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했던가보구나, 너는.

  춤을 추고 싶다고도 얘기했나봐. 너는 아마도 꿈꾸는 아이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좋아한다는 건, 꿈꾸는 것이고, 그건 살아 있다는 얘기니까. 죽은 사람은 살아 이루고픈 꿈을 꾸지 않아.
판검사를 꿈꾸는 게 죄가 아닌 듯, 사진 찍고 춤추는 것 또한 죄는 아닐 텐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너를 나무랐던 것일까. 사진 찍고 춤추는 꿈은 왜 판검사의 회초리의 쫓겨 위태로운 망루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연세살의 아이야, 네 반항의 갑갑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밥상에 앉아 뉴스를 본다는 게 고역인 줄 알면서도 버릇처럼 리모컨을 눌렀다가 네 소식을 들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려던 밥알이 정지선을 만난 듯 그대로 서버렸어. 밥을 삼키는 동시에 한숨을 내쉴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단다. 너는, 내가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너는, 대담한 패륜아요, 어린 독사이며, 주도면밀하였으나 허술했던 살인마로 수식되고 있었지. 그 이해 불가능한 살인의 이유로 너의 꿈이, 네 꿈의 갈등이 흘러나오더구나. 고작 그런 일로 부모형제를 화염에 밀어넣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재빠르게 보도해야 하는 직업을 한탄하면서도, 앵커는 차근차근 불타는 너의 집과 너의 행적, 네가 밟힌 꼬리를 보여주었단다. 사진을 좋아했다는,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는 그 말이 자꾸 귀에서 맴돌았어.
  네가 찍었던 사진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네가 찍고 싶었던 건 무엇 혹은 누구였을까. 사진으로 무슨 얘기를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 네가 화염 속에 던져버린 너의 꿈들이 재생 가능한 것인지 의심하면서도 그런 궁금함이 꼬리를 물었다니 나도 정상은 아닌가보다.
  불이 다 삼켜버렸어. 네가 엎지른 물에서 지울 수 없는 비린내가 나. 왜 그랬느냐는 물음이 돌이킬 수 없는 그 일을 돌이키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아.
  겨우 열세살의 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앞길이 너무 길어 두렵다. 네가 찍고 싶다던 그 사진, 네가 추고 싶다던 그 춤, 그 시선 그 몸짓이 그날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울적하다. 사진은, 시선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네 시선은 지금 사선에 있구나.
왜, 그랬니. 나는 왜, 미안할까.

                                                                                                  사진가, 노순택(씨네21)


 요즘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종이쪼가리에 적힌 글. 꽤 지난 일에 관한 글이다. 집에 불을 질렀다던 아이, 아버지가 미웠다던 아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던 아이.
 글의 끝무렵... 사진은, 하고 찍은 낮은 쉼표에서 오히려 숨이 잠시 멎는다. 얼굴엔 눈물이 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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