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생각나는 그 사람

일상 2010. 7. 18. 03:30


살다가 드문드문, 그렇게 꾸준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뭘 하다 떠올랐지? 버스에서 잡지 읽고 있을 때였는데, 무슨 글귀 보다가 떠올랐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은, 버스에서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내가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의 그 얌전하고 참한 표정. 그런 것들.
한 인문학 수업에서 만났고 우린 종종 같은 버스를 탔다. 나는 그날 수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고 그 사람은 조근조근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그 생각들이 참 좋았다. 같은 사회학 전공인지라, 내 손에 들고 있던 개나리색 짐멜 책을 보고는 앗,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 진쫘요? 나 사회학하면서 건진 단 한 사람이어요. 나는 통계 수업이 너무 싫어 죽겠다고 투덜댔고, 그는 하필 통계 쪽으로 사회학 대학원을 간다고 했다. 진쫘요? 이런 신기한 사람을 봤나, 난 그거 취업에 좋으라고 배우는 것밖에 안 느껴져요. 징징대며 하필 왜 통계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러니까, 그의 대답 때문에 나는 오래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최근에 머리를 싸매며 데이터들과 싸운 적이 있다고, 불평등 지수를 검증하는 작업이었단다. 정말 끙끙대며 며칠을 붙잡고 있었다고 했던가, 그랬는데, 그 결과로 '지금 세계가 엄청 불평등하다는 걸 딱 숫자로 검증했을 때 그 쾌감'을 잊지 못 한다고 했다. 그 대답에서 묻어났던, 그의 고민, 열정, 묘하게 너무 따뜻했던 느낌. 
  
그저, 숫자로 환원되는 세상이 싫어요 라고 말할 줄만 알던 내 무력한 감수성이, 그의 말 한 마디에, 나 좀 더 단단해져야 겠구나, 내 저항의 태도가 철부지 같아선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해주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 사고 틀을 건드리는 대화였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라는 시선. 그렇다고 헤픈 관용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내 '관점'을 지켜나갈 수 있는 법. 그러니까 다루는 기술 문제 같은 것.
그렇다고 내가 통계에 애착을 갖게 됐다는 건 아니다. 너무 싫었다, 통계는.  큼.

역시 그 사람은 말 뿐 아니라 글에서 더욱 빛났다. 뚝뚝 묻어나는 영리함과 감수성에 감탄했다.
그리 친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아직 그 사람을 꾸준히 기억하고 있다니, 벌써 이 년도 더 된 일인데, 나는 아직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니.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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