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 생각 _영화 <혜화,동>                                                     http://idag.tistory.com/261











  버려진 개들을 그냥 두지 못 해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닥 여기저기 밟히는 개똥을 치우느라, 달려드는 개들 밥 주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반복되는 자분한 일상, 텅- 비어 있는 여자의 얼굴. 그저 멍-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무언가, 한차례 큰 파도가 지나가고 난 뒤의 고요한 얼굴, 그래서 한 번씩 짓는 웃음에 괜히 짠해진다.

혜화. 자음과 모음 끝에서 꽃들이 움틀 것 같은 이름, 혜화. 그녀의 이름은 혜화다. 5년 전, 열아홉 혜화는 애인 한수의 아이를 임신했다. 씩씩하고 밝던 혜화, 아직 열아홉, 앞 일이 깜깜한데도 사랑하는 한수와 함께 한다는 생각에 철없이 웃었다. 하지만 한수는 현실에 맞서지 못 했고 결국 도망쳤다. 버림받았다고 느낀 혜화는 상처, 받는다. 세상의 모든 슬픔이 제 것이 된 듯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내 몸에서 한 아이는 자라고 그러나 이 아이의 앞일은 장담하기 힘들고, 그래 그러고보니 나란 사람 데려다 키운 아이구나. 그럼 난 생모에게도 버림받은 건가, 그런데 그 사람은 왜 나를 낳았을까. 혜화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하루를 못 넘기고 죽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는 분노에, 자신 역시 겁이 나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못 했다는, 그래서 제 아이가 죽어 버렸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혼란의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또 그게 강한 그리움이 되었겠지. 뚜렷하지 않아 해소하기조차 어려운 감정이 혜화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5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혜화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말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버려진 개들을 더욱 쫓아다니기도 했을 것같다. 그 사이 혜화가 살던 집은 철거가 됐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을 것이고 너는 엄마가 되면 정말 잘할거야, 라는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철렁하기도 했겠지. 마음이 가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한다 했을땐 어떤 울컥함이 치밀었는지, "왜 난 아니에요?" 라고 정색했다 금세 얼굴 풀어지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을 땐, 5년 전 혜화의 캐릭터와 그 사이 어떤 시간을 살아낸 후의 혜화 느낌이 중첩되면서 보는 내가 철렁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아, 정말 혜화구나.

그건 그런 상황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와 정말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5년이란 시간을 살아낸 혜화를, 그녀를 연기한 배우 유다인이 그 시간을 다 겪은 듯 달라진 분위기와 얼굴을 만들어 내는 건 참 놀랍다. 왜 혜화를 연기하고 싶냐는 감독의 말에, ‘혜화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요’라는 배우 유다인의 대답 한마디가 추상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느껴지는 것도 스크린에서의 결과물 때문일 것이다.  

영화 초반, 탈장된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하얗고 꼬리가 노란 개. 혜화의 철거된 옛집을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 똥꼬에 소세지처럼 생긴 뻘건 장이 하나 튀어나온 채로, 자각증상이 없는 개인지라 제가 아픈지도 모르고 유유히 걸어 다니는 개 한 마리. 그 개를 치료해 주고 싶어 먹이로 유혹하고 덫을 놓아 보지만 아무래도 혜화는 그 개를 잡기가 힘들다.

그 개를 만난 즈음, 혜화는 한수와도 다시 만난다. 한수를 다시 보는 건 제 상처와 다시 마주하는 일이고 그렇다면 다시 분노와 죄책감과 그리움 같은 것들로 뒤엉킨 감정들이 다시 온 마음을 헤집어 놓을 텐데, 혜화는 다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혜화가 한수를 다신 보고 싶지 않았을 것 같진 않다. 또 한수 역시 겪었을 고통과 상처가 혜화에겐 위로이기도 할 것이다. 한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진 못 하더라도 내 안에만 갇혀 있던 상처를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되는 거니까. 사실, 버려진 개들에 대한 관심은 그저 제 상처의 투영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혜화라는 사람을, 또 탈장된 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 이유가 있다고 한다. 다큐 조연출을 하던 무렵, 촬영 테잎 하나를 보았단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면서 유기견을 데려다 집에서 기르는 여자였는데, 촬영 테잎 속 여자는 탈장된 개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받곤 그 개를 잡으려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심지어 밤새 잠복까지 하며 개를 기다렸다. 그랬는데도 결국 마지막 포위망까지 피한 채 개가 달아나자 여자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PD는 여자보고 왜 우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도와주려는 건데.. 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모르겠다며..도대체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냐며.’며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렸다 한다. 감독은 당시 그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좀 짠해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싸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 겨울의 새벽, 어느 변두리 공터에 주차된 차 안에서, 버려진 똥개 한 마리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굵은 눈물 뚝뚝 흘리는... 이 여자분의 외로움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그 여자의 어떤 상처를 추측해 보았을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시나리오를, 영화를 만들게 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버려진 개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혜화의 행동, 그거 정말 절박하기에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단지 측은한 것들 앞에 머물고 서성이기만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일텐데, 버려진 개들을 찾아 나서고 기어코 제 손으로 보살피려 집으로 데려온다는 사실은, 그 마음이 얼마나 차올랐기에 그리할까 싶다. 또 그리하기 때문에 그 상처난 마음이 넘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표정은 담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혜화 역시, 똥개가 제 마음을 몰라준다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여자처럼, 많이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아직 임신 중인 혜화, 부른 배로 마루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손톱의 매니큐어는 한수와의 추억이 담겨 있다. 혜화는 손톱깎이로 그 손톱을 하나씩 똑똑 끊어내다 손톱 깎는 걸 멈추고 끊어낸 가늘고 긴 손톱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곤 제 손목에 갖다 댄다. 그러다 말 것 같은 행동은 기어코 제 손목에 상처를 낸다. 그때 어디선가 굴러 들어온 강아지 한 마리. 하얗고 꼬리가 노란 강아지. 집 마당에서 기르던 개 혜수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다른 집에다 팔아 버렸는데, 혜수 새끼 한 마리가 따라가질 못 하고 지금 혜화 눈 앞에 나타난 거다.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바닥을 비비닥 거리는데, 그 모습을 빤히 보던 혜화는 컷의 말미에 조그맣게 속삭인다. 미안

날카로운 손톱에 긴장되던 마음이 '작고 뭉클한' 강아지가 마루로 굴러 들어오자 파르르 풀렸다가 그 끝에 조그맣게 들리는 혜화의 미안,이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시 뚝 떨어진다. 짜맞춰서 억지스럽기도 할 장면이지만 튀게 느껴지지 않은 건 이 씬 자체가 환상같기도 해서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아주 '잘' 짜맞춰진 극적인 상황이라는 것.  

결국 혜화는 탈장된 개와 다시 만났고, 그 개는 그 날 마루로 굴러 들어왔던 하얗고 노란 강아지였다. 그러니까 혜수 딸. 지금은 마르고 지저분한 모습에 제가 아픈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는 미련한 개. 우연히 또 운명처럼 혜화의 손에 끌려 치료를 받으러 간다. 개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치료 받고 혜화의 곁에서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고 치료 받기도 전에 다시 달아나 버릴수도, 혜화가 왜 내 마음 몰라주느냐고 눈물 뚝뚝 흘려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고 당신의 마음이고 내 마음일테니까. 혜화도 제 마음을 어쩌지 못 해서 이러는 거겠지. 인물의 마음 이렇게 알고 싶고 또 생각하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면서도 차분하게 이어지는 이 한편의 영화, 혜화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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