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일상 2011. 3. 24. 00:20

보인다. 성인 한 명은 족히 들어갈 커다란 캐리어. 그 뒤에 가려져 있을 그. 계속 걷는다. 그에게 향하지 않고 스쳐갈 작정으로, 스치면서 볼 작정으로.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이발을 했다. 안경을 벗었다. 외투는 그대로다. 조금 말랐다. 이발을 해서인가. 검은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먹고 있다. 점점 봉지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하여 눈에 띄는 건 그의 눈썹. 머리카락 보다 긴 눈썹이 자라고 있다. 계속 자란다. 그의 몸 어딘가 고장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 어딜갔다 며칠만에 나타난 거지. 스쳐 가면서 본다.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완전히 스친 후 마지막 잔상을 눈 앞에 두고 계속 걷는다. 앞으로 5분 동안은 찬 바닥에 두피가 닿은 것마냥 몹시도 서늘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이 곳을 뜨지 못 하는 이유는 이 사람 때문이 아닐까. 그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 따위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을 거란 짐작, 그렇게 되리란 저주.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계시, 결국 믿게 되고 마는 자기 확신. 
매일 그를 만나 보지만, 결코 만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스쳐갈 작정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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