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말/벨라 타르, 아그네스 흐라니츠키

 

니체가 미쳐버리게 된 사연을 나레이션으로 깔리며 시작하는 영화. 채찍질 당하면서도 꿈쩍않는 말을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가 그 말의 목을 안고 몹시 울었다던 니체.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 한 마디를 남기곤 이후 죽기 전까지 침대에서만 생활했던 그. 

나레이션이 끝나면 블랙화면이 걷히고 흑백화면이 열린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없을 장면.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하지만 보여지는 것은 잠시 숨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깊고 낮게 깔리는 음악에, 육중한 말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달리고 그 위엔 지친듯 채찍질하는 노인이 있다.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이들을 집요하게 훑는다. 노인이 다다른 곳은 지독한 폭풍이 몰아 치는 황망한 들판, 그 위에 낡은 집. 그 곳에 노인과 딸, 그리고 말이 산다.   

옷을 입고, 입혀 주고, 옷을 치우고, 물을 긷고, 감자 두 알을 삶고, 감자 한 알을 먹고, 감자 껍질을 치우고. 잠에 들고 다시 일어나며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 이것은 아주 가난한 자들의 일상. 영화는 서른 개 남짓한 쇼트의 아주 긴 호흡으로 엿새 간의 그들을 담는다. 이들은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지만 창밖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폭풍은 멈추질 않는다. 이들의 생활도 곧 순탄치 않아질 것이다. 마치 종말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지구의 어느 곳. 사실 이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언제인지도 알 수 없다. 현재일 것 같지만 행색이 과거같기도 하며 결국엔 미래라 짐작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그러니까, 지구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으므로.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현재가 아닌 현실. 

둘째 날,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아마 매일 아침 말을 끌고 나갔을 노인. 아마도 생계수단이자 이동수단이자 유일한 전 재산일 귀중한 말. 갑자기 말은 꿈쩍 않는다. 노인이 아무리 채찍질해도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기 시작한다. 대체 왜. 알 수 없다. 하지만 노인은 곧 먹겠지 하면서 말을 재촉하거나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아주 수동적으로 보인다.

다음 날, 또 다음날 물을 긷던 샘마저 마르고 폭풍은 더욱 심해진다. 노인은 그제야 급히 이곳을 떠나자고 말한다. 그들은 짐을 싼 후 말을 끌곤 급히 집을 떠난다. 황망한 들판을 지나 언덕을 막 넘어 이제 탈출에 성공할 것이라 짐작할 즈음, 부녀와 말은 그 언덕을 넘어 다시 집으로 되돌아 온다. 대체 왜. 알 수 없다. 카메라는 그들을 뒤따르지 않았다. 부녀와 함께 오래 살아온 듯 인물을 뒤따르거나 혹은 동선을 알고 미리 움직이거나 기다리곤 했던 카메라는 이때 집 앞에 서서 멀어져 가는 그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언덕을 막 넘어 사라질 때쯤 곧바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집으로 되돌아 오는 그들. 이때, 기다렸다는 듯 여전히 집 앞에 있는 카메라라는 존재는 굉장히 섬뜻해진다. 이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다시 태연히 그들의 일상을 쫓는다. 카메라는 유령 같다.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거기에 함께 있는 또 다른 존재. 

다시 돌아온 부녀와 말, 아니 어디도 갈 수 없었던 그들. 그날 밤엔 집안을 밝히던 등불마저 꺼져 버린다. 노인은 말한다. "이 어둠은 뭐지?"  다음 날, 폭풍은 멈췄다. 하지만 아침은 오지 않는다. 해가 뜨지 않는다. 껌껌한 집 안, 식탁 앞에서 노인과 딸은 삶지 않은 생감자를 씹어 먹는다. 노인은 말한다. "먹어, 먹어야만 해."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적극적으로 대처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모든 걸 체념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인간의 태도. 자연 재해든 사건이든 어떠한 일들 앞에서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그 미묘한 줄타기에서 느껴지는 서글픔과 무력함, 그리하여 떠밀릴 때까지 밀리다 끝간에서 행하는 몸짓이나 지친 몸에서 나오는 몇 안 되는 말들이 아주 존엄해지는 순간. 

이 영화가 주는 물질감은 아주 지독하다. 육중한 말의 몸, 세월의 흔적을 몸에 새긴 듯한 어덜더덜한 그 몸, 문을 열면 폭풍의 소리, 때릴듯 달려드는 바람, 그 바람에 치이면서 물을 길러 걸어가는 딸의 몸뚱이. 감자 껍질을 벗겨 내는 노인의 손길, 흡입하듯 감자를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내는 소리, 아주 일상적인 행동이지만 그 움직임은 굉장히 기이하다. 뻔하지만 새롭고 익숙하지만 낯설다. 이런 분위기와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어떤 감독이 집요하게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그의 연출력에 정말 감탄하게 된다. 이게 바로 거장의 힘이구나.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나는 이 영화 때문에 우울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살면서 아주 자주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이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더 자주 떠올리는 영화일수록 그저 보는 게 아니라 체험했다는 느낌에 가까운 영화다. 그런 게 또 내게 좋은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또 다시 뻔하지만 낯선 질문을 하게 된다. 대체 영화란 뭔가. 

생감자를 씹어 먹는 부녀의 모습에서 카메라는 제 멋대로 제 눈을 닫아 버렸지만, 폭풍도 멈춘 깜깜한 그곳에 부녀와 말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계속되는 물음. 니체는 왜, 저는 바보였다고 했을까. 그 풍경의 무엇이, 그 말의 대체 무엇이 그를 미쳐 버리게 한 것일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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