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친구들, 2009
감독/남궁선
출연/김수현,배혜미,김은미 



 작가들은 흔히 말한다.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나 이야기를 어떻게든 내 식으로 풀고 가고 싶었다”고. 
인 상 깊 은 것. 몸과 마음에 새겨져 온종일 그것에만 사로잡히거나 살면서 드문드문 그것 때문에 마음 쓰이는 것. 
그래서 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처음에는 저희 윗집에 살 던 남자애가 죽는 사건이 있었어요. 분신을 해서 집이 타고 그 어머니는 도망을 못 치다가 늦어서 뛰어내리고. 저는 자느라 몰랐어요. 아침에 자다가 뒤늦게 나왔더니 일은 다 끝난 상황이고 소화전에서 내려오는 물만 계속 흐르고 있더라고요. 그 자체가 되게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그 계단에서 시체를 들고 내려오는 거예요. 계단에 저 혼자 있었거든요. 그 기억이 되게 강렬했었는데 지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그걸 까먹었더라고요. 이 영화는 졸업작품이다보니까 졸업작품을 준비해야할 시점에 그 생각들이 났어요. 저희가 10년 전 쯤에 고등학교 다닐 때 자살하는 애들도 되게 많았고, 그래서 계속 생각이 나니까 이걸 어떻게 한 번 풀고 지나가야 되겠다 해서 시작을 했어요.”
 

긴 답변이지만 옮겨 봤다. 결국 이 영화에서 보게 될 장면이니까.

계속 생각나는 걸 풀고 가고 싶었다는 감독, 이 기억에 붙들려 왜 그랬을까를 물어보고 사연을 상상해보고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 그 호기심은, 그 욕심은, 그 노력은, 결국 애정이지 않을까. 수많은 영화들에 어떤 진심이 있지만 느껴지는 정도에 차이가 있듯, 그래 이 영화는 애정의 진심이 많이 느껴지는 영화다.

어쨌거나 표현한다는 건 결국 어떻게 풀어내느냐다. '내식으로'말이다. 그리고 그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연출자의 취향과 재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독특하고 센스 있고 영리하다. 결코 서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밀고 가는 영상과 나레이션이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데다, 이야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데 계속 빠져 들어가다 보면 다 연결된 이야기고- 깨고 보면 꿈, 이런 식이다. 이야기의 큰 맥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아기자기하게 뒤틀린 구조들이 참 재밌다. 장치가 많아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감각을 믿는 듯한 연출자의 자신감과 결국 그 감각이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하는 그 재능이, 부럽다. 



재밌는 캐릭터 셋이 등장한다. 갓 스무 살을 맞은 마인선, 노박, 그리고 춘기. 마인선의 1인칭 주인공 나레이션으로 풀어나가는 이 영화의 의도는 “21세기 서울 도심에서 친구를 잃기까지의 회고”다. 결코 악의는 없었지만, 한 사람에게 <최악의 친구들>이 되어버린 슬픈 이야기. 악의 없음을 증명하는 듯한 재밌는 에피소드에 시작은 희극이지만, 어쨌든 한 친구를 잃으면서 비극으로 끝나는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

인선의 첫 섹스 상대였던 춘기가 조기유학을 떠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셋은 다시 만났다. 그저 우정 이야기는 아니다. 엄마를 미치게 한 세상과 자신을 미치게 하는 엄마와 가족과 세상과, 결국은 자기도 미친 것 같고, 대체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어디에도 마음 붙일 데 없이 지금 이곳은 낯설기만 하고, 그리하여 기대고 싶은 곳이 친구였건만 그 친구들의 애정은 각자의 욕망을 숨긴 애정이었으니 서로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른 채 상황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춘기는 말했다.
 

“집에 가기도 싫고 군대 가기도 싫고 미국에 가기도 싫고. 난 왜 이렇게 어딜 가 있어도 잘 못 와 있는 것 같을까. 동네가 너무 낯설어. 다들 뭘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애.”

영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4년 만에 춘기와의 찬스를 다시 잡고 싶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춘기는 죽었다. 찬스는 끝났다" 

춘기가 좋아 찬스를 만들려던 마인선은, 서로의 상처를 아릿하게 느꼈지만 결국 어긋내버린 노박도, 그저 춘기가 잘 되길 바랐던 엄마도, 춘기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다. 춘기가 좋아하던 그 한강뚝섬도 어떻게든 더 잘해보고 싶어 한강르네상스 운운하며다 뒤집는 거 아닌가. 아 그렇지만 엇나가는 애정. 맞지 않는 취향. 본인만 아는 본심. 언제나 품는 본심을 위한 속셈. 외로운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고.

이 모두를 감독은 연민하고 있다, 애정을 품고 있다, 감히. 이런 지점을 느끼는 곳에서 연출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런 장면이 있다. '우리 엄마 미쳤다'고 하는 그 엄마, 춘기의 엄마, 비오는 날 인선은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일주일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 춘기를 걱정하며 귀티나 보이지만 쪄든 얼굴을 더욱 찌그러뜨린다. 그리고는 비오는 거리를 향해 우산을 펼치고는 또각또각 걸어간다. 그때 인선에 눈에 보이는 건 그녀의 신발 뒤꿈치, 끊어진 샌들의 끈. 삐틀거리는 샌들의 굽.. 춘기를 미치게 하는 그 엄마, 강남 한양아파트에 살며 자식걱정에 유별난 그 엄마의 신발 뒷굽은, 그랬다. 

 인선에게 춘기는 ‘4년만의 찬스’였다. 하지만 그녀는 춘기의 외로움을 알지 못 했고, 당연히 알 수도 없었다. 네 맘이 내 맘과 같지 않고, 우리는 조금씩 진심을 숨기며 타인에게 접근한다. 이 풍경이 한없이 낯설어지기 시작하면 외로움에 지고 마는 거다. 춘기도 그랬던 거 아닐까. 
춘기가 
자신의 방에 불을 지르는 그 장면에서, 덮히는 마인선의 독백
“춘기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장면이 다음으로 넘어가더라도 여전히 그 질문에 붙들려 춘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고 또 물어보는 나를 발견한다. 이때 나는 영화의 진심, 그리고 내 진심을 느낀다. (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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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친구들 볼 수 있는 사이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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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