치는 것이 더욱 많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마음에 남아 있는 건 꼭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 씬에서 하나 의문이 있다. 간간이 저항군들이 숨어든 건물 안에서의 화면이 들어간다. 주인공들이 쏜 총알이 상대편으로 날아드는 컷, 즉 적들이라고 하는 자들에서의 시선이 중간중간 삽입됐다. 이 컷을 넣고 안 넣고는 굉장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맥락상 별 효과를 느끼지는 못 한다만, 그래서 의문이 생기는 거다. 대체 이 컷들은 왜 넣었을까. 적군들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일까. 그저 다양한 컷을 위한 걸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걸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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