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심장 박동기 시술에 참관했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나는 주위를 맴돌며 어떻게 심장 박동기가 채워질까 호기심에 차 구경했다. 시술대 위에는 나이 여든에 가까운 노인이 정신이 말똥한 채 누워 있었다. 박동기 삽입은 환자와 대화가 필요한지라 국소마취를 하는 시술이다. 노인은 수시로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잘 되고 있지요?" "네, 걱정 마세요. 잘 되고 있습니다." 문장이 길어질라치면 발음이 뭉개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해독할 수 없는 몇몇 문장들이 무시되고 시술은 계속됐다. 심장 혈관을 따라 철사줄이 내려가고 테스트를 한 후 이제 그것에 심장 박동기를 연결하려는데, 발음 정확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죽으면 어떡하지요?" 
마치 이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기막힌 타이밍에 나온 말.
"네?" 못 들은 건지 대답을 피하는 건지 몇 박자 느린 의사의 되물음 뒤, 다시 또 한참 뒤 노인은 말을 잇는다. "다 죽고 나만 살아 있으면 뭔 재미로 사나"
나는 살금살금 걸어 나와 시술대에서 멀어졌고, 입을 막곤 참았던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죽지 않으려 하는 시술 현장에서 영영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노인의 한 마디. 사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뒷걸음질 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희극처럼 보고 싶어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